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on Nov 19. 2021

주기율표 1번이 뭐더라

수소 에너지가 왜 뜨고 있을까? 

예쁜 타자기 +_+ (이미지: Unsplash)

저는 빈티지 타자기가 꽤 근사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지만, 작업을 할 때는 항상 컴퓨터를 사용합니다. 인테리어 소품으로는 몰라도 개인용 컴퓨터의 등장과 함께 여전히 타자기를 고수하는 사람은 거의 없겠지요. 요즘 에너지 분야에서 '수소'가 핫합니다. 빌 게이츠가 저서에서 언급한 것처럼, 사람들이 수소에 주목하는 이유는 수소만 잘 이용하면 우리가 고민하는 수많은 에너지 솔루션들이 다 불필요해지기 때문입니다. 수소는 타자기를 대신할 개인용 컴퓨터와 마찬가지란 거죠. 


그런데 수소랑 에너지랑 무슨 상관일까요? 수소라고 하면 주기율표 1번이란 거밖에 기억이 안 나는데 말이에요. 



수소, 에너지를 저장해주는 에너지 캐리어(energy carrier) 

화학에 젬병이어도 요 공식 하나는 기억납니다. 

수소 + 산소 = 물 + 전기

거꾸로 말하면 물에 전기를 가하면 수소와 산소로 나누어졌었죠. 뿐만 아니라 가스 등 다른 여러 화합물에도 수소는 풍부하게 존재하기 때문에, 여러 방식으로 수소를 분리할 수 있습니다. 수소를 분리해서 뭐하냐고요? 땅 파서 태우면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석탄이나 석유와 달리, 수소는 그 자체로 에너지는 아닙니다. 그렇지만 에너지를 저장해 줄 수 있는 훌륭한 캐리어입니다. 


예를 들어 풍력이나 태양광 같은 경우 잉여 전력의 저장이 가장 큰 이슈인데요, 실제로 ESS (에너지 저장 시스템)이 갖춰져 있지 않으면 재생 에너지 인프라를 아무리 늘려 봤자 100% 청정하게 전력을 생산하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원자력이나 가스, 석탄 등으로 부하를 충족시킬 수밖에 없죠. 하지만 수소 연료 전지(배터리처럼 수소에 에너지를 저장하는 형태)를 활용할 수 있다면 ESS의 만능열쇠가 될 수 있습니다. 햇빛을 주머니에 넣어 가지고 다닐 수는 없지만, 햇빛을 연료로 만들면 그건 가지고 다닐 수 있으니까요. 수소를 몇 년이고 저장해 뒀다가 필요할 때 꺼내서 쓸 수 있으니까요. 게다가 이때 부산물은 물뿐이라서, 청정한 에너지 설루션이 되는 거죠. 


전기만 생성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배출량을 0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개개인의 노력도 중요하지만 철강처럼 거대한 오염 산업에서 배출량을 어떻게 줄일지가 관건인데요, 요즘 '수소환원 제철'이라는 공법도 주목받고 있어요. 지금은 화석 연료를 이용해서 생산하는 공정을 수소로 교체하는 경우 부산물이 이산화탄소가 아닌 수증기로 나오기 때문에, 산업 부문 배출량을 크게 줄일 수 있단 거죠. (Fe2O3 + 3H2 → 2Fe + 3H2O....뭐라는 거야) 


또, 교통 기관에서도 수소 에너지는 희망을 던져 주고 있어요. 국내 자동차 회사들에서도 전기차뿐 아니라 수소차 연구에도 꾸준히 투자하고 있는데요, 특히 기존에 전기차에 쓰이는 배터리 용량으로는 너무 무거워서 답이 안 나오는 화물차나 선박, 비행기 등에서는 수소 연료가 답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수소는 우리 사회 전반에서 유용하게 쓰일 수 있고, 그래서 '수소 경제'로 이행해야 한다는 논의가 나오는 겁니다.  

에어버스사의 수소 비행기 계획 (이미지: Airbus)



수소라고 다 똑같은 게 아니다! 녹색, 회색, 청색 수소 

그런데 수소를 분리해서 이용한다고 해서 무조건 청정한 건 아닙니다. 왜냐하면 수소를 얻으려고 물을 전기 분해할 때 만일 그 전기가 화석 연료로부터 나온다면 그건 깨끗하지 않기 때문이죠. 재생 에너지를 이용해서 전기 분해를 시킨다면 그때에서야 비로소 청정한 수소를 얻을 수 있고, 그건 그린 수소라고 부릅니다. 


이에 반해 천연가스로부터 수소를 분리하는 경우 에너지도 많이 들뿐더러 부산물로 이산화탄소도 생성되기 때문에, 이런 경우는 그레이 수소라고 불러요. 현재 생산되는 수소의 약 96%는 그레이 수소라고 하네요. 수소 1kg를 생성하는 데 이산화탄소를 10kg나 배출한다고 합니다. 


