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재는 베를린 시청으로 사용되고 있고 분단 시절에는 동베를린의 시청이었던 <붉은 시청사>. 그곳에 작지만 의미 있는 청동 조각품이 있다. 조각상의 받침면에는 "Wir sind ein Volk. [우리는 하나의 민족이다]"라는 말이 새겨 있다. 통일이 된 후 동서독 국민이 서로 얼싸안고 한 말이다. 이 말에 앞서 동독 시민들은 "Wir sind das Volk. [우리가 민중이다, (우리가 나라의 주인인 민중이다)]"라는 구호를 외쳤다. 통일이 되기 전 동독에서 시민운동이 강하게 일어났는데 그때 외친 구호였다고 한다. 동독 시민들 스스로가 역사의 주체임을 강하게 인식하게 한 이 구호가 독일 통일의 불을 댕긴 셈이다.
우리처럼 분단국가였던 독일의 통일은 여러모로 부러움의 대상일 수밖에 없다. 베를린을 가로지르는 슈프레 강 위에는 특이한 조형물이 있다. 조나단 보롭스키 (Jonathan Borofsky)의 설치미술 작품인 분자 맨 (Molecule Man)이다. 1997년에 설치된 것으로 실제로는 세 사람이 몸을 기울여 팔을 맞댄 형상인데 멀리서 보기엔 마치 두 사람이 서로 껴안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그런 착시 때문에 처음엔 독일 통일을 상징하는 작품인 줄 알았다.
오버바움 다리에서 본 분자맨. 그 모습이 마치 동서화합을 상징하는 것처럼 보인다.
오버바움 다리. 2층에는 전철이 1층에는 사람과 자동차가 다니는 곳으로 다리 중간에는 지금도 동서독 경계선이 남아 있다. 통일 독일의 상징 가운데 하나이다. 슈프레 강 가운데에도 동서독을 구분 짓는 표식이 남아있다. 분단 당시 살벌하게 대치했던 브란덴부르크문이나 검문소는 이제 관광명소로 탈바꿈되어 수많은 사람들을 끌어 모으고 있다.
동서독 대치당시(좌)와 지금의 브란덴부르크 문
찰리의 체크포인트. 서로 탱크를 배치하고 살벌하게 대치했던 자리가 미군 복장을 한 두 남자가 코믹한 어투와 몸짓으로 관광객들과 기념사진을 찍으며 돈을 버는 장소로 변했다.
이제 상징으로만 몇 곳에 장벽을 남겨두고 있지만 도로 위에는 어김없이 장벽이 있었던 곳임을 표시하여 두고 있다.이렇게 좁은 폭의 담벼락을 넘지 못해 독일인들은 몇십 년 동안 가슴앓이를 했다. 그런 한을 풀어주기 위해서였을까?장벽 박물관에는 장벽의 흔적이 남아있는 곳을 자유롭게 넘나드는 사진을 많이 전시해 놓았다.우리는 언제쯤 이런 즐거움을 맛볼 수 있을는지...
통일이 되자 세계 각국의 화가들이 남아있는 장벽에 그림을 그리기 시작했다. 바로 이스트사이드 갤러리다.
분단의 아픔을 극복하고 통일을 이룬 독일. 그들은 아픔의 현장을 그대로 살려놓았다. 나치에서 분단국가까지 인류가 기억해 두어야 할 것들을 잊지 않기 위해 세계 각국에서 이곳으로 사람들이 몰려드는 게 아닐까? 우리도 "우리는 한 민족이다!"를 외치면 이들처럼 하나의 나라로 통합되고 우리의 아픔을 기억 속으로 밀어 넣을 수 있을까? 베를린이라는 이름이 긴 여운으로 따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