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쯤 매듭이 풀릴까

by 아마도난

멀리 다랑쉬오름이 보였다. 부드럽게 흘러내리는 둥그런 능선이 비너스의 가슴처럼 완벽한 아름다움을 뽐낸다. 과연 ‘오름의 여왕’이라 불릴 만한 자태다. 아름다움이 눈앞에 있는데 어찌 마음이 급하지 않으랴. 부지런히 걸어 오름 밑둥지에 도착했다. 입구를 찾으려고 주변을 살피다 다랑쉬 둘레길이라는 팻말을 발견했다. 앞뒤 안 가리고 들어섰다. 급히 먹는 밥은 체하기 마련이라더니 서두르다 그만 3.4Km 길이의 둘레길을 한 바퀴 돌고 나서야 비로소 입구를 만났다. 모퉁이만 돌면 바로 입구인데 서둘다 그만 반대편으로 돌아간 것이다. 그래도 둘레길의 멋진 풍경을 봤으니 손해만 본 건 아니다. 숨 한번 깊게 몰아쉬고 허위허위 정상에 올랐다.

멀리 한라산이 아스라하게 보였다. 한라산은 설문대할망이 낡은 치마에 흙을 담아 날라서 만들었고, 흙을 나를 때 치마의 터진 구멍으로 흘러내린 흙들이 쌓여 오름이 되었다고 한다. 다랑쉬오름은 흙이 너무 많이 쌓여 도드라져 보이자 그녀가 주먹으로 꼭대기를 ‘탁’ 쳐서 움푹하게 파였다고 한다. 그런가? 다랑쉬오름의 능선이 예쁜 비너스의 가슴처럼 보인다면 정상에서 내려다본 화구는 우아한 와인 잔처럼 보였다. 어쩌면 설문대할망은 무심히 주먹으로 내리친 것이 아니라 도자기를 빚듯 정성을 들여 다랑쉬오름을 만들었는지도 모르겠다.




다랑쉬오름에서 멀지 않은 곳에 다랑쉬굴이 있다. 1992년에 일가족이 중심이 된 11구의 유해가 발견된 곳이다. 그들은 제주 4·3 사건 때 희생된 사람들이다. 제주 4·3 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 회복 위원회는 민간인 14,442명, 진압군 1,091명이 희생된 것으로 집계했다. 그리고 1,500~4,000명으로 추정되는 무장대는 전멸한 것으로 결론지었다. 그들은 왜 죽어야 했을까? 누가 그들의 죽음에 책임져야 하나? 각자 다양한 이유로 희생되어 70여 년이 지나도 아물지 않는 그 상흔, 그 원한을 치유하려고 2002년 다랑쉬굴 앞에서 해원상생굿이 처음 시작되었다. 그때부터 희생자들의 유해가 발견된 곳을 찾아가 매년 ‘현장 위령제’를 올리고 있다. 올해는 19번째 해로 대정읍 읍오리 추사관 근처에서 열렸다.


제주도 곳곳에서 목격하게 되는 4·3 유적지. 슬픈 현대사의 한 단면이다. 그동안 찾아가는 위령제로 열렸던 해원상생굿이 희생자들과 그 유가족의 한을 다소나마 풀어냈을까? ‘가진 것 비록 적어도, 더불어 사는 넉넉함으로, 평화의 불씨 당겨 점화하오니, 해원의 향으로 타오르십서, 상생의 촛농으로 흘러내리십서.’ 만벵듸(한림읍 금악리) 위령비에 새겨진 글이다. 이제는 묵은 원(寃)을 풀고 너그럽게 용서하여 더불어 살자는 외침이다. 섬사람들의 바다같이 널찍한 마음 쓰임에 뭉클해진다.




제주에는 ‘당 오백, 절 오백’이라는 말이 있다. 신당과 절이 그만큼 많다는 뜻이다. 생활환경이 척박한 섬 지역이 대부분 그렇듯이 제주에도 오래전부터 무속이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었다. 일제강점기에 민족정신을 말살하려고 신당들은 대대적으로 철거되고 탄압받았다고 한다. 이런 시련에도 산에는 산신당, 바다에는 해신당, 마을에는 본향당이 끈질기게 살아남았다. 18,000여 신들이 좌정한 제주다운 저력이다. 본향당 가운데 으뜸은 18,000 신들의 어머니인 금백조를 주신으로 모시고 있는 송당 본향당이다. 다랑쉬오름에서 이곳으로 발길을 옮겼다.


제주에 좌정하고 있는 18,000여 신. 그리고 그쯤 되는 제주 4·3 사건 희생자. 금백조 신에게 제주의 신들이 희생자 한 명씩을 맡아 그들의 한을 풀어 주고 슬픔을 위로하게 해 줄 수 없느냐고 요청하면 안 될까? 송당 본향당 뒤에는 당오름이 있다. 본향당이 있는 오름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368개 오름의 중심이며 18,000여 신들의 중심이라고 불리는 당오름의 정상에 올라 그들의 해원을 간절히 기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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