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만에 다시 찾은 바닷가 우체국. 작년에 이곳을 떠날 때 비가 왔는데 올해에도 비가 올 것 같이 하늘이 잔뜩 찌푸려 있었다. 날씨가 흐리다고 설레는 마음이 사라지기야 할까? 강정마을을 향해 힘차게 첫발을 내디뎠다. 강정마을을 지나는데 흐린 날씨에도 어떤 남자가 상복을 입고 3보 1배를 하고 있었다. 관심을 보이는 사람들도 없는데 묵묵히 앞을 보며 간다. 국가 안보를 기원하는 의식은 아닌 것 같고 해군기지 건설을 반대하는 행위처럼 보였다. 사실 강정마을에는 해군기지 건설이나 해군관사 건축을 반대하는 플래카드가 어지럽게 뒤덮여 있고 크고 작은 천막들이 난립해 있어 이곳이 국가 안보와 평화롭게 살 권리가 첨예하게 충돌하고 있는 현장임을 말해 주고 있었다. 천막 안에는 무표정한 얼굴들이 앉아 있었는데 곳곳을 순시하는 무심한 듯한 경찰의 모습과 묘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나른한 긴장이 머무는 이 곳을 말없이 지나면서 ‘평화롭게 살 권리’라는 것이 NIMBY의 다른 말은 아닐 거라고 기대해 봤다.
잠시 뒤 화려하고 장엄한 절이 나타났다. 육지에 있는 어떤 절보다 더 장엄하고 위압적인 모습에 깜짝 놀랐다. 대적광전 앞에서 잠시 주춤거리자 보살 한 분이 2층에 8만 부처님을 모셔 놓았으니 올라가 보라고 넌지시 권했다. 절 집에 왔으면 주인장에게 인사는 하고 가는 법. 신발을 벗고 법당에 들어섰다. 대단했다. 본존불인 비로자나불도 크기와 화려함이 대단했고, 2층 복도를 꽉 메운 작은 부처 상들도 실제로 그 수효가 8만 개 인지는 알 수 없으나 찬탄을 불러내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나한전의 500 나한상도 다른 절과 달리 제법 크게 만들어 놓아 장관을 이루고 있었다. 그 많은 8만 부처와 500 나한상 밑에는 사람의 이름이 하나씩 쓰여 있었다.
강정마을에서는 국가 안보와 평화롭게 살 권리가 부딪히고 있는데 이곳에 시주한 사람들은 무엇을 꿈꾸고 있을까? 상념에 젖어 대적광전을 돌아 나오려는데 중국인 일가족이 각기 머리에 공양할 쌀 3 봉지씩을 이고 불단 앞으로 다가서는 모습이 보였다. 우리네 공양법과 다른 그들의 모습을 흥미롭게 바라보고 있었는데 갑자기 여자아이가 머리에 이고 있던 쌀 봉지를 바닥에 떨어뜨려 불단 앞이 쌀로 하얗게 덮여버렸다. 부처님은 흩어진 쌀을 보며 무슨 생각을 했을까?
절을 뒤로 하고 발길을 옮기기 시작하자 바람이 거칠게 불어오며 간간이 비를 뿌렸다. 몇 번 겪어 본 비바람이지만 친해지려면 시간이 더 필요할 것 같다. 어렵사리 숲길을 지나 바닷가에 이르렀다. 바닷가를 따라 걸으며 먼 대양을 바라보니 복잡했던 마음이 확 풀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이곳에서 자연이 만든 걸작을 봤다. 바닷가를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육각형 모양의 긴 기둥들. 주상절리였다. 바다에는 걸작이 많았다. 중문을 지나 대평포구 근처에서는 갑자기 앞을 막아서는 거대한 벽을 만났다. 박수기정이었다. ‘샘물이 솟아나는 절벽’이라는 뜻의 제주도 사투리인데 고려 때 원나라에 진상할 말을 키운 곳이었다고 한다. 석양에 물든 박수기정은 그야말로 환상 그 자체였다. 박수기정을 넘고 화순 금모래 해변을 지나 오후 늦게 도착한 용머리 해안도 절경이었다. 한국판 그랜드 캐년이라고나 할까? 바람이 거세거나 밀물 때에는 출입을 통제한다는 곳. 이곳을 볼 수 있는 날이 1년에 며칠 되지 않는다는 말에 더욱 궁금했었는데 다행히 들어갈 수 있었다. 용머리 해안은 바람이 만든 걸작인지 바다가 만든 걸작인지는 모르지만 사람의 손으로 빚을 수 없는 것만은 분명해 보였다. 이처럼 제주도의 바닷가에는 화려했던 절보다 더 화려하고 장엄한 자연의 걸작들이 펼쳐져 있었다. 그 걸작들 앞에서 겸허한 마음으로 조심스레 옷깃을 여미었다.
