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전에는 초상이 났을 때 상가에서 밤샘해주는 게 미덕이었다. 그때는 어느 상갓집에 가도 밤새 술을 마시며 화투를 치는 사람들이 있었다. 때로는 상주가 밤샘해달라는 의미로 화투판 판돈을 대주기도 했다. 어느 해, 이웃 도시의 타짜들이 부여에 원정도박을 와서 하룻밤 사이에 부여 초상집을 휘저으며 많은 돈을 챙겨간 일이 있었다. 이 소식을 전해 들은 친구가 그 도시에 가서 부여에서 걷어갔다는 돈의 몇 배를 벌어왔다. 한때 ‘타짜’라 불리었던 그가 어렵사리 노름의 늪에서 벗어난 뒤 내게 현란한 화투 기술을 선보이며 들려준 이야기다.
노름은 ‘놀다’라는 동사의 명사형이다. 흥미로운 것은 ‘놀음’이라는 말도 ‘놀다’에서 비롯됐다는 사실이다. ‘노름’과 ‘놀음’은 형제나 자매처럼 뿌리가 같은 것이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흥이 많았고 ‘놀음’에 익숙했다. 특히 가을걷이가 끝나면 하늘에 감사하는 제사를 지내고 나서 밤낮으로 술을 마시고 노래 부르고 춤을 추며 놀았다. 부여의 ‘영고(迎鼓)’, 고구려의 ‘동맹(東盟)’, 예맥의 ‘무천(舞天)’이 바로 이런 풍속이다. 오늘날 전 세계 음악 애호가들을 매료시킨 K-Pop도 우리 핏줄에 면면히 흐르는 ‘놀음’의 DNA에서 비롯됐다고 해도 될 듯싶다.
가을걷이가 끝난 농한기에 즐기던 ‘놀음’이 ‘노름’으로 바뀐 적이 있었다. 어느 해 겨울. 작은 시골 마을에 가을걷이가 끝나고 농산물을 수매한 목돈이 들어올 즈음 ‘타짜’들도 스며들었다. 그들은 순진한 척 내기 화투에서 돈을 잃어주며 마을의 농부들을 노름판으로 끌어들였다. 겨울이 지났을 때 타짜들은 안개처럼 사라졌고 마을은 쑥대밭이 되었다. ‘놀음’ 대신 ‘노름’을 즐겼다가 엄청난 대가를 치른 것이다.
우리나라 설화에 ‘궁상이와 해당금이’이야기가 있다. ‘노름’을 좋아한 궁상이는 옥황상제의 노염을 사 인간 세상으로 쫓겨났다. 그는 인간 세상에서 해당금이를 만나 결혼했지만, 그녀가 너무 예뻐서 잠시도 떨어지기 싫다며 집안에 틀어박혀 지냈다. 이러다가 굶어 죽게 될지 모른다고 생각한 해당금이가 자신의 초상화를 그려서 궁상이에게 주며 일하다 보고 싶을 때 한 번씩 보라고 했다. 어느 날 나무에 걸어 놓은 해당금이의 초상화가 바람에 날려 그 고을 최고 부자인 배선의 집에 떨어졌다. 해당금이에게 반한 배선은 그녀를 빼앗을 요량으로 금덩이를 들고 궁상이를 찾아가 내기 장기를 제안했다. 금덩이에 욕심이 난 궁상이 아내를 판돈으로 걸었다가 지고 말았다. 우여곡절 끝에 궁상이는 해당금이와 재회하게 됐지만, 여전히 일은 하지 않고 부인 뒤꽁무니만 쫓아다녔다. 그 모습에 화가 난 옥황상제가 궁상이는 해, 해당금이는 달이 되게 하여 둘이 만나지 못하도록 떼어 놓았다. 하지만 가끔은 옥황상제 눈을 피해 해당금이가 낮에 나타나 궁상이를 만나기도 했다. 낮달이 뜨는 날이 바로 그날이다.
그 옛날 일확천금을 노리다가 아내마저 잃은 한심한 궁상이나 농산물 수매대금을 모두 날린 농민들이 뭐가 다를까? 영화 ‘타짜’가 현실과는 얼마나 다를까?
한동안 사라진 듯 보였던 ‘노름’의 DNA가, 궁상이가 슬금슬금 존재를 드러내고 있다. ‘영끌’해서 집을 사고, 주식 투자하는 젊은이가 늘어나는 것은 땀 흘려 노력하면 미래가 나아질 것이라는 희망이 사라져서 그런 것은 아닐까? ‘보편적 복지’라는 괴물이 근로의욕은 살리지 못하고 잠자고 있던 궁상이를 깨운 것은 아닐까? 이미 궁상이를 깨웠다면 아름답고 지혜로운 해당금이도 같이 깨우던지.
타짜 친구가 “노름해서 아무리 많은 돈을 따도 용돈으로나 쓰지, 그 돈으로 부자가 될 수는 없어!”라고 했던 말이 떠오른다. 옳다는 생각이 든다. 그렇다면 이제라도 궁상이를 다시 재울 방법은 없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