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on Nov 04. 2021

8년 만에 출산을 했다

진통의 가운데서 에피듀럴을 외치다

출산에 관한 TMI가 난무합니다. 비위가 약하신 분은 읽지 않으셔도 상처 받지 않겠습니다.


토요일 밤 열 시.


나는 홀로 어둑어둑한 6인실 병실 침대 위에 누워 있다. 울며 불며 고통을 호소하던 나의 유일한 병실 동지는 이미 한 시간 전에 분만실로 떠났고, 나는 그녀가 지금쯤 품에 아기를 안았을지 궁금하다. 그러다 파도처럼 밀려오는 거대한 아픔에 모든 생각을 잊고 침대 손잡이를 부여잡는다. 처음 느껴보는 출산의 고통. 흔히 명작을 두고 “산고 끝에 완성한 작품”이라고 하는 게 이유가 있구나. 이게 산고구나. 하고 나는 깨닫는다. 생애 처음으로 느끼는 생짜배기의 아픔이다. 몸이 갈가리 찢기는 낯선 고통과 함께, 아기는 자신의 출생을 예고한다.



39주 5일 차. 둘째라고 빨리 나올 것이라고들 하던 말이 무색하게 둘째는 느긋했다. 마침내 이슬이 비친 건 불과 예정일을 이틀 앞둔 정오였으니 말이다. 나는 점심을 먹는 첫째 아이에게 인사를 하고, 헬퍼에게 잘 부탁한다는 말을 하고, 미리 싸 둔 캐리어를 끌고 집을 나섰다. 지난 3주 동안 내내 내 옆을 지키던 남편은 처음으로 잠시 자리를 비운 터였지만, 곧 병원에서 바로 만날 수 있었다. 익숙한 얼굴을 보니 긴장은 풀렸지만, 언제 찾아올지 모르는 진통이라 두려웠다.


초산이 아닌데도 유달리 무서웠던 이유는 첫째를 워낙 쉽게 낳았기 때문이다. 첫째를 낳은 것은 미국이었다. 이슬이 비쳐서 병원에 가자마자 바로 촉진제를 맞았고, 진통이 시작되자마자 바로 척추에 에피듀럴 주사를 꽂았다(미국 사람들은 아픈 거 싫어함). 주렁주렁 달린 주사 바늘 때문에 정신은 없었지만, 몽롱한 상태로 자궁문이 열릴 때까지 잠을 잘 수 있을 만큼 고통은 미미했다. 다행히 초산 치고 진행이 빨라 말 그대로 고통 없이 아기를 낳았다. 이번에는 둘째니 출산이 조금은 더 빠르고 쉽지 않을까, 하고 나름 기대하기도 했다. 경력자니까.


하지만 여기는 홍콩이다. 게다가 공립 병원이다. 공립 병원은 의료 수준은 높지만 절대로 환자 마음대로 해주지 않는다. 같은 홍콩이라도 사립 병원에서는 산모가 진통이 무섭다는 이유로 제왕 절개도 해 준다던데, 공립은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되도록 자연주의를 고수한다. 에피듀럴을 놔주는 경우도 있지만 복불복이다. 진행이 빠른 경산인 경우, 또는 마취과 의사가 당직이 아닌 경우는 기대하기 어렵다. 그래서 에피듀럴을 맞지 못하는 상황을 머릿속에 여러 번 그리기는 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아플 줄은 몰랐다.


부모님 세대는 다들 무통 주사 없이 낳으셨고, 친구들도 못 맞은 경우가 많던데 그럼 다들 이 미칠 듯한 고통을 견뎠다는 건가? 왜 아무도 이렇게까지 아프다고 얘기해주지 않은 거지? 야속한 마음까지 들었다. (아니다. 다들 얘기는 했다. 내가 제대로 귀 기울이지 못했을 뿐이지) 정오에 이슬이 비친 후 본격적으로 진통이 시작된 건 열 시경. 코로나 정책 때문에 분만실로 갈 때까지는 누구도 병실에 들어올 수 없기 때문에, 몇 시간이나 밖에 앉아서 대기하던 남편은 첫째를 돌보러 저녁때쯤 집으로 돌아갔다. 혼자서 나는 몸을 비틀며 진통을 오롯이 느끼고 있었다. 세상에 나 혼자인 것처럼 외롭고 무서웠다.  



