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쯤 돌아볼 때

by 아마도난

책을 펼쳤다. 이지를 넘길 때마다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것처럼 용 하나하나가 새롭게 다가왔다. 마치 마른 스펀지에 물이 스며들 지식이 새록새록 채워지는 느낌이 든 것이다. 명색으로나마 글을 쓴다는 인사가 그동안 책을 너무 멀리했다는 반성도 다. 어찌 됐든 손에 잡히는 책들이 모두 재미있었다. 젊은 작가들의 감각적인 수필에서, 우리나라 독자들의 폭넓은 사랑을 받는 일본 작가들의 작품에서 그리고 유럽의 거장들이 쓴 소설에 이르기까지 손에서 내려놓기가 싫었다. 소설이나 수필만 읽은 게 아니었다. 갓난아이가 손에 잡히는 것은 무조건 입으로 가져가듯 마을 도서관에 있는 책을 닥치는 대로 읽었다.



냉장고 파 먹듯 도서관 파먹기를 하고 나니 다시 글을 쓸 수 있을 것 같았다. 책 제목을 '루프'에서 '오, 살아봐!'로 바꾸었다. 일본의 시와스마쓰리가 끝나는 마지막 날, 모든 사람들은 '오 사라바'를 외치며 이별의 아쉬움을 달랜다. 우리말 '오! 살아봐'가 변형된 것이다. 이 외침을 제목으로 가져왔다. 그리고 정가왕 (데이카오)을 매개로 시와스마쓰리와 일본 고대사의 중대한 전환점이 된 '임신란'을 연결시켰다. 순간 '역사왜곡 장르 작가'라고 농을 던지곤 하던 친구가 생각났다. 동안 야기를 풀어간답시고 무리하게 설정을 했나 싶어 번에는 그의 애정 어린 표현 신경 쓰인 것이다.





시와스마쓰리를 임신란에 연결시키고 나니 승천석 교수의 그림자가 글 전체를 덮어버렸다. 잘 알지도 못하는 일본 고대사가 소설 곳곳에 불쑥불쑥 끼어든 것이다.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더니 영락없이 그 짝이었다. '오! 살아봐'의 배경은 미야자끼의 미카도인데 소설의 무대는 오사카 인근의 비와호가 되어 버렸다. 승천석 교수 책에서 얻은 일본 고대사 지식이 머릿속을 휘저은 탓이리라. 뭔가에 꽂히면 좀처럼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고질병이 또 도졌다.


새로운 것이 필요했다. 그때 눈에 들어온 것이 '은산별신제'에 대한 학술보고서와 '중국의 나당희'에 대한 탐사보고서였다. 두 민속과 관련된 보고서들이다. 내친김에 바리공주, 진도 씻김굿, 서울 굿' 등 우리나라 무속에 관한 글들과 은산별신제를 상징하는 대무당 이어인년의 자료를 읽었다. 만 아니라 민속학자 임동권 교수의 유작들도 찾아 읽었다. 덕택에 무당에 대해, 굿에 대해 작은 소양을 쌓을 수 있었다.




비로소 승천석 교수의 그림자를 밀어내고 균형을 잡을 수 있었다. 줄거리를 수정하면서 책 제목을 '한 번쯤 돌아볼 때' 다시 바꿨다. 나를, 내 삶을 그리고 우리 것을 돌아보는 글로 쓰고 싶어 진 것이다. 그렇다고 시와스마쓰리나 은산별신제를 소재에서 배제하지는 않았다. 이야기의 중심에 데이카오는 여전히 자리했고 무대장치도 바꾸지 않았다. 그저 내가 살아온 삶을 한 줌도 섞으려고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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