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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Mar 24. 2023

좀 더 건강한 정크푸드?  

원전, 그리고 소형 모듈러 원전(SMR)

초딩 큰 아이는 요즘 부쩍 정크푸드를 즐겨 먹습니다. 엊그제만 해도 밥을 후딱 먹고는 아이스크림을 입에 문 아이를 보니 문득 걱정이 되어, "오늘은 정크푸드 그만 먹자~"라고 말했지요. 아이는 고개를 끄덕였지만, 한창 자라는 소년이다 보니 자꾸만 입이 심심한가 봅니다. "엄마, 곶감은 과일 말린 거니까 정크푸드 아니지?" "엄마, 캬라멜 비타민은 먹어도 되지?"


하나둘씩 양보하다 보니, 정크푸드의 정의가 점점 모호해졌어요. 엄밀히 말해 '불량' 식품까지는 아니지만 설탕이 많이 들어 있는 야쿠르트나, 야쿠르트를 얼린 아이스크림은 아주 건강한 느낌은 아니잖아요. 색소와 당분이 많이 들어 있는 초코우유, 딸기우유도 마찬가지고요.



이처럼 완전히 불량한 건 아니라서 정크푸드 취급을 받는 건 아니지만, 그렇다고 맘껏 먹도록 허락해 주기도 모호한 군것질거리들이 있지요. 이와 비슷하게, 태양광이나 풍력 에너지처럼 완전히 친환경적인 에너지원은 아니지만 그렇다고 석탄처럼 더러운(?) 에너지원도 아닌 모호한 에너지원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원자력이에요.


석탄이나 가스를 태워 전기를 만드는 화력 발전소와는 달리, 원자력 발전소에서는 에너지를 만들 때 온실가스가 배출되지 않습니다. 그것만 보면 참으로 친환경적인 에너지원 같지요. 그러나 원자력 발전이라는 말에 항상 따라오는 논란거리들, 즉 안전성 문제라든지 폐기물 문제는 원자력 발전을 선뜻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분류하기 어렵게 만듭니다.  


최근 영국 정부는 원자력 에너지를 '친환경 에너지원'으로 재분류하려는 논의를 진행 중입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이제까지는 원자력 에너지 프로젝트에 투자하는 것이 친환경 또는 지속가능 투자로 분류되지 않았는데, 만일 친환경 투자로 분류가 된다면 앞으로의 판도가 상당히 달라질 겁니다. 정크푸드의 정의도 그렇잖아요. 만일 초코우유를 건강식으로 분류한다면 아이들은 누구나 흰 우유 대신 당연히 초코우유를 선택할 겁니다. 더 맛있고 쉬운 선택이니까요. 원래 영국 정부는 원자력 에너지를 친환경 에너지에서 2021년 제외했지만, EU는 이미 원자력과 천연가스 일부를 재생 에너지에 껴 주었습니다. 원자력이라는 모호한 사안에 '친환경'이라는 초록 도장을 딱 찍어 준다면, 투자를 유치하고 원자력 발전 비중을 늘리는 게 훨씬 용이해지겠지요. 그러니 같은 것이라도 어떻게 분류하는지 사람들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지켜보는 겁니다.


안 그래도 저도 전에 원자력 발전의 기본적인 찬반 논쟁에 대해서는 글을 쓴 적이 있지요​. 그만큼 원전 문제는 늘 논란거리가 따라오는 사안입니다.



그런 와중에 원전 분야 최근의 트렌드는 단연 '소형 모듈러 원전(Small Modular Reactor, SMR)'입니다. 기존의 원자력 발전기는 1 기가와트까지도 전력을 생산하는 데 반해, 300 메가와트 이하의 출력을 가진 비교적 조그만 아이들을 말합니다. 미국에서 핵잠수함이나 항공모함에 쓰려고 개발한 것이 시초라고 하니, 규모가 '미니미'인 셈이죠.  