열한 시. 못 견디는 아픔에 간호사를 부르니 핫 팩을 갖다 준다. (…??) 네, 한 번 참아 볼게요. 처음엔 심한 생리통 정도였던 진통은 이제 온몸 구석구석을 시뻘겋게 할퀴며 휩쓸고 지나간다. 기록해둔 진통 간격을 보니 점점 규칙적이고 짧아진다. 젠장, 책에 적힌 말이 틀린 것 하나 없구나.


새벽 두 시. 나는 나도 모르게 울부짖기 시작한다. 간호사가 와서 이제 분만실로 곧 옮겨 준단다. 집에서 대기 중이던 남편에게 전화를 하면서도 몸을 구부려 고통을 참아 본다. 휠체어를 타고 분만실로 가니 휴대폰이며 소지품을 죄다 뺏는다. 저기요, 혹시 남편이 무슨 일이라도 있어 못 오면 난 어쩌죠. 남편이랑 연락해야 하는데… 분명 내 말을 들었건만, 야속한 간호사는 들은 척도 안 하고 빨리 전화기나 달란다. 찜질방처럼 내 소지품을 넣은 라커 키를 손목에 걸어준다. 나는 턱턱 숨이 막혀오는 진통을 느끼며 분만실에 눕혀진다. 조산사와 간호사가 왔다 갔다 하다가, 어느덧 나를 또 혼자 두고 가 버린다. 아픈 게 너무 심해서 배가 온통 뜯어질 것 같은데, 남편은 왜 안 오는 거지. 새벽이라 택시가 안 잡히나? (알고 보니 10분도 안 지난 시점) 규칙적으로 닥쳐오는 쓰나미 같은 아픔에 짐승처럼 울부짖고 있는데, 파랗게 질린 남편이 들어온다.


초산 때는 몽롱하지만 의연하게 아기를 낳던 아내인데, 이번에는 분만실 밖에서부터 내 목소리인 게 확연한 비명소리가 들렸단다. 내 손을 잡고 어쩔 줄 몰라하는 얼굴을 보니, 그래도 혼자인 것보단 나아서 갑자기 울컥 눈물이 났다. 울면서 너무 아프다고, 그만 하고 싶다고 횡설수설하는데 조산사가 어서 숨을 쉬란다. 아기는 다 내려왔으니 힘만 주면 된다고. 자연스럽게 고통에 몸을 맡기라고. (뭔 소리야 그게!!) 나는 에피듀럴과 페인킬러를 외치며 다리를 마구 오므린다. 안다, 오므리면 안 되는 거. 그 정반대를 해야 하는 거. 그냥 다 멈추고 싶어서 그런다. 죽을 것 같아서.


갑자기 엄마 말이 생각난다. “아, 내가 이렇게 죽는구나 싶을 때 나오더라, 아기가.” 나는 지금 죽을 정도인가? 아니면 아직 죽음 문턱까지는 안 갔나? 고민하고 있는데 압도적인 욕구가 느껴진다. 뱃속의 이 생명체를 밀어내라는 자연의 신호가. 갑자기 외양간의 소가 된 느낌이다. 에피듀럴을 안 맞고 맨 정신에 낳으니 이런 세세한 게 다 느껴지는구나. 힘을 주면 더 아플 것 같아서 힘 주기 싫은데 안 준다고 해결되는 건(?) 아니니까 주긴 줘야겠다.