샘물이 솟아나는 절벽'이라는 의미의 제주도 방언인 '박수기정'. 해질 무렵의 박수기정 모습은 황홀 그 자체였다.
제주에는 후덕한 인심도 있었다. 착한 가격으로 돔베 고기에 옥돔 한 마리 구워주던 그 집이 그리워 일부러 다시 찾아갔다. 제주 토속음식을 정갈하게 내놓는 집인데 외국인들도 꽤 눈에 띄었다. 1년이 지났어도 반찬은 그대로인데 다른 집과는 달리 가격을 한 푼도 올리지 않았다. 맛있는 음식과 훈훈한 인정으로 속을 든든히 채우고 하루를 마감했다. 다음 날 월평마을에서는 단지 어디에서 본 것 같다는 이유만으로 1개 만원이 넘는다는 큼직한 천혜향을 흠집이 조금 있어 상품성이 떨어진다며 먹어 보라고 건네주는 아낙을 만나기도 했다. 박수기정이 있는 대평포구에서도 작은 슈퍼의 주인이 마침 개업 떡을 받았다며 먹어 보라고 듬뿍 나눠 주었다. 무슨 떡인지는 모르지만 고맙다며 받았더니 푸근하게 웃으며 볼 품 없게 생기긴 했지만 맛은 그만이라며 귤도 한 보따리 싸준다. 슈퍼 주인이 준 인정이 밤새 다 달아날까 봐 그 많은 떡을 모두 먹어 치웠다.
인심이 좋으니 개도 사람을 닮아가나 보다. 대평포구를 떠날 때 검은 털을 가진 시추 한 마리가 따라왔다. 처음에는 동네에서 얼쩡거리는 그런 개이려니 했다. 하지만 앞장서서 박수기정을 향해 가더니 갈림길이나 굽은 길을 만나면 다가오기를 기다리기라도 하는 것처럼 멈춰 있다가 눈이 마주치면 다시 앞으로 나아가곤 했다. 처음에는 개가 나를 따라오다 집을 잃을까 염려되어 쫓아보기도 했지만 도통 떠날 생각을 하지 않아 나중에는 동무하며 같이 걸었다. 시추의 안내를 받으며 화순 금모래 해변에 도착하니 점심시간이 지났다. 늦은 점심으로 제육볶음을 시켜 반 넘게 나누어 주었더니 시장하였던지 마파람에 게눈 감추듯 먹어 치웠다. 대평리에서 화순 금모래 해변까지 안내해준 시츄에게 겨우 제육볶음 반 그릇으로 고마움을 표시했다. 식사가 끝나자 시추는 인사라도 하듯 내 주변을 잠시 깡총거리며 맴돌다가 대평포구에 있는 제 집을 향해 쏜살같이 사라져 버렸다. 화순에서 그 개는 유명했다. 하루에 한 번씩 올레꾼을 대평포구에서 박수기정을 넘어 화순 해변까지 안내해 주는 영특한 올레지킴이였던 것이다.
트레킹 마지막 날, 송악산을 지나게 되었다. 송악산은 지질학적으로도 중요하지만 이곳 자체가 절경이었다. 부남코지를 지나 전망대로 이어지는 산책로는 푸른 바다를 가슴에 안고 걷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키게 했다. 눈 앞에 잡힐 듯이 떠 있는 가파도나 마라도는 덤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곳을 지나면서 우리 민족의 아픈 역사도 곱씹어야 했다. 태평양전쟁 말기, 일제는 미군의 공격에 대비해 수많은 동굴진지와 알뜨르 비행장 그리고 격납고들을 이 일대에 만들었는데 그 잔재가 곳곳에 남아 있었다. 이 많은 시설들을 만드는 동안 희생됐을 제주도민들의 고통이 가슴을 저리게 한다. 슬픈 과거를 반추하며 송악산에서 모슬포를 향해 걷는데 까닭 없이 강정마을이 떠올랐다. 강정마을은 우리에게 국가안보와 평화로운 삶을 동의어로 만들어 줄까 반의어로 만들어 줄까?
제주 송악산 서남쪽에 있는 부남코지. 마라도와 가파도가 손에 잡힐 듯 보인다.모슬포에 도착하니 맥이 다 풀리는 것 같았다. 일정이 다 끝난 탓이겠지. 누군가가 왜 그렇게 힘들여 올레길을 걷느냐고 묻는다면 이유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할 거면서 이번에도 걷고 또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