끝으로 블루 수소라는 것도 있는데요, 이는 그레이 수소와 비슷하지만 생성된 이산화탄소를 포집해서 저장하는 경우를 말합니다. 이 경우는 배출량이 많이 감소하긴 하지만 근본적으로 완전히 0으로 만들기는 어렵기 때문에 그레이 수소보다는 낫지만 그린 수소보다는 별로라고 볼 수 있죠. 

그레이, 블루, 그린 수소 (이미지: Longread Hydrogen)

즉, 우리가 수소 경제를 말할 때는 그린 수소 사용을 목표로 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역시, 쉽지 않다

최근 세계 각국에서 영국에 모여 기후변화 대책에 대해 논의한 COP26가 막을 내렸는데요, 항상 그랬지만 뭐 엄청난 성과가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그래, 우리 다 같이 으쌰 으쌰 노력해 보자!"라는 의지만 다졌지, 서로 눈치를 보고 비판하느라 결국 앞으로 어떻게 할 건지는 각국의 향후 행동에 달려 있지요. 어서 수소를 많이 활용할 수 있으면 기후변화 완화 정책에 크게 한 발짝 다가갈 것 같은데요. 


그러나 수소 경제를 이루는 데는 역시나 많은 난관이 있습니다. 우선 맨날 돈, 돈, 돈이 문제인데요. 청정하게 수소를 만들려면 많은 돈이 필요해요. 블룸버그 NEF에 따르면 현재 1kg의 그린 수소를 만드는 데는 $2.5-4.5의 비용이 드는데, 이게 $1 아래로 떨어져야 화석 연료를 사용하는 그레이 수소에 비해 경쟁력이 생긴다고 해요. 


또, 전기분해에는 전해조(electrolyzer)라는 여러 성분이 필요한데, 이게 엄청 비싸거든요. 빌 게이츠의 <기후 재앙을 피하는 법>에 따르면, 연료 전지 자동차를 이용할 수 있는 캘리포니아에서 수소의 비용은 1갤런 휘발유에 5.6달러를 지불하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 (현재는 유가가 갑자기 많이 상승했지만 작년에만 해도 1갤런 휘발유는 2.4달러 정도였으니 두 배가 넘는 비용이죠.)


뿐만 아니라 전기로 수소를 만들었다가, 다시 전기로 변환해야 하기 때문에 효율의 문제도 있습니다. 환전을 자꾸 하면 내 호주머니 속의 돈이 점점 줄어드는 것처럼, 에너지도 변환하면 할수록 점점 적어지니까요. 


또, 주기율표 1번인 수소는 너무나 가볍기 때문에 저장이 어렵습니다. 그래서 보통 가스를 압축해서 저장하곤 하는데요, 압축시키려 압력을 받으면 움직임이 엄청나게 활발해져서 (이것도 화학 시간에 배웠던 거 같아요) 새어 나갈 위험도 있어요. 비싸게 만든 수소인데 유출되어 버리면 아까워서 어쩌나요ㅠㅠ



이러니 저러니 해도, 수소는 산업계에서 끊임없이 연구하고 투자하는 대상입니다. EU, 미국, 중국뿐 아니라 한국도 6개 도시에서 수소 관련 인프라를 구축하는 등 시범 사업을 지속하고 있고, 10-20년 내로 성과를 내기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기존에 배출량이 컸던 석유화학 회사나 항공기 제조사, 자동차 회사들도 마찬가지고요. 


미국 유타주의 경우 솔트레이크시티에서 소금(암염) 동굴에 수소를 대량으로 값싸게 저장할 수 있는 '첨단 청정에너지 저장고' 이니셔티브를 진행 중입니다. 수소를 잔뜩 넣어 놓고 전기가 필요할 때마다 은행처럼 꺼내 쓴다는 아이디어인데요, 지하에 조성되어 있기 때문에 만에 하나 사고가 나도 안전하고, 저장 비용이 굉장히 저렴하다고 합니다. 

수소를 저장할 수 있는 소금 동굴 (이미지: fuelcellworks.com)

한국의 경우 이러한 천연 지형이 아무래도 부족하기 때문에, 수소 이용이 대규모로 가능해진다 해도 그 수소를 어디에 저장할지 또 다른 과업이 남아 있습니다. 참, 산 넘어 산이죠? ㅠㅠ 



*표지 이미지 크레딧: © Alexander Kirch | Dreamstime.com


https://www.bloomberg.com/news/articles/2021-06-19/why-hydrogen-is-the-hottest-thing-in-green-energy-quicktake 

http://www.enetnews.co.kr/news/articleView.html?idxno=4149


매거진의 이전글 해마다 찬바람이 불면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