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환오 Oct 18. 2024

내가 열 살일 때, 지금 내 아이가 열 살일 때.

그때 어렴풋이나마 내 존재에 대해서 궁금해졌다.

내 아이는 거북이지만, 나는 아이와는 반대로 어릴 때 상당히 빠른 토끼였다.

지금이야 그냥 평범한 40대를 보내고 있지만, 어릴 때는 내가 어른이 되면 뭔가 큰 사람이 될 줄 알았다.

초등학교 때 학년이 올라갈 때마다 나를 안 좋아하시는 담임 선생님은 없었다.

그때 느꼈다.

어른들은 공부를 잘하면 좋아하는구나.

이런 말을 내 입으로 풀자니 조금 민망하지만, 공부뿐만 아니라 모든 일에서도 꼼꼼, 성실, 완벽을 추구했던 아이라.. 담임 선생님은 항상 나에게 자잘한 부탁을 많이 하셨고 난 어김없이 완벽히 수행했다.

지금 돌이켜보니, 약간 선생님의 비서 역할?을 수행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당시에는 그게 얼마나 뿌듯하던지, 친구들 사이에서는 나도 모르게 자신감이 뿜뿜 올라가 있었다.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중학교 들어가서 힘들었지, 어릴 때는 손 하나도 안 갔다며 너~~~ 무 편하게 키우셨단다;;;


9살이었나? 10살이었나?

학교 수업을 마치고 집으로 가려니 비가 쏟아진다.

다른 친구들은 엄마가 하나, 둘 우산을 가지고 오시는데, 나는 엄마를 기다리다 포기하고 비를 맞고 집까지 전력질주를 하면서 뛰어갔다.

그때 잠깐 처마 밑에서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며 잠시 쏟아지는 비를 멍하니 바라만 봤다.


갑자기 그때!

응? 이렇게 말하는 '나'는 누구지?

이렇게 속에서 생각하고 말을 내뱉는 '나'라는 존재 말이다.

엄마가 와주면 정말 좋을 텐데라고 생각하는 '나'라는 존재.

다른 사람들 머릿속에도 이 '나'가 들어있는 건가?


아직까지도 그날의 기억이 생생하다.

그 빗소리와 처마밑 상가까지도.

엄마에게서 아빠에게서 나온 '나'라는 존재.

'나'라는 정체성에 대해서 진지하게 생각을 한 게 그때가 시작이었다.


지금 기특이는 열 살이다. 정확히 내가 내 정체성에 대해 궁금해했던 나이.

하지만 또래보다 조금은 느리게 걷고 있는 아이라. 아직 그런 궁금증을 느꼈는지는 잘 모르겠다.

최근에서야 4살 터울 동생과 대화도 어느 정도 나누고 노는 것이 가능해졌다.

1학년까지만 해도 4살 동생은 그저 귀찮은 존재일 뿐. 저 아기가 왜 옆에 자꾸 오는 건지.

둘의 티키타카는 고사하고 동생이 어디서 온 건지 과연 알기는 할까라는 의구심이 들 정도였으니까..


기특이가 엄마 나는 누구야?라고 어느 날 물어본다면 뭐라고 답해줘야 할까 고민을 해봤다.

기특이는 저 멀리 우주에서 엄마한테 온 소중한 선물. 아 이건.. 너무 소설책에 나올법한 이야기인가.

뭔가 현실적이면서 과학적으로 명료한 답이 머릿속에서 안 나온다.


하지만 아무리 머리를 쥐어짜도 정말 그 말이 맞다.

저 먼 우주에서 지구에 살고 있는 80억 명의 사람들 중에서 나를 엄마로 택해준 아이.

그게 너라고.

그러니 너와 엄마는 아주 오래전부터 보이지 않는 끈으로 이어져 있었다고.

길 잃어버리지 않고 엄마한테 잘 찾아와 줘서 고맙다고 말이다.


오늘은 비가 와서 그런지 글이 뭐랄까. 감성포텐이 터지는 거 같다.

열 살이라 아직 아재 냄새는 아니지만 내년이 되면 또 다르겠지?

이따 잘 때 뽀뽀나 실컷 해줘야지!

기특아! 오늘도 사랑하지만, 내일 더 사랑해 줄게!


이전 14화 장애아를 대하는 태도,당신은 어떠십니까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