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에 사는 처 이모 내외가 귀국하여 가족모임을 갖게 됐다. 가족이라는 게 어제 만나고 오늘 또 만나도 반가운 법인데 몇 년 만에 만났으니 오죽하겠는가. 안부를 묻고 반가움을 표시하느라 도떼기시장이 만들어졌다. 잠시 후 한 사람이 “지난번 만난 게 엊그제 같은데 벌써 10년이나 됐어?”하며 놀랍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을 듣고 내가 “세월의 빠르기는 자기 나이에 비례한답니다. 10년 금방 가죠.”라고 대답했다. 내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다른 사람이 “그게 아냐. 자기 나이에 비례하는 게 아니고 자기 나이의 제곱에 비례한데!”라고 받았다. 그러자 “그러면 죽음을 향해 너무 빨리 달려가는 거잖아!”하는 볼 멘 소리가 튀어나오는 바람에 그 말이 맞느니 아니니 하며 또다시 도떼기시장이 벌어졌다. 나이가 들어도 죽음과 가까이 하기는 쉽지 않은 모양이다.
말이 씨가 된 것일까? 창덕궁 후원에 가기로 했던 나들이가 종묘로 바뀌었다. 살아있는 사람의 낙원에서 죽은 사람의 낙원으로 목적지가 바뀐 것이다. ‘쏜 살 같은 세월’을 종묘에 와서 실감했다. 마지막으로 종묘를 찾았던 때가 어제 같은데 벌써 30년이나 지난 것이다. 살아생전 아버지는 종묘제례의 헌관으로 자주 참여하며 그것을 무척 자랑스러워했다. 그 당시 종묘제례는 영친왕의 아드님인 이구(李玖)씨가 주관했는데 이구씨마저 타계한 다음에는 전주 이 씨 가운데 사회적 명망이 있는 사람이 주관했다. 아버지가 헌관에 위촉되지 않으면서 자연스레 종묘로 향한 나의 발걸음도 뜸해졌다.
종묘에 들어서자 젊고 쾌활한 문화해설사가 맞이했다. 그녀는 생동감 넘치는 목소리로 돌로 포장된 길을 가리키며 영혼이 다니는 신로(神路)이니 밟지 않도록 주의하라고 했다. 주의사항을 들은 이후 신로를 밟거나 가로지르지 않으려고 애쓰는 사람들을 보며 예전 모습을 떠올렸다.
아버지와 함께 참석했던 종묘대제 때 조복을 갖춰 입은 헌관들이 향대청을 떠나자 많은 사람들이 그 모습을 보려고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루었다. 그때 누군가가 큰 소리로 “신로를 밟지 마세요! 신로에서 내려오세요!”하고 외쳤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을 뿐 신로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무슨 뜻인지 몰랐던 것이다.30여 년의 시간이 지나는 사이에 관람객들의 교양과 의식 수준이 높아졌음을 느끼게 하는 순간이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함없이 기가 막히게 아름다운 종묘 나들이를 마치면서 문화해설가에게 “어떻게 하면 그렇게 많이 알 수 있어요?” 하고 웃으며 물었다. 그녀도 환하게 웃으며 “월급을 받아서랄까? 그런 게 아닐까요? 호호호.” 하며 대답했다.그 표정이 상큼했다.
돌로 포장된 길의 한 가운데가 신로(神路)다.
원래 종묘는 창덕궁과 후원 그리고 창경궁이 하나로 연결된 영역으로 ‘동궐’이라 불리던 복합 궁궐이었다. 그런데 일제강점기인 1931년에 북한산의 주맥에서 창경궁을 지나 종묘로 흐르는 정기를 끊어 민족혼을 말살시키려고 창덕궁과 종묘 사이에 도로를 만들었다. 바로 율곡로다. 조선총독부가 벌인 수많은 만행이 여기도 비켜가지 않은 것이다.
종묘~창경궁 복원 위해 터널화되는 율곡로
다행히 창경궁과 종묘 사이를 원래대로 다시 연결시키기 위해 돈화문 삼거리에서 원남 사거리까지 율곡로 구간을 지하 터널길로 변경하는 공사가 진행되고 있다. 이 공사가 끝나면 기가 막힌 종묘에 북한산의 정기가 아낌없이 쏟아져 들어와 기가 넘치는 곳이 되겠지. 신로를 존중해 주는 사람들이 많아지고 종묘에 기가 넘치면 이곳에 모셔진 영령들도 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애를 쓰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