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화는 역사와 함께한다고 한다. 사람들이 살아온 이야기가 기록으로 전해오면 역사이고 말로 전해오면 신화가 되는 것이다. 당연히 구비문학(口碑文學)으로서의 신화는 많은 변형이 생기고, 때로는 사라지기도 한다. 그런 점에서 18,000여 신들의 이야기가 전승되고 있는 제주도는 우리 신화의 보고이다. ‘신들의 섬’이라는 인도네시아의 발리를 능가할지도 모른다. 안타까운 것은 제주 신들의 이야기가 다른 나라에 비해 서사적이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바리데기와 자청비. 그들의 이야기는 수메르 신화의 이난나나 그리스 신화의 데메테르와 비교하면 아쉽기만 하다.
농업의 신, 자청비
‘하늘의 여왕’이라는 뜻을 가진 이난나는 지하세계마저 점령하려고 저승으로 내려간다. 점령에 실패한 이난나가 다시 지상으로 올라오려고 하자 저승세계의 지배자인 아눈나키는 ‘한 번 지하세계에 들어온 자는 다시는 나갈 수 없다.’라는 규칙을 내세우며 그녀를 대신할 사람을 보내라는 절충안을 제시한다. 저승사자와 함께 지상으로 올라온 이난나는 자기가 없는 동안 남편 두무지가 자기를 애도하기는커녕 사치와 향락을 즐기며 왕처럼 생활해 왔다는 것을 알고 크게 분노하여 “이 자를 데려가라!”라고 일갈했다. 우리나라 여신들처럼 지고지순하지도, 순종적이지도 않다. 자기를 버린 아비를 살리려고 간난신고를 기꺼이 감수하며 저승에 다녀온 바리데기와 대조적이다.
수메르 신화의 이난나
제주도의 신들 가운데 가장 매력적이며 ‘농사의 신’으로 추앙받는 자청비(自請妃). 스스로 여인이 되기를 청하였다는, 우리나라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유형의 왈가닥 여신이다. 맘에 둔 남자(옥황상제의 아들인 문도령)와 가까워지려고 남장을 한 채 ‘오줌 멀리 눕기’와 같은 시합도 마다하지 않고, 그와 결혼하기 위해 온갖 지혜를 짜낸다. 그뿐인가? 외적이 쳐들어오자 문약한 남편을 대신해 군사를 이끌고 전장에 나가 적을 물리치기도 했다. 오늘날 자수성가한 여장부의 모습이 자청비라고 하면 무리일까? 진취적이며 말괄량이의 전형을 보여 주던 그녀는 돌연 하늘나라에서 오곡을 얻어 지상으로 내려와 ‘농사의 신’으로 안주(?)한다. 왜 지상으로 내려왔을까? 지상으로 내려온 동기가 명확하지 않아 갑자기 바람 빠진 풍선을 보는 것 같은 허망함이 느껴진다.
농업의 신 데메테르, 루벤스 작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농업의 신’ 데메테르는 자청비와 사뭇 다르다. 자기의 딸인 페르세포네가 저승세계의 지배자 하데스에게 납치되어 강제로 혼인하게 되자 지상의 어느 곡물도 못 맺게 하는 한편, 제우스에게 문제를 해결하도록 강력하게 항의한다. 데메테르는 결국 뜻을 이루어 페르세포네를 데려온다. 이와 유사한 상황에서 자청비는 어찌했을까? 자기를 겁간하려고 했던 노비 정수남을 소와 말 같은 동물을 돌보게 하는 ‘목축 신’으로 만들어 편안한 여생을 살게 했다. 우리의 신들은 정말로 자청비나 바리데기처럼 착하고 수동적이기만 했을까? 차라리 이집트의 하토르와 세크메트처럼, 인도 시바신의 아내인 파르바티와 칼리처럼 때로 착하다가도 때로는 악하게 변하는 양면성을 가진 여신이 될 수는 없었을까?
북송의 수도 카이펑(開封). 전성기에는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로 인구가 100만 명이 넘었다고 한다. 중국 7대 고도(古都)의 하나로 꼽히지만, 쇠락을 거듭하여 지금은 다른 도시에 비해 초라해졌다. 수시로 범람한 황하가 도시 전체를 8~9m 두께의 황토로 뒤덮어 버렸기 때문이다. 어느 해에는 30만 명의 인구가 수해를 당해 3만 명만 살아남기도 했다고 한다. 카이펑을 상징하는 천하제일탑의 높이도 원래는 60m가 넘었지만 8m가량이 땅 밑에 묻히면서 지금은 55.8m만 드러나 있다. 북송의 영화는 8m 깊이의 땅속에 묻혀있는 것이다. 더욱 안타까운 것은 오랜 세월 동안 새로운 도시들이 건설되었다가 퇴락하기를 반복해서 이제는 발굴도 어렵게 되었다는 사실이다.
카이펑의 천하제일탑
카이펑의 영화가 땅속에 묻혀있듯 우리 신화도 어딘가에 묻혀있는 것은 아닐까? 어느 민족이나 자랑스러운 시대는 있기 마련이다. 우리나라도 그랬을 것이다. 화려하고 장엄했던 우리 선조의 이야기가 신화가 되어 제주도에 갈무리되어 있는 것은 아닐는지…. 제주도에 전해 오는 영등할망과 딸 그리고 며느리의 이야기는 환웅 신화의 풍백, 우사, 운사 이야기와 비슷하다. 어쩌면 변형일지도 모른다. 이것 말고 또 어떤 이야기가 본래 모습을 바꾸어 전승되어 오고 있을까?
어쩌면 우리 신화의 원형은 어느 나라 신화 못지않게 더 서사적일지 모른다. 아니 그럴 것이다. 그 모습을 언제쯤 볼 수 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