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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Oct 18. 2021

해마다 찬바람이 불면

에너지 가격이 왜 오르지?

아침에 휴대폰을 열어보니 세상 반가운 소식이 있습니다. 최저기온 20도! 

드디어 제가 사는 홍콩도 가을이 오나 봅니다. 길고 습한 여름이 가고, 에어컨을 24시간 트는 대신 창문만 열어도 선선하니 말이에요. 한국도 갑작스레 겨울 날씨가 되었다는 소식이 들려옵니다. (트렌치 코트는 대체 언제 입으라는 거죠..?)


이제 북반구의 날씨가 제법 쌀쌀해지며, 많은 국가들에서는 난방 수요와 에너지 가격을 슬슬 걱정하고 있습니다. 바로 얼마 전까지는 냉방과 전력 요금을 신경 썼는데 말이에요. 홍콩도 겨울 기온은 꽤나 온난한 편이지만, 실내 난방 시설이 없기 때문에 따로 전기 히터나 온수 매트를 사서 틀어야 하고, 생각 없이 막 쓰다가는 여름철 전력 요금보다도 더 두툼한 전기세 고지서를 받을 가능성이 있답니다. 한국이나 러시아, 캐나다처럼 아예 대놓고 추워서(?) 겨울엔 뜨뜻한 난방이 없으면 살기 어려운 지역도 물론 많고요.



착한 일 좀 하려 했던 것뿐인데: “친환경의 역설”

한국은 가스나 지역난방으로 집을 따스하게 하는 경우가 많은데요, 이것은 다른 나라들도 마찬가지예요. 또 미국 북동부나 캐나다의 경우 아직도 난방용 오일을 사용하는 경우가 많아, 겨울철이 되면 가스와 오일 등 화석연료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게 마련입니다. 그런데 화석연료는 뭐다? 기후변화의 적이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당장 난방을 해야 하는데 화석연료를 쓰지 않고 달달 떨 수는 없기 때문에, 현재의 인프라로는 어쩔 수 없이 화석연료를 소비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에너지 가격입니다. 영국에서는 천연가스 가격이 올해 초보다 무려 250%나 상승했어요. 미국과 아시아도 사정이 별로 낫지는 않아서, 두 배 가까이 상승했다고 해요. 코로나 사태를 겪으면서 뼈저리게 느꼈지만 현대의 세계는 놀라울 만큼 서로 연결되어 있어서, 에너지 가격도 마찬가지입니다. 천연가스 가격이 오르면 덩달아 석유 가격도 오르고, 게다가 천연가스를 태워 전기를 만드는 발전소가 많기 때문에 전력 요금도 함께 상승하거든요.

미국 천연가스 가격 추이 예상 (그래프: Capital.com)


왜 이렇게 에너지 가격이 오르는 걸까요? 


뉴스에서는 ‘친환경의 역설’이라고도 부르는데요, 요즘 화석연료(특히 석탄) 소비를 억제해서 탄소배출량을 억제하려는 노력 때문에 오히려 화석연료 가격이 상승하는 부분이 큽니다. 기후변화의 폐해가 심각하다 보니 이를 좀 막아 볼까 노력하는 것뿐인데 말이에요. 유럽의 경우 예전부터 신재생 에너지에 많은 투자를 감행하고 석탄이나 석유, 천연가스 등 화석연료 소비에 규제를 가하는 정책을 펼쳐 왔는데요, 배출권거래제 같은 정책을 단순히 발전이나 산업 부문 말고도 주거용 난방과 교통 부문까지 넓히겠다고 최근 발표하기도 했지요. 중국도 요즘 국제 사회의 등쌀에 떠밀려 석탄 발전을 줄이며 발전용 천연가스와 석유의 수요가 늘었는데, 이로 인해 일부 지역에 전력난이 심각하게 닥치기도 했습니다.


또한 거대 석유 기업들처럼 기존에 화석연료로 큰돈을 벌어들이던 기업들이 시대의 변화를 감지하고 있다는 점도 한몫합니다. 점점 엄격해져 가는 규제, 재생 에너지나 전기차에 대한 대중의 수요 증가를 인식하고 있기 때문에, 먼 미래에 석유 산업 자체에 대한 전망이 밝지 않다는 거죠. 원래 같으면 10년 후, 20년 후의 채굴 계획까지 쭈욱 세워 놨을 법한 회사들이 이제는 몸을 사리게 됐다는 겁니다. 공급 자체가 위축되니 가격이 상승하는 거죠. 만일 막대한 돈을 들여서 탐사를 하고 개발을 해 놨는데, 사회가 변해서 더 이상 예전처럼 화석연료를 소비하지 않는다면 캐낸 석유는 몽땅 좌초 자산이 될 겁니다. 아무리 지금은 돈을 많이 버는 직업이라도, 10년 후에 없어질 가능성이 있다면 누가 그 직업을 가지려 노력하겠어요? 제레미 리프킨은 마치 현재의 사태를 예언이라도 하듯 다음과 같이 쓰기도 했습니다.


