햇살이 만든 거리

사랑, 여행 그리고 기억

by 아마도난

니스의 하늘은 더없이 눈부셨다. 4월 초순, 공기 끝에는 여전히 계절의 쌀쌀함이 살짝 묻어 있었지만, 쏟아지는 지중해의 따사로운 햇살을 가리기엔 역부족이었다. 기온은 섭씨 20도를 채 넘기지 않았음에도, 성급한 사람들은 벌써 해변의 자갈밭 위에 수영복 차림으로 누워 태양의 축복을 온몸으로 받아내고 있었다.



가장 먼저 발길이 닿은 곳은 '캐슬 힐(Colline du Château)'. 그곳에서 내려다본 니스 시가지는 마치 화가가 공들여 칠해놓은 오렌지빛 지붕의 파노라마 같았다. 무엇보다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바다였다. 햇살을 받아 잘게 부서지는 '윤슬'이 쪽빛 바다 위를 가득 메우고 있었다. 그 찬란한 반짝임은 마치 수천 개의 보석을 바다에 흩뿌려 놓은 듯 환상적이었다.



그 눈부신 풍경을 뒤로하고 내려오니, 니스의 심장이라 불리는 '프로므나드 데 장글레(Promenade des Anglais)'가 활기찬 인파로 넘쳐나고 있었다. 이 길을 걷다 보면 자연스레 이곳에 얽힌 옛이야기들이 떠오른다. 특히 세간에 전해지는 프랑스 남자와 영국 여자의 사랑 이야기는 이 길의 낭만을 더하는 양념과도 같다. 18세기와 19세기, 영국의 귀족 여인들은 추운 겨울을 피해 이곳 니스로 모여들었다. 우아한 드레스를 입고 양산을 든 채 이 길을 산책하던 영국 여인들과, 자유분방하고 열정적인 기질을 가진 현지 프랑스 남자들의 마주침은 그 자체로 한 편의 소설이 아니었을까.



문득 이스탄불의 '피에르 로티 언덕'이 겹쳐 보였다. 프랑스 해군 장교 피에르 로티와 튀르키예 여인 아지야데의 애틋한 사랑이 깃든 그 언덕처럼, 이곳 프로므나드 데 장글레 역시 국경과 문화를 초월한 인연의 무대였으리라. 활기 넘치는 거리 곳곳에서 느껴지는 사람들의 미소와 친절함을 마주하니, 이것이야말로 프랑스가 가진 진정한 매력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걷다 보니 평소보다 더 활기찬 풍경이 펼쳐졌다. 우연히 마주친 광경은 바로 '노 피니시 라인 니스(No Finish Line Nice)' 행사였다. 이름 그대로 '결승선이 없는' 이 독특한 자선 행사는 사람들이 걷거나 뛴 거리만큼 기부금이 쌓여 도움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해 쓰인다고 했다.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번호표를 가슴에 달고, 각자의 속도로 프로므나드 데 장글레를 따라 걷는 모습이 무척이나 인상적이었다. 유모차를 밀고 가는 젊은 부부, 손을 맞잡고 천천히 발을 맞추는 노부부, 그리고 혀를 내밀고 신나게 뛰는 강아지들까지. 경쟁이 아닌 나눔을 위해 걷는 이들의 얼굴에는 햇살보다 더 밝은 유쾌함이 서려 있었다.



결승선이 없다는 것은, 어쩌면 우리가 걷는 이 길과 인생도 마찬가지 아닐까 싶었다. 어딘가에 도달하기 위해 서두르기보다, 지금 이 순간 곁에 있는 사람의 손을 잡고 눈앞의 윤슬을 즐기는 것. 그것이 여행이 우리에게 주는 가장 큰 선물이자 인생이라는 긴 산책로를 즐기는 방법일 것이다.

프랑스 남자의 친절한 미소와 영국 여자의 우아한 산책이 겹쳐진 이 길 위에서, 4월의 니스를 만끽했다. 따스한 햇살, 시원한 바닷바람, 그리고 나눔을 위해 걷는 사람들의 활기찬 에너지까지. 모든 것이 완벽하게 어우러진 이른 봄의 니스는, 내 기억 속에 가장 유쾌하고 눈부신 한 페이지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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