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제고기(百濟古記)』에서는 ‘부여성(扶餘城) 북쪽 모퉁이에 큰 바위가 아래로 강물에 닿아있는데, 전해오는 말로는 의자왕과 모든 후궁이 죽임을 면하지 못할 터이니 남의 손에 죽지 말고 차라리 자살하자며 강에 투신하여 죽었다고 하여 세상에서는 타사암(墮死巖)이라고 한다.’라고 하였다. 이것은 속설(俗說)이 잘못된 것이다. 다만 궁인(宮人)이 떨어져 죽었더라도, 의자왕이 당에서 죽었다는 것은 당사(唐史)에 명백히 기록되어 있다.
백마강에 고요한 달밤아
고란사에 종소리가 들리어오면
구곡간장 찢어지는 백제 꿈이 그립구나
아 달빛 어린 낙화암의 그늘 속에서
불러보자 삼천궁녀를~
무왕이 측근 신하들을 데리고 사비하 북쪽 포구에서 잔치를 베풀었다. 포구의 양쪽 언덕에 기암괴석이 있고, 그사이에 진기한 화초가 있어 마치 그림 같았다. 왕이 술을 마시고 몹시 즐거워하여 거문고를 켜면서 노래를 부르자 수행한 자들도 여러 번 춤을 추었다. 당시 사람들이 그곳을 대왕포라고 불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