기존의 원자력 발전소와 SMR (이미지: Idaho National Laboratory)


SMR도 발전 원리 자체는 비슷합니다. (사실 모든 발전의 원리가 유사한데요, 열을 발생시켜 터빈을 돌려서 전기를 생산합니다.) 원자력 발전의 경우 핵의 원자가 분열되며 열이 방출되고, 그 열로 물을 끓인 다음에 증기로 터빈을 돌려서 전력을 생산하는 거예요. 이렇게 말하면 상당히 아날로그적으로 들리지만(ㅎㅎ) 실제로 전기는 이렇게 생산된답니다.

 

아무튼 SMR의 장점은 단연 '안전성'입니다. 기존의 대형 원자로의 경우 배관에서 방사능이 유출될 가능성이 있는데, SMR은 배관 자체가 없거든요. SMR은 배관 없이 주요 기기를 하나의 커다란 용기 안에 넣어서 사용하기 때문에 배관 파손으로 인한 방사능 유출 가능성이 없단 얘기죠. (사고 가능성이 기존 방식에 비해 100만 분의 1이라는 얘기도 있습니다.)


또한 작다 보니 발전 용수도 그렇게 많이 필요하지 않아 해안가가 아닌 내륙에도 건설이 가능하며, 비용도 적고 건설 기간도 짧은 편이라고 합니다. 예전에도 썼듯, 원자력 발전은 많은 장점에도 불구하고 많은 국가들이 채택하지 못하는 가장 현실적인 이유가 비용이거든요. $$ 너무나 큰 비용이 발생할뿐더러 이를 회수할 수 있는 기간도 길어서, 웬만한 국가에게는 부담이 되는 실정이지요. 건설하기로 해놓고 공사 기간과 예산이 한도 끝도 없이 늘어나서 흐지부지되는 경우도 있으니까요. 한국도 원전 강국으로 알려져 있는데, 보통 60년 정도를 앞서 보고 프로젝트를 진행한다니 얼마나 장기간의 작업인지 짐작이 갑니다.


다만! 원래의 원전이 대형화되며 경제성도 좋아진 것에 반해, SMR은 건설 단가나 운영 비용이 기존 원전에 비해서는 떨어집니다. 즉, 워낙 쪼그마니까 짓는 데 돈은 상대적으로 적게 들지만, 생산하는 전력의 양을 생각해 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는 거죠. 기존 원전만큼 생산하려면 어차피 SMR을 수십 개, 수백 개 건설해야 한다는 건데, 그러면 도저히 경제성이 답이 안 나옵니다. 그래서 선진국들도 SMR 상용화를 위해 열심히 노력해 왔지만, 생각보다는 성과가 나오지 않고 있습니다.



최근 기후변화가 나날이 심각해지고 있다 보니, 원자력 발전을 버려선 안된다고 하는 전문가들이 많습니다. 원자력이야말로 온실가스가 배출되지 않으면서도, 24시간 안정적으로 대규모 전력을 생산할 수 있는 매력적인 에너지원이니까요. 원자력 발전의 문제가 안전성이라면, SMR이 하나의 대안이 될 수 있다는 주장도 하고요. 빌 게이츠도 “테라 파워”를 설립하여 SMR 프로젝트를 진행 중에 있는데, 한국에서도 다양한 기업들이 여기에 투자하고 있지요.


반면 그린피스 등 많은 친환경 단체들은 SMR도 원전일 뿐, 경제성이나 안전성 측면에서 결코 대안이 될 수 없다며 원자력 자체를 반대합니다. SMR은 방사성 폐기물을 기존 원전에 비해 더 생산한다는 연구 결과도 있거든요.


장단점, 찬반양론을 곰곰이 따져 보아도 참 기후변화 대처는 쉬운 답이 없다 싶습니다. 조금이라도 더 건강한 정크푸드를 찾는 것만큼이나, 과연 의미가 있는 것인지, 이게 맞는 길인지도 모호하기만 합니다.


*표지 이미지: MIT Technology 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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