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랑 입장!" 사회자의 힘찬 외침과 함께 젊고 잘 생긴 사내가 하객을 향해 공손히 절을 하며 식장에 들어섰다. 그의 얼굴에 가득한 웃음을 보니 신부가 떠올라 당연히 그래야지 하는 생각을 했다. 신부가 보통 매력덩이던가? 선남선녀라더니 주단 길을 걸어오는 신랑의 얼굴도 연예인 뺨친다. 결혼식의 주인공이라지만 너무 잘 생겨서 아들 또래의 남자에게 공연히 질투가 났나 보다. 손뼉 치던 손이 어느새 제자리로 돌아와 있었다.
신랑이 자리를 잡고 조금은 오만스러운 자세로 서자 사회자가 곧바로 "신부 입장!"을 외쳤다. 조명이 약간 어두워지고 특유의 웨딩마치가 울려 퍼지는 가운데 다소곳이 인사하는 신부의 모습이 보였다. 신부의 손을 잡고 있는 남자는 아버지임에 분명한데 자세가 엉거주춤하니 영 어색하다. 그래. 처음이니까 저럴 수 있어. 둘째 딸을 여의게 되면 잘하겠지? 잠깐! 저 양반에게 둘째 딸이 있던가?
신부 아버지의 축사 장면
조명이 조금 밝아지고 거리도 조금 더 가까워졌을 때 신부 아버지가 환하게 웃는 모습이 보였다. 마치 연인의 손을 처음 잡는 사람처럼 여전히 어정쩡한 자세였지만 표정만큼은 행복에 겨워 보였다. '저 표정의 의미는 뭐지?' 곧바로 신부의 얼굴로 눈길을 옮겼다. 아버지보다 더 환하게 웃고 있다. 표정만 그런가? 연신 주변을 둘러보며 기쁨을 아낌없이 흩뿌리고 있었다. '아빠와 같이 걷는 게 즐거운가? 아니면 신랑에게 가까워지는 게 기쁜가? 뭐지?' 딸을 사위에게 인도하고 돌아서는 아버지는 만면에 웃음을 가득 담고 있었다. 예식이 진행되는 동안 신랑, 신부는 감정표현을 숨기지 않았다. 상대방의 손등을 쓰다듬고 팔을 문지르며 마주 보고 웃는 등 끊임없이 애정을 드러내고 있었다. 이거 너무 노골적인 거 아냐?
사회자가 신랑 신부 퇴장을 선언하며 ‘버진 로드’ 주변에 앉아있는 하객들은 일어나 박수를 쳐줄 것을 요청했다. 버진 로드? 귀에 거슬렸다. 주단 길도 있고 꽃길이라는 표현도 있는데 굳이 영어 단어를 쓰는 이유는 뭐야? 게다가 사회자가 KBS 아나운서라며? 속으로 온갖 말을 구시렁거리며 두 사람이 퇴장하는 모습을 보다 예식이 시작할 때 화촉을 밝히러 들어오던 양가 어머니들이 떠올랐다. 신부의 어머니 대신 고모가 화촉을 밝히는 모습을 보며 보름 뒤에 결혼할, 경제적으로 어려울 때 어미를 여의고도 잘 자라서 시집을 가는 조카딸이 생각난 것이다. 조카딸의 화촉은 누가 밝혀줄까?
결혼을 앞두고 예비신랑을 소개한다며 집으로 데려왔던 조카딸. 두 녀석들은 이야기를 하면서도 잡은 손을 놓지 않았고, 틈만 나면 팔을 어루만지고 등을 쓰다듬는 등 애정표현도 감추지 않았다. 눈앞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있는 두 남녀와 똑같은 행동을 그 녀석들도 했었던 것이다. 예전 같으면 상상도 못 할 경망스러운 짓(?)을 보이는 그대로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았다. 녀석들을 돌려보내고 아내에게 내 느낌을 얘기하자 그녀도 비슷한 느낌이었다며 동감을 표시했다. 이래서 천생연분인가?
신부와 신부 아버지가 너무도 좋아하는 모습을 보며 옆에 앉은 지인에게 “노골적으로 좋아하는 모습을 보니 푼수 같네요. 글감 하나 잡았습니다.”라고 말하자 그녀는 “요즘 젊은이들은 다 그래요.” 하며 웃음으로 대꾸했다. 대답을 듣고 나니 그들이 ‘푼수’가 아니고 내가 ‘꼰대’였구나 하는 생각이 퍼뜩 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