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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Jun 29. 2022

홍콩의 국제학교 vs. 한국의 외국인학교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담 

만 8.5세인 큰애는 8년 평생을 외국에서만 살다가 올해 초 귀국을 했다. 


한국에 놀러 온 적은 있어도 제대로 자리를 잡고 살아 보는 건 처음이었다. 집에서는 한국말만 썼기에 국어와 한글에도 어느 정도 익숙했지만, 또래 아이들에 비하면 실력은 터무니없이 부족했다. 특히 어휘나 부사어가 많이 부족해서, 예를 들어 부정적인 감정은 서글프든, 쓸쓸하든, 억울하든, 샘이 나든 간에 '슬프다'로 퉁치곤 했다. 


게다가 홍콩살이 중 중국어는 아이의 언어 체계에 혼란을 가중시켰다. 차라리 영미권 학교나 다른 국가의 국제 학교를 다녔다면 좀 나았을 텐데, 홍콩은 중국령이다 보니 국제 학교들에서 중국어의 비중이 매우 높다. 실제로 현지에서 쓰는 언어는 광둥어인데도 광둥어가 아닌 북경어를 배운다. 아이의 학교는 특히나 영어/중국어 이중언어를 지향하는 학교였기 때문에 매일 한자 숙제를 하는 것이 아이의 일과였다. 


집에서는 한국어, 학교에서는 영어북경어, 거리에 나가면 광둥어, 게다가 헬퍼 아주머니가 한두 마디씩 가르쳐주는 필리핀의 타갈로그어까지. 아이의 언어 노출은 매우 다양하면서도 한 언어가 깊이 정착하기에는 어려웠다. (코로나로 인한 학습 공백도 무시할 수 없었다.) 


이런 상황이다 보니 한국행이 결정되자 큰애의 학교가 가장 마음에 걸렸다. 한국 학교에 가면 초등 3학년일 텐데 한국어로 책을 읽고 수업을 따라갈 수 있을까. 물론 아직 어리니 좀 고생하더라도 적응이야 할 수 있었겠지만, 막 동생도 생긴 터라 많은 변화로 인한 아이의 충격을 최소화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는 판단이 들었다. 우리 부부는 논의 끝에 아이를 외국인학교에 진학시키기로 결정했다. (한국에서 '외국인학교'와 '국제학교'가 다르단 사실도 이때 처음 알게 되었다.) 


다행히 우리가 이사할 지역에 외국인학교가 하나 있었다. 아이는 홍콩을 떠나기 전 줌으로 미리 인터뷰를 보고 합격했고, 이사한 직후 학교를 다니기 시작했다. 이제 한 학기가 지나 방학을 한 지금, 아직도 적응 중이기는 하지만 조심스레 개인적인 경험을 적어두려 한다. 



전반적인 시스템은 유사 

홍콩에서 보내본 두 곳의 국제학교와 한국의 외국인학교를 경험해 보니, 국제학교든 외국인학교든 전반적인 학교 시스템은 비슷한 것 같다. 미국 학교처럼 여름 방학이 두 달이 넘고 겨울 방학은 비교적 짧은 것, 학기 중간에 미드텀 브레이크가 일주일 정도 있는 것 등 학사 일정도 비슷하다. (그리고 학비가 눈물 나게 비싼 것도)


일종의 학부모회인 PTA가 있어 학부모 참여를 독려하는 것과 학기 중에 학부모 상담일은 이틀 정도 등교를 하지 않는 것도 익숙했다. 학교 자체에서 다양성을 존중하고, 특히 저학년은 자유로운 분위기인 것도 비슷하다. 생각해 보면 나는 한국에서 학교를 다녔지만, 그것이 벌써 까마득한 옛날이다 보니 꼭 외국인학교가 아니더라도 한국 학교도 요즘은 많이 달라졌을지도 모르겠다. 



다른 점 1: 공간의 풍요   

물리적으로 가장 눈에 띄는 점은 단연 넓은 학교 캠퍼스다. 이건 물론 학교마다 다를 수밖에 없지만, 어쨌든 홍콩은 아주 극소수의 학교를 빼면 로컬 학교든 국제 학교든 공간이 매우 부족한 편이다. 그나마 넓다는 학교에 보냈는데도 한국에서 외국인학교를 보내 보니 가슴이 뻥 뚫리는 것처럼 시원했다. 이건 그냥 홍콩과 한국의 다른 점이겠지만. 


다른 점 2: 다양성 

질적으로 가장 다른 점은 다양성(diversity)이다. 개인적으로는 가장 아쉬운 점이기도 하다. 홍콩에는 외국인이 많이 살고, 국적 불문하고 드나드는 인구가 워낙 많은 지역이다 보니 학교에서도 다양성이 매우 두드러졌다. (홍콩의 국제학교 이야기, 두 번째) 국적만 다양한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살아온 배경이나 경험 역시 다채로웠다. 


이에 반해 아이의 현재 학교는 대체로 한국 아이들이 많다. 우리의 경우처럼 한국 아이인 경우에는 비슷한 친구들이 많아서 좋기도 하지만, 외국인이라면 다소 소외감을 느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홍콩에서는 학교의 학생 구성뿐 아니라 국제학교 자체가 아주 많고 특성도 다양해서, 좁은 영토임에도 선택지가 많았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어느 학교를 선택해서 보내야 할지 감이 잡히지 않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랄까. 반면 이곳에서는 이 근방에 외국인학교는 여기밖에 없다. 그래서 우리의 경우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 오히려 마음이 편했다. 


