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처구니없게도

by 아마도난

창경궁 야행을 진행하던 해설사가 왕비를 뽑기 위한 삼간택을 설명했다. 최후의 1인을 뽑기 위해 3차례에 걸친 심사를 한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최후의 3인에 뽑혔다가 최종 간택을 받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되죠?” 하는 질문을 던졌다. 내가 용감하게 “집으로 갑니다.”라고 말하자 해설사는 “땡! 틀렸습니다.”라고 즉각 대답했다. 이렇게 민망할 수가….


해설사는 최종 간택된 사람은 왕비가 되고 남은 두 사람은 후궁이 된다고 설명했다. 이미 왕의 혼인 상대로 지목됐기 때문에 다른 남자에게 시집갈 수 없다는 것이다. 임금의 승은을 입지 못하면 후궁에서 평생 처녀로 살아야 한다는 뜻이다. 최종 간택을 받지 못해 후궁이 된 사람을 간택 후궁, 그 가운데 왕의 승은을 받으면 승은 후궁이라고 부른다는 설명도 친절하게(?) 곁들였다.


맞는 말일까? 조선 시대에 왕비가 아기를 생산하지 못하면 후궁을 들였다. 여염에서 첩을 들이는 것과 마찬가지다. 다만 왕비나 세자빈처럼 간택 절차를 거친다는 점이 다르다. 이렇게 뽑힌 후궁이 간택 후궁이다. 간택 후궁은 대부분 귀한 가문 출신이고 왕자 생산을 위해 선택된 사람이어서 왕비에 버금가는 대우를 받았다.


이와 달리 노비나 기생 또는 궁녀처럼 보잘것없고 천한 출신의 여인이 승은을 입어 후궁이 되기도 한다. 승은 후궁이다. 출신이 다르고 선발 과정이 다르니 간택 후궁이 승은 후궁보다 더 좋은 예우를 받았다. 예우에 불만이 많아서 그랬을까? 조선 시대에 정치적, 사회적으로 물의를 일으킨 후궁들은 승은 후궁이었다. 연산군 시대의 장녹수, 광해군 시대의 김개시, 숙종 때의 희빈 장 씨 등이 그런 경우였다.

삼간택은 왕비를 뽑을 때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다. 왕세자빈, 왕의 적자인 대군과 서자인 군의 부인, 공주와 옹주의 배우자인 부마를 뽑을 때도 적용되었다. 한마디로 왕실과 혼인하기 위해서는 3차례에 걸친 심사를 통과해야 한다는 뜻이다. 해설사의 말대로라면 공주나 옹주도 부마 외에 최종 간택에서 탈락한 남자를 거느리고 살아야 한다는 것이니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결과다.


탈락한 후보자는 귀가했고, 혼인에 아무 제약이 없었다. 오히려 왕비나 세자빈을 뽑는 삼간택에서 탈락한 처자는 혼인 시장에서 인기가 높았고, 명문가의 자제와 혼인한 사례가 많았다. 관록 있는 해설사가 어처구니없게도 ‘간택 후궁’을 잘못 알고 있다니….


어둠에 묻힌 전각들 사이를 걷다가 지붕 위로 보이는 잡상(雜像)을 가리키며 아내에게 “저게 어처구니야.”라고 말했다. 그러자 아내는 “어처구니라고요?”라며 애매한 반응을 보였다. 순간 ‘내 말을 못 믿나?’ 싶어 은근히 불쾌했다. 어처구니가 ‘맷돌의 손잡이’ 혹은 ‘궁궐의 잡상(雜像)’이라는 뜻임을 확인시켜주려고 인터넷을 찾았다. 맙소사! 어처구니는 ‘엄청나게 큰 사물이나 사람’을 뜻한다고 나와 있었다. ‘맷돌의 손잡이’ 혹은 ‘궁궐의 잡상’이라는 해석은 근거가 없다는 설명도 곁들여 있었다. 근거도 없다는 의미를 여태껏 사실인 것처럼 알고 있었다니…. 기가 막힌다.




문화해설사가 ‘간택 후궁’을 잘못 이해했듯 나도 ‘어처구니’를 잘못 이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처구니없다’라는 말의 뜻은 그간 알고 있던 대로 ‘일이 너무 뜻밖이어서 기가 막힌다’라는 뜻이라니 그나마 다행이다. 목불견첩(目不見睫)이라고 내 허물은 보지 못하고 다른 이의 실수만 꼬집고 있었던 셈이니 이럴 때 ‘어처구니없게도’라는 말을 써야 하겠지? 참으로 어이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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