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나친 노파심

by 아마도난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은 새로운 영웅을 탄생시켰다. 바로 우크라이나 대통령 젤렌스키다. 코미디언에서 대통령이 된 그를 우크라이나 지식인들은 처음부터 긍정적으로 바라본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가 진정성 있는 지도자로 떠오른 것은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자 ‘우리는 등을 보이며 도망가는 대신 얼굴을 들고 맞설 것’이라며 항전을 강하게 주장한 다음부터였다.

그런 젤렌스키 대통령이 미국 언론과의 인터뷰 후 강하게 비판을 받고 있다. 지난 8월 17일 워싱턴 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2월 러시아 침공을 서방이 여러 차례 경고했지만 ‘만약 알렸다면 경제 손실이 컸을 것’이어서 이를 우크라이나 내부에 알리지 않았다고 대답했기 때문이다. 러시아가 침공한다는 것을 미리 알리면 후폭풍이 커질 것을 예상해 일부러 말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는 ‘만약 이 같은 징후를 미리 알렸다면 지난해 10월부터 매월 70억 달러(약 9조 3,000억 원)를 잃었을 것’이라며 그 이유를 설명했다. 이와 같은 발언에 국민 안전보다 경제적 손실을 더 중시한다며 우크라이나인들이 반발한 것이다. 젤렌스키 대통령의 판단이 옳았는지 아니면 지나친 노파심이었는지는 밝혀질 날이 있을 것이다.


이와 비슷한 일이 우리나라에도 있었다. 임진왜란을 앞두고 조선은 일본에 통신사를 파견했다. 1591년 부사(副使)로 일본에 다녀온 김성일은 ‘왜가 반드시 침입할 것’이라는 정사(正使) 황윤길과는 달리 왜가 군사를 일으킬 기색은 보이지 않는다고 상반된 견해를 밝혔다. 당시 조정을 지배하고 있던 선조와 동인 세력은 김성일의 보고를 받아들였다. 왜란에 대해 전혀 대비하지 않은 것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김성일은 허위 보고에 대한 책임으로 파직되었다가 유성룡 등의 변호로 경상우도 초유사가 되어 의병 규합과 군량미 확보에 전념하였다. 그는 진주목사 김시민 등과 함께 왜군과 싸우다 진주성에서 병으로 죽었다. 만약 김성일이 황윤길과 같은 보고를 했다면 임진왜란은 어떻게 달라졌을까?

김성일은 정말로 왜군의 침략이 없을 것이라고 믿었을까? 임진왜란이 끝나고 지어진 『징비록』이나 『선조수정실록』에 류성룡이 “그대가 황윤길의 말과 고의로 다르게 말하는데 후일 병화가 있다면 어떻게 하려고 하느냐?”라고 묻자 “나도 어찌 왜적이 침입하지 않을 것이라 단정하겠습니까? 다만 온 나라가 불안에 휩싸일까 봐 그런 것입니다.”라고 김성일이 대답했다는 기록이 있다. 백성들이 동요할까 봐 일부러 거짓 보고를 했다는 것이다. 김성일의 지나친 노파심이 더욱 참혹한 결과를 불러온 셈이다.


조선이 전쟁을 앞두고 아무 방비를 하지 않은 것처럼 우크라이나도 러시아의 침공에 대비하지 않았다. 그로 인해 전 국토가 러시아에 의해 유린당하고 있다. 임진왜란 때 조선이 그랬던 것처럼 우크라이나 국민도 국가를 지키기 위해 나서고 있다. 그 마음이 하늘에 닿으면 좋으련만….


민심이 흉흉해질 것이라는 노파심으로 사실을 외면한 김성일이나 젤렌스키 대통령의 판단이 호미로 막을 일을 가래로도 막지 못하는 사태로 만들었다. 임진왜란이 끝나고 오랫동안 경제난에 시달린 조선처럼 동유럽의 가난한 나라 우크라이나는 러시아를 물리치더라도 최빈국으로 전락할지도 모른다. 지도자의 불필요한 노파심이, 오판이 나라와 국민을 어려움에 빠뜨린 것이다.

어린 손주를 걱정하는 할머니의 마음 씀씀이는 아름답다. 하지만 지도자가 국민을 어린아이 취급하며 공연한 노파심을 보인다면 어찌 될까? 우리나라에 이런 지도자가 다시는 나타나지 않기만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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