다른 점 3: '한국식'의 장점과 단점 

국제학교들은 IB나 AP처럼 표준화된 커리큘럼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다. 그 둘이 다 아닌 곳에 보내 보기도 했지만, 커리큘럼의 세세한 내용은 다르지만 학습의 전반적인 분위기는 비슷한 경우가 많았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자율성을 강조하고, 학부모도 교사의 권한을 존중하며 따라서 다소 소극적이라는 느낌을 받기도 했다. 


반면 우리가 경험 중인 한국의 외국인학교는 한국인 학부모를 많이 고려하여 운영된다는 느낌이 든다. 홍콩도 로컬 학교들은 학부모의 교육열이 굉장할 텐데, 국제학교들은 그 정도는 아니었다. 특히 외국인 사이에서 따로 사교육을 하는 영역은 예체능 이외엔 매우 드물었다. 그러나 한국은 학기 중에도 학원을 여럿 보내는 일이 흔하고, 아이들의 학습 수준에 촉각을 곤두세운다. 그래서인지 학교 측에서도 학습의 '일정한 기준'을 세워 두고 이를 신경 써 준다. 학부모들도 선생님이 숙제를 많이 내주지 않는다거나 아이들의 실력이 향상되지 않는다는 등의 우려를 적극적으로 표출하는 것 같다. 


'한국식'이라 좋은 점 중의 하나는 급식이다. 홍콩에서는 도시락이 기본이라 아침마다 도시락 한 개에 오전/오후 간식 하나씩 싸주곤 했었다. 스쿨버스를 태우느라 안 그래도 일찍 일어나야 하는데, 새벽부터 김밥을 말고 파스타 면을 삶던 것이 일상이었다. 그러나 이곳에서는 매일 급식으로 따끈한 식사가 나오고, 특별한 날에는 간식도 나눠준다. 아이들마다 제각기 알러지가 많아 생일 파티 때조차 같은 음식을 나누어 먹기 조심스러워하던 홍콩 학교의 풍경과는 많이 다른 점이다. 


'한국식'이라고 해야 할지는 잘 모르겠지만, 내가 느끼는 단점 중 하나는 부모 중 엄마의 참여만을 전제한다는 점이다. 홍콩에서는 반마다 왓츠앱 단체 톡방이 있었는데, 너무도 당연히 부모 둘 다 초대되었었다. 주로 엄마가 아이를 케어하고 학교 행사에 참여하는 경우가 과반수긴 했지만, 아빠들도 참여를 많이 했다. 학부모 면담 때 남편이 바빠 내가 혼자 가려고 하니, 선생님께서 스케줄을 변경해서라도 아빠와 꼭 함께 오라고 하실 정도였다. 또 'Daddy cooking class'를 한 학기마다 여는 반도 있었다. 그런데 한국에 오니 카톡방에 들어가게 되었는데, 당연히 엄마만 들어가는 것을 보고 내심 놀랐다. 물론 아빠가 주로 아이를 보살피는 가족도 있지만, 너무 당연히 엄마가 아이를 보는 것을 전제하는 느낌이 들었다. 


(학교의 차이는 아니지만) 덧붙이는 차이점 4: 사교육 

홍콩에서는 사교육이 무척 비쌌지만 영어로 사교육을 받기는 쉬웠다. 동네 피아노 학원이며 태권도, 방문 미술 선생님 등은 홍콩인이어도 모두 영어를 할 줄 알기 때문에, 국제학교에 다니는 아이들도 쉽게 학원을 다닐 수 있었다. (물론 동네마다 다르지만, 외국인이 많이 사는 홍콩 섬은 대개 분위기가 그렇다.) 


반면 한국은 학원은 넘치고 홍콩에 비하면 가격도 저렴하지만, 한국어가 서툴면 학원에 보내기 쉽지 않다. 숫자가 위주인 수학 학원도 기본적인 독해가 되어야 문제를 풀 수 있다. (예전에 외국에서 자란 아이에게 한국어로 수학 문제를 풀게 하니 "합과 차를 각각 구하시오"가 무슨 말인지 몰라 쉬운 문제도 죄다 틀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었는데, 남의 얘기가 아니다..) 그렇다고 영어 학원이라고 나은 건 아니다. 어휘를 외울 때 한국어와 1:1로 매칭 시켜 외우는 경우가 많아서 아이에게는 두 배로 어렵게 느껴질 수가 있기 때문이다. 책을 읽어줄 때마다 어휘의 부족 때문에 진도가 안 나가는 경우가 많은데, 예를 들어 이런 경우다. 


(영어로 "revolution"이 나옴)

나: 이건 '혁명'이라는 뜻이야 

아이: 혁명이 뭔데?

나: 그러니까 시민들이.. 정부가.. 

아이: 시민? 정부? 

나: 그러니까.. 혁명은 revolution이야. 

아이: ...(공허한 눈) 


한국어로 교육받고 한국어로 사고하는 습관이 배어 있는 나로서는 외국인학교에 다니는 아이를 키우는 게 쉽지 않다는 게 이럴 때 뼈저리게 느껴진다.  



지극히 개인적인 경험일 뿐

내가 느끼는 소소한 차이점을 홍콩의 국제학교 vs. 한국의 외국인학교라고 단정 지어 제목을 붙인 것부터가 잘못되었는지도 모른다. 홍콩 내에서도, 한국 내에서도 학교마다 차이가 클 테니 말이다. 게다가 나의 아이는 아직 초등생이라, 중고등학교로 올라가면 지금은 생각지도 못한 또 다른 장단점과 고민거리들이 나타날 것이다. 나의 짧은 경험에서 나오는 제한된 의견일 뿐이라는 점을 다시 한번 밝혀 둔다. 


*표지 이미지: unsplash.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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