힘을 주니 예상대로 더 아프다. 드라마에서처럼 몇 번 힘주면 뿅 하고 아기가 나오면 얼마나 좋을까. 몇 번 시도하다가 눈물 콧물이 범벅이 되어 애원했다. 뭐든 좋으니 진통제를 달라고. 마지못해 간호사가 갖다 준 건 “해피 가스”다. 어라, 이건 치과에서 어린이들이 충치 치료할 때 쓰는 거 아닌가. 일단 이거라도 들이마셔 보자. 단언컨대 해피 가스의 효과는 알코올보다 못한 듯하다. 소맥 말아 마시고 화장실 문턱에 발을 찧었을 때 상당히 고통이 경감되던데. 이건 대체 뭔가. 나는 화가 나서 마스크를 벗어 버린다.


어찌어찌 마지막으로 젖 먹던 힘을 다해 힘을 주었다. 끝까지.


그때였던 것 같다. 내가 기절한 것이.


잠깐 기억이 안 난다. 어렴풋이 “아, 이제 끝났나 보다. 그런데 왜 아기 울음소리가 안 들리지? 아기가 괜찮은가?”하는 생각이 들었다. 눈을 떠보니 분만실 세팅과 내 자세가 바뀌어 있다. 어느새 의사가 와 있고, 다리가 양 옆으로 올라가 있다.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힘주세요.” 힘은 이미 아까 다 줬는데 싶었지만, 정말 아기가 나오기 직전이란 게 몸으로 느껴진다. 힘껏 밀어낸다. 남편이 옆에서 눈물 섞인 목소리로 말한다. “나온다, 나온다!” 머리가 나왔단다. 한 번 더 힘을 주니 끝이다. 아기가 나오고, 울음소리가 들린다. 간호사가 아기를 바로 수건에 감싸 내 가슴 위에 올려 준다. 피범벅이 된 소중한 생명체는 갑작스러운 탄생이 놀라워서 새된 소리로 울고 있다.



첫째 분만 때는 이 단계까지가 기억의 끝이었다. 그런데 이번엔 아니네? 태반이 나오고, 후처리를 하는 게 고스란히 다 느껴진다. 간호사가 (고맙게도) 남편을 내쫓는다. 잠깐만 나가 있다가 후처리 끝나고 들어오란다. 자궁 경부에 피가 안 멎는다며 의사가 손을 넣어 (…) 몸속을 마구 휘젓는다. 진통만큼 아파서 또 소리소리를 지른다. 나중에 바닥을 슬쩍 보니 정말 가관도 아니다. 내 몸속에는 별별 것이 다 들어 있었구나.


그래도 이제 진짜 다 끝났다. 녹초가 된 나는 죽은 듯이 누워 있지만, 아기만큼은 꼭 껴안고 있다. 이렇게 아프게 낳았는데, 아기가 예쁘기만 한 건 이미 태중에서부터 사랑하며 품어서일까. 신생아가 얼마나 작은지 완전히 잊고 있었는데, 정말 작다. 무력하고, 연약하고, 소중하다. 다시는 겪고 싶지 않은 끔찍한 고통이지만, 이 아기를 만나기 위해서라면 얼마든지 또 겪을 수 있다는 완전히 비논리적인 생각이 든다.


코로나 때문에 입원실에는 남편이 들어올 수 없단다. 이렇게 난 또 혼자 남겨지지만, 이번에는 아기와 함께다. 첫째 때는 막막하기만 했던 신생아 육아인데, 그래도 경력직이라고 둘째는 수유도, 기저귀도, 안아 주는 것도 조금은 수월하다. 막 세상에 나온 이 조그만 아기가 언제까지나 이렇게 작지 않을 것이라는 것도 잘 알기에, 아기를 안고 달래는 시간도 스트레스보다는 힐링이다. 이래서 다들 그렇게 고생하고도 둘을, 셋을 낳는구나. 생명의 탄생이란 이렇게나 아프고, 이만큼이나 경이로운 것이구나.  


그렇게 나는, 또 한 번 엄마가 된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에게 다시 한번 존경을 표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산만함이라는 불행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