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나라 말, 청나라 초기에 살았던 고염무는 사람에게 ‘예의염치(禮義廉(恥)’가 필요하다고 했다. 예의는 남을 다스리는 커다란 법(治人之大法)이고 염치는 사람이 바로 서는 커다란 규칙(立人之大節)이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천하의 흥망은 필부라도 모두 책임이 있다. (天下興亡, 匹夫有責)”라는 말을 남겼다. 『관자(管子)』에도 ‘예의염치는 정치에서 네 가지 중요한 요소다. 이 가운데 하나가 없으면 나라가 기울게 되고, 둘이 없으면 나라가 위태롭게 되며, 셋이 없으면 나라가 뒤집히고, 모두 없으면 그 나라는 파멸을 면하지 못하게 된다.’라는 말이 나온다. 예의와 더불어 염치가 매우 중요한 덕목임을 강조한 말이다.
염치는 일찍부터 동양인들에게 중요한 윤리 도덕 개념으로 자리 잡아 사람이 살면서 지켜야 할 중요한 가치로 존중됐다. 염(廉)은 ‘청렴하다’, 치(恥)는 ‘부끄럽다’라는 뜻으로 염치는 ‘체면을 차릴 줄 알며 부끄러움을 아는 마음’을 뜻한다. 흥미로운 글자는 치(恥)다. 글자 그대로 귀(耳)와 양심(心)이 결합한 글자다. 마음속에서 양심의 가책을 느끼면 그것이 자연스레 밖으로 드러나 얼굴이 붉어지고 귀가 빨개진다는 것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염치는 잘난 체하고자 하는 마음을 속으로 거둬들이고, 양심으로부터 생겨나는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것, 바로 ‘도덕’인 것이다.
귀가 양심 대신 용(龍)을 만나면 누구의 소리도 듣지 않고 어리석은(聾, 어리석을 롱) 짓을 한다는 뜻이 된다. 용은 가장 권위가 있는 영물이어서 남의 말을 전혀 듣지 않는다고 알려졌기 때문이다. 혹시 염치없는 짓을 하고도 얼굴색 하나 변하지 않는 후안무치(厚顔無恥)한 사람들은 자기들이 용이라고 착각하지는 않겠지? 이런 사람들은 염치 따위는 서슴없이 깨버리는 파렴치한(破廉恥漢)이기 십상이다.
전국시대에 있었던 일이다. 진(秦) 나라에 사신으로 갔다가 수레 100대를 상으로 받아온 송(宋) 나라의 조상이 자기의 능력이 뛰어남을 장자(莊子)에게 자랑했다. 이에 장자가 “진나라 왕은 병이 나면 종기를 째고 고름을 빨아주는 자에게 수레 한 대를, 치질을 핥아서 고쳐주는 자에게는 수레를 다섯 대 줬다고 하는데 자네는 어디를 어떻게 빨아줬기에 100대나 되는 수레를 얻었단 말인가? 더러워서 상종하기 싫으니 내 앞에서 썩 꺼져버리게!”하고 면박을 주었다. 여기에서 나온 고사성어가 ‘혀로 치질을 핥아 주고 수레를 얻었다’라는 ‘지치득거(舐痔得車)’다. 염치나 체면 따위는 도외시하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이익을 탐하는 자의 파렴치함을 통박한 이야기다.
미국 일간지 뉴욕타임스가 ‘naeronambul’이라는 단어를 써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내가 하면 로맨스, 남이 하면 불륜’이라는 해석도 친절하게 곁들였다. 국제사회에서 한국에 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일 텐데, 한편으로는 파렴치한 사람들이 많아진다는 의미로도 들려 씁쓸하다. ‘내로남불’하는 사람들은 도대체 어떤 사람들일까?
맹자는 ‘사람이 부끄러움이 없으면 아니 된다. 부끄러움 없음을 부끄러워한다면, 부끄러움이 없을 것이다. (人不可以無恥. 無恥之恥, 無恥矣)’라고 했다. 파렴치한 처신을 하고도 이 나라의 지도층이 되겠다는 사람들이 귀담아들었으면 좋겠다. 그런 사람을 무조건 두둔하는 사람들도 마음속에 새겨두면 좋겠다. 그들에게 ‘노블레스 오블리주’ 따위는 기대하지 않는다. 그저 파렴치한 꼴을 보여주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