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는 뭘 하고 있어?

by Hoon

저는 절반 정도 워킹맘입니다.


하루에 4시간, 집에서 일을 하는데요. 무슨 일을 하느냐 하면 참으로 지지부진 지루한 일을 합니다. 우리 회사에서 판매하는 데이터베이스에 들어가는 데이터를 확인하고 관리하는 일인데... 커피가 없이는 하기 어려울 만큼 가끔은 재미가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저는 별 것 아닌 이런 일을 꽤나 중요하게 여기며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기후변화 위기 해결이라는 바다에 제가 아주 작은 조약돌 하나를 매일 던져 넣고 있다고 생각해요.


왜일까요?



시스템이 바뀌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지난 글에서 아이에게 "기후변화를 막기 위해 네가 해줄 수 있는 일이 이렇게나 많단다"라고 얘기해주긴 했지만, 사실 개인의 노력은 한계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리 친환경적인 삶을 살고 싶어도, 혼자 외딴섬에서 낚싯대로 물고기 잡아먹으며 사는 게 아닌 이상 우리 삶의 일거수일투족에는 탄소 발자국이 따라올 수밖에 없으니까요. 결국은 시스템이 바뀌어야 한다는 소립니다.


이렇게 살 것이 아니라면.. (이미지: 영화 <캐스트 어웨이> 중)


시스템이 바뀌려면 뭐가 필요할까요? 온실 가스 배출량을 줄이는 한편, 더워지는 지구에서도 잘 살 수 있도록 돕는 '정책'이 있어야 합니다. 정책이 견인하고, 시장이 따라와야 하죠. 달성해야 할 목표는 무척 많습니다. 에너지를 좀 더 효율적으로 사용하고, 재생 에너지를 장려하고, 건강한 숲을 조성하고, 이산화탄소 흡수 등 첨단 기술에 투자하는 등 다각적으로 진행되어야 하거든요. 이런 건 개인이 집에서 할 수 있는 일은 아니지요.


그래서 전문가들이 매번 탄소세를 도입하자, 재생에너지 산업에 보조금을 지급해라, 등 정책 입안을 부르짖는 겁니다. 정책이 생겨야 그에 발맞춰 산업과 소비자의 행동이 변화하니까요.



기후변화라는 '위기'에도 '기회'는 따라온다

제가 일하는 회사는 아주 작은 스타트업인데요, 나름대로 기후변화 시대에 잘 맞는 시장을 개척했습니다. 한국에도 유사하게 "고효율기기 리베이트 제도"라는 것이 있는데, 미국과 캐나다에는 에너지 효율적인 제품을 구매하는 소비자들에게 제품 가격의 일부를 돌려주는 리베이트 제도가 아주 활성화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세탁기나 에어컨, 냉장고를 살 때 좀 더 비싸더라도 에너지 효율 등급이 높은 제품을 구매하면, $20-$50 정도를 전력 회사에 청구해서 돌려받을 수 있는 제도지요.


리베이트 제도는 예전부터 있었지만, 요즘 기후변화가 심각하다 보니 리베이트 제도의 예산도 늘고 규제가 강화되며 더욱 활성화되는 추세입니다. 다만 미국은 전력 시장이 민영화되어 있다 보니 같은 지역이라도 전력 회사가 여럿이고, 각기 다른 리베이트 제도를 운영합니다. 미국 전역에 수천 개의 전력 회사가 수만 개의 리베이트 제도를 운영 중인데, 그러다 보니 소비자 입장에서는 정보를 알기가 쉽지 않죠. 그래서 제가 일하는 회사는 우편번호를 입력하면 그 동네에서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인센티브 제도를 쭉 보여주는 데이터베이스를 만들었습니다.


제가 데이터베이스를 관리한다는 게 바로 요거인데요, 거미줄처럼 얽힌 전력 회사의 서비스 영역을 체크하고, 리베이트 제도가 업데이트되면 시스템에 올리고, 오류가 나면 개선하고.. 이런 여러 가지 일을 합니다.


거창하지는 않은 일이지만 소비자가 고효율기기를 구매하는 데 기여할 수 있기 때문에, 저는 제가 하는 일이 의미 있다고 생각해요. 그리고 시스템의 변화라는 것도 하루아침에 되는 것이 아니라, 이렇게 작고 작은 노력이 쌓여서 이루어지는 게 아닐까 싶어요.


제가 일하는 것은 극히 한 단면일 뿐이고, 기후변화라는 위기 속에서 성장하고 있는 사업 영역은 많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태양 에너지나 풍력 발전은 항상 일정하게 전력을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에너지저장장치(ESS)가 필수적인데요, 이름도 생소한 이 시장은 지난 5년간 거의 두 배로 성장했습니다. 아직 화석 연료에 절대적으로 의존하고 있기는 하지만, 재생 에너지 발전도 많이 성장했기 때문이죠. 덕분에 재생 에너지의 균등화 발전비용(LCOE, 생애 주기 측면에서 본 전력 생산 비용)도 극적으로 낮아졌습니다. 정책이 견인한 덕에, 시장이 따라오고 있으니까요.


직업의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환경 컨설턴트나 스마트 그리드 관리자, ESG 투자 책임자 등 예전 같으면 생소한 직업군이나 자격증이 새로이 떠오르고 있으니까요. 예전 같으면 ‘유튜버’도 직업으로 치지 않았는데 지금은 인기 희망 직업 1위인 것을 보면, 새로운 세상에서는 새로운 기회도 많아진다고 볼 수 있겠죠.


그토록 거대한 피라미드도 가까이서 보면 무수히 모아놓은 돌무더기이듯, 결국은 시스템의 변화도 정책과 시장 구석구석의 조그만 변화에서 시작될 겁니다. '지구'를 위해서가 아니라 '사익'을 위해 일하다 보니 시스템도 차츰 변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고기를 안 먹고 소비를 줄인다고 해결될 위기는 아니야

최근에 빌 게이츠는 이런 얘기를 했습니다. "사람들에게 고기를 그만 먹고 좋은 집에 살고 싶어 하는 마음을 없애라고 하는 건 너무 어려운 얘깁니다." 더 좋은 것을 먹고 더 안락하게 살고자 하는 인간 본성이 있는데, 모든 사람들에게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라고 하는 건 현실적이지 않단 얘기죠.


개인의 노력만으로는 기후 위기를 해결할 수 없다는 빌 게이츠 (기사: fortune.com)


그는 기술의 진보와 혁신에 더 기대를 겁니다. 청정에너지가 더 싸지면 변화는 알아서 일어나리란 거죠. 물론 그게 말처럼 쉬운 건 아니지만 말이에요.


그러니 우울한 마음은 이제 그만. 노력하지 못했다는 죄책감도 이제 그만! 다만 현재의 위기가 얼마나 심각하면 어떤 방향으로 사회와 경제가 바뀌어야 하는지, 그것만큼은 늘 마음에 새겨 넣어야겠지요.


표지 이미지 출처: dribble.com

[1] https://fortune.com/2022/09/30/bill-gates-telling-people-stop-eating-meat-buying-houses-not-solve-climate-chang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