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84년, 선조는 전국에 대사면령을 내리는 한편, 명나라에 사신으로 다녀온 19명을 공신록에 올리고 광국공신(光國功臣)에 봉하였다. 어떤 경사가 있어서 대사면령이 내려지고, 무슨 공을 세웠기에 이토록 엄청난 포상을 받았을까? 이야기는 조선 건국 때부터 시작된다. 명나라의 『대명회전』 (명나라의 종합 법령집으로 조선의 경국대전에 해당한다)에는 ‘옛날 고려 권신 이인임의 후사 이단(李旦, 이성계)이 사왕(四王 즉, 공민왕, 우왕, 창왕, 공양왕)을 시해하였다.’라는 기록이 있었다. 고려 우왕 때 국정을 농단하던 이인임이 이성계와 최영에 의해 제거되자 잔당인 윤이와 이초가 명나라로 달아나 거짓 고자질을 했는데, 명나라가 그대로 『대명회전』에 기록한 것이다. 뒤늦게 이 사실을 안 조선은 끊임없는 노력 끝에 200여 년만인 선조 때에 비로소 바로잡을 수 있었다. ‘종계변무(宗系辨誣)’다.
종계는 이성계의 혈연적 계통을 말하는 것이고, 변무는 무고(誣告)를 변명한다는 뜻이다. 즉, 이성계의 혈통을 바로잡고, 4명의 왕을 죽였다는 기록도 무고인 만큼 문제 해결을 위해 조선의 역대 왕들은 종계변무 주청사를 끈질기게 보냈다. 반면 명나라에서는 이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았고, 오히려 일부 권신들은 문제 해결을 빌미로 거액의 뇌물을 챙겼다고 한다. 조선은 그야말로 200여 년 동안 명나라 권신들의 호구 노릇을 한 것이다.
임진왜란이 발발하기 직전에 종계변무가 마무리된 것은 천운이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지 않았더라면 선조는 전쟁보다 이 일에 더 매달렸을지도 모를 일이니까…. 위기를 넘기자 고질병이 다시 도졌다. 바로 병호시비(屛虎是非)다. 1620년 퇴계 이황을 모신 여강 서원에 그의 뛰어난 제자들인 류성룡과 김성일을 배향하게 됐다. 다툼은 누구를 윗자리에 모시느냐를 두고 시작됐다. 류성룡의 가문과 제자들은 그가 영의정을 지냈다는 사실을 앞세워 퇴계의 왼쪽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김성일의 가문과 제자들은 그가 류성룡보다 4살이 더 많고, 퇴계에게서 더 오래 수학했다는 점을 들어 그를 왼쪽에 두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병호시비라고 부르게 된 이유는 류성룡을 모시는 병산서원과 김성일을 모시는 호계서원을 중심으로 안동, 아니 경상도의 유생들이 둘로 나뉘어 다퉜기 때문이다. 병호시비는 2013년 5월에 종지부를 찍었다. 누구를 더 높이 받드느냐는 명분론에, 체면에 매달려 400여 년 동안 다툰 것이다.
오픈런이라는 말이 있다. 샤테크, 루테크 혹은 롤테크 등의 신조어도 있다. 오픈런은 명품을 사려고 매장 문이 열리자마자 뛰어 들어가는 것을 말한다. 오픈런의 대상은 샤넬, 루이뷔통, 롤렉스와 같은 명품들이다. 샤테크는 샤넬과 재테크가 결합한 말이다. 루테크니 롤테크니 하는 말도 두 단어가 결합해서 만들어진 신조어다. 오픈런을 하는 사람들은 명품을 하나쯤 지니려는 사람보다 이를 되팔아 이득을 보려는 사람들이 더 많다고 한다. 오픈런을 해서 명품을 구입한 사람들은 명품을 소유하려는 사람들에게 웃돈을 받고 팔아넘기는 것이다. 이런 소비자들이 많다 보니 종계변무를 빌미로 조선이 명나라 권신들에게 호구 취급을 당했듯이 오늘날 우리나라 소비자들도 명품업체들로부터 호구 취급을 당하고 있다.
몇 년 전, 과학 저널 『사이언스』에 ‘가난하면 뇌의 인지능력이 떨어져 실수하거나 잘못된 결정을 내릴 가능성이 크다.’라는 연구 결과가 실렸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 『가난한 사람들』에도 ‘아, 나의 친구이시여! 불행은 전염병입니다. 불행하고 가난한 사람들은 서로 전염되지 않도록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합니다.’라는 구절이 있다.
『사이언스』나 도스토예프스키가 물질적 가난만을 얘기했을까? ‘풍요의 시대’에 사는 우리는 오랜 세월 병호시비를 벌여온 사람들처럼, 명품을 탐하는 오늘날의 사람들처럼 정신적 빈곤을 벗어나지 못한 것은 아닐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