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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아마도난 Jun 23. 2019

어쩌라고....

독일 여행

인천을 출발한 비행기는 저녁 무렵 프랑크푸르트 공항에 도착했다. 이곳에서 열차를 이용하여 곧바로 첫 번째 여행지인 뷔르츠부르크로 이동했다. 독일 열차의 지연운행은 일상이었다. 프랑크푸르트 공항에서 뷔르츠부르크로 가는 열차도 늦게 도착하는 바람에 호텔에는 거의 자정이 되어서야 체크인을 할 수 있었다. 도착하는 날부터 깊은 밤에 낯선 도시를 헤매다니. 독일에 있는 동안 제시간에 출발한 열차를 탄 것보다는 지연된 열차를 탄 횟수가 월등히 많았다. 그런데도 항의하는 사람이 없다고 한다.




쾰른에서 프랑크푸르트로 이동할 때였다. 항상 그랬듯이 열차 출발 예정시간보다 20분쯤 일찍 플랫폼으로 갔다. 실수하거나 돌발 상황이 벌어졌을 때 대처할 수 있는 시간을 만들기 위한 나름의 방책이었다. 열차 출발시간이 가까워지자 뉘른베르크 행 열차가 15분 늦는다는 안내가 전광판에 나타났다. 우리가 탈 열차는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뉘른부르크가 종점인 열차였다. 열차는 7번 플랫폼으로 들어오게 되어 있었는데 바로 옆 6번 플랫폼에도 뮌헨행 열차가 40분 늦는다는 안내가 떠 있었다.


뉘른베르크 행 열차는 15분은커녕 35분이 지났어도 오지 않았다. 예정시간이 훨씬 지났어도 플랫폼을 가득 메운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조용히 기다리고 있었다. 참으로 낯선 풍경이었다. 그러다가 갑자기 전광판에서 뉘른베르크 행 열차가 사라졌다. 예기치 않은 일에 당황해 하자 옆에 있던 독일 여자가 “역무원이 그러는데 열차가 곧 도착한대요.”라며 우리를 안심시켜줬다. 바로 그 순간 안내방송이 나왔다. 보통은 독일어에 이어 영어로도 했는데 이번에는 독일어로만 안내하고 방송이 끝났다. 어리둥절해 하자 친절한 독일 여자가 플랫폼이 7번에서 6번으로 바뀌었다며 자기를 따라오라고 손짓을 했다. 그때 7번 플랫폼으로 진입하는 열차가 있었다.


혹시나 하는 마음으로 진입하는 열차의 행선지를 확인했다. 맙소사! 프랑크푸르트를 거쳐 뉘른부르크로 가는 바로 그 열차였다. 6번 플랫폼으로 옮겨가는 대신 서둘러 열차에 올랐다. 하지만 대부분의 승객들은 머뭇거리기만 할 뿐 열차에 오르려 하지 않았다. 심지어 아내는 내게 하차할 것을 요구했다. 얼굴을 찌푸리며 승차하도록 채근하자 마지못해 열차에 오르기는 했지만 아내의 눈빛에는 불안한 기색이 역력했다. 잠시 후 독일어로 안내방송이 나오더니 플랫폼에 있던 승객들이 우르르 열차에 오르기 시작했다. 그 사람들 중에는 친절한 독일 여자도 섞여 있었다. 독일 철도 시스템의 만성적인 지연운행에 독일어 소통능력 부재가 겹쳐 하마터면 열차를 놓칠 뻔했다.






소통이 안 돼 어려움을 겪은 일은 이것만이 아니었다. 뉘른베르크에서 열차로 40분쯤 거리에 밤베르크가 있다. ‘독일의 베니스’라는 별명이 붙은 작고 예쁜 도시다. 호텔에 여장을 풀고 Altenburg Castle로 향했다. 밤베르크에서 가장 높은 곳에 있어 전망이 아주 뛰어나다는 곳이다. 구글을 검색해서 그곳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버스는 출발한 지 5분도 되지 않아 ZOB, 즉 종합버스터미널에 도착했다. 그곳에서 모든 사람들이 하차했다. 이렇게 황당할 수가…. 기사에게 Altenburg Castle을 가려면 어느 버스를 타야 하느냐고 물었지만 그는 콧방귀(?)만 뀌고 아무 대꾸도 하지 않았다. 영어를 못 알아듣는지 아니면 동양 사람이라고 무시하는 건지…. 하여튼 우여곡절 끝에 목적지를 찾아갈 수 있었다.






 

밤베르크에서 겪은 것과 비슷한 일을 베를린에서도 겪었다. 베를린 동물원 역에서 알렉산더 광장을 오가는 시내버스는 베를린 시내의 주요 관광지를 대부분 지나가기 때문에 관광객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저렴한 시티투어 버스나 다름없었던 것이다. 2층 버스가 오기를 기다렸다가 2층 맨 앞자리에 앉았다. 약간의 자리싸움도 했다. 버스는 출발한 지 10분쯤 지나 전승기념탑에 도착하여 로터리를 한 바퀴 돌더니 정류장에 멈췄다. 전승기념탑을 다양한 각도에서 찍을 기회를 주었다며 좋아하고 있는데 운전기사의 안내방송이 나왔다. 방송이 끝나자 몇 사람만 남기고 우르르 내렸다. 남은 사람들은 독일어를 못 알아듣는 관광객들이었다. 고등학교 때 열심히(?) 배웠던 독일어는 수 십 년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Ich liebe dich!”만 남기고 모두 사라진 모양이다. 잠시 후 버스기사가 내리라고 손짓하는 바람에 엉거주춤 내렸다.  버스종점이란다. 알렉산더 광장이 종점인 줄 알았는데…. 덕택에 그날 일정은 제대로 꼬여 버렸다





드레스덴의 호텔에서 친절한 독일인을 만났다. 그는 우리를 보자 미소를 지으며 “Guten Morgen, morgen!” 하며 인사를 보냈다. 나도 입가에 웃음을 지으며  “Guten morgen!” 하고 응대를 했다. 엘리베이터에 오르자 그는 내가 독일어를 할 줄 안다고 생각했는지 빠른 속도로 말했다. 그의 말속에 Japanisch와 Koreanisch가 섞여 있어서 일본 사람인지 혹은 한국사람인지를 묻는 것 같아서 “Korean!”이라고 대답했다. 맞는 대답을 했던 모양이다. 이어서 그가 여전히 빠른 말로 뭔가를 묻는데 말속에 Deutsche와 Englisch가 섞여 있었다. 짐작으로 독일어를 할 수 있느냐, 아니면 영어만 할 수 있느냐 하고 묻는 것 같아 짧은 영어로 “English,  little bit!” 하고 대답했다. 순간 사내가 표정을 일그러뜨리며 “Hier ist Deucheland....” 하고 내뱉듯 말하고는 뒤도 안 돌아보고 사라졌다. 독일에 왔으면 최소한의 독일어는 알고 왔어야 하는 것 아니냐는 불만을 나타낸 것 같았다.




 

나도 그러고 싶다. 하지만 어쩌라고. 짧은 영어든, Body language든 그 나라 여행하는데 지장만 없으면 되는 것 아닌가? 실수하면 대가를 치르면 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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