투자자들 역시 벌써 사용되지도 않을 석유의 보충에 돈을 쓰는 대신 주주들에게 현금을 배당하라고 석유 기업들에 요구하는 쪽으로 움직이고 있다. 따라서 “조만간 공급 부족이 야기될 가능성이 크며 그에 따라 2008년 세계경제를 위기로 몰아넣은 배럴당 147달러보다 훨씬 높은 수준으로 유가가 치솟을 가능성 또한 크다.”

- 제레미 리프킨, <글로벌 그린 뉴딜>, p. 99



Big Oil is the Next Big Tobacco: 시대가 변하고 있다

하루아침에 담배를 끊듯 당장 화석연료 사용을 중지할 수 없는 건 사실입니다. 그렇다 해도 변화는 분명 오고 있는 듯합니다.


“석유 피크 이론”이란 말은 수십 년 전부터 흔히 써 왔습니다. 그 시기에 대해선 언제나 논란이 분분하고 자꾸 변하고 있지만요. 그런데 최근 국제 에너지 기구(IEA)는 화석연료에 대한 수요가 2025년에 최대가 될 것이라고 말했어요. 다만 각국 정부가 2050 온실가스 배출량 넷 제로 목표를 지키려 노력한다는 가정 하에 말이에요. 또 상황상 못 지키겠다고 너도 나도 화석연료를 태워 버리면 피크는 또 뒤로 밀리겠지만요.


폴리티코(Politico) 최근 거대 석유 기업이 담배 산업의 발자취를 따르고 있다고 지적하기도 했어요 [1]. 담배가 건강에 해로운  누구나 알지만, 담배 산업은 한때 거대 자본과 정치적 영향력을 등에 업고 한동안은 누구도 건드리기 어려운 부문이었어요. 하지만 시대가 변하며 사람들의 인식도 변하고, 무엇보다 계속 소송이 걸리며 법원에서 여러  불리한 판결을 받으며 예전과는 전혀 다른 천덕꾸러기 신세가 되어 버렸죠. 물론 여전히 수익을 거둬들이고 있지만 말이에요.

1997년 타임지 표지

석유화학 기업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쉘(Shell) 사가 네덜란드 법원에서 온실가스 감축 명령을 받은 것을 필두로, 지금 이 순간에도 여러 거대 석유 회사들은 세계 각국의 법정에서 기후변화의 책임을 지우는 판결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단기적으로 화석연료의 가격이 오를지언정, 이제 새로운 시대에서 장기적으로 살 길을 모색해야 하는 거죠.



변화하는 세상에서도 취약 계층은 보호받아야

사실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면 다른 것보다도 빈곤층이 문제입니다. 당장 하루 벌어 하루 난방을 하는 저소득층에게 에너지 가격이 오른다는 건 너무 치명적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유럽에서도 현재 정부 차원에서 이런 가정을 대상으로 난방 보조금을 지원하는 국가들이 많습니다.


지난주에도 썼던 것처럼, 기후변화는 기온이 오르는 폐해만으로도 취약 계층에게  가혹합니다. 그런데 에너지 가격이 상승하는 현상을 보니 기후변화에 대처하는 정책으로 인해서도   피해를 보는  같아요. 한국과 달리 미국이나 캐나다에서는 가스 난방 대신 전기를 이용해 냉난방을 하는 히트펌프를 쓰기도 하는데,  경우 화석연료를 직접 사용하지 않지만 수백 만원 이상의  설치비가 듭니다. 저소득층은 어쩔  없이 화석연료에 계속 의존할 수밖에 없는 거죠. 그래서 요즘은 유틸리티사에서도 어려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히트펌프 설치  리베이트를 제공한다든지 에너지 진단을 무료로 해주는  여러 대책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시대는 변하고 있고, 매년 계절이 바뀔 때마다 에너지 가격도 출렁일 겁니다. 하지만 그 때문에 기후변화 대처를 게을리하는 것도, 또 기후변화 대처를 이유로 어려운 사람들이 외면받는 사회가 되어서는 안 될 거란 생각이 듭니다.


[1] https://www.politico.eu/article/big-oil-is-the-next-big-tobacc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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