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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May 16. 2023

적극적이면 탈락입니다

수줍고 소극적인 당신은 합격

면접관: 본인 소개를 한 번 해 보시죠. 성격이 어떤 편인가요?
지원자: (우물쭈물) 좀... 소극적이고... 수동적인 편인데...요.
면접관: 합격!
지원자: ??


우리는 주로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아야 한다는 말을 듣고 살곤 합니다. 그런데 수동적인 게 좋을 때도 있습니다. 그게 뭘까요? 바로 '집'입니다. 요즘 기후변화와 에너지, 환경 문제가 심각해지며 패시브 하우스제로 에너지 하우스에 대한 논의가 종종 보이는데요, 아주 단순하게 말하자면 친환경적인(& 비싼) 집을 떠올리면 좋은 출발점이 될 거예요.


이런 집 말이죠.. (이미지: Arch Daily)

 


우리 집도 쿵쿵쿵, 너네 집도 쿵쿵쿵

친환경적인 주택이 뜨는 건 사실 어제오늘의 얘기가 아닙니다. 인류는 매일 에너지를 쓰고 있는데, 화석 연료를 쓰며 탄소 배출량이 발생하면 탄소 발자국이 남습니다. 우리가 많은 시간 놀고 쉬는 곳이 집이다 보니, 집에서도 쿵쿵, 탄소 발자국이 남을 수밖에 없지요. (특히 저처럼 집에서 일하고, 집에서 먹고, 집에서 애 보는 사람은 탄소 발자국이 엄청날 겁니다.)


우리는 매일 컴퓨터와 스마트폰, 태블릿, 전기 인덕션, 조명, 밥솥, 에어프라이어, 냉장고 등 전기를 사용하고, 가스레인지나 난방에는 가스를 씁니다. 여기서 탄소 발자국이 마구 찍히고요. 을 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물에서 물을 길어다 쓰는 것도 아니고, 수돗물을 생산하고 하수를 처리하는 데 모두 에너지가 들기 때문이에요. 또, 자동차를 타고 다니는 것뿐 아니라 편하게 집에 앉아 로켓 배송이나 배달의 민족을 이용하는 것도 모두 탄소 발자국이 발생하죠.


아무튼 그래서 주거 공간도 친환경적으로 꾸미는 것이 중요한데.. 패시브 하우스는 사실 단순히 친환경적인 것과는 약간 다른 얘깁니다. 에너지의 사용을 최소화하는 것, 특히 냉난방을 거의 하지 않고도 집안을 쾌적하게 유지하는 것에 방점을 두고 있는 개념이거든요.

아니, 냉난방을 안 하면 집안이 냉골 or 찜통 아닌가요?



패시브? 액티브?

잠깐! 여기서 말하는 ‘패시브’니 ‘액티브’니 하는 것은 물론 사람의 성격에 관한 게 아닙니다. 모두 집의 에너지 사용과 관련된 말입니다. 우리도 배가 고프면 입에 초코바를 쑤셔 넣고 졸리면 카페인을 들이붓듯, 집도 에너지가 필요합니다. 어두울 때 조명도 밝히고, 더우면 히터를, 추우면 에어컨을 켜야죠. 지금 우리가 사는 아파트는 대부분 “외부에서” 이런 에너지를 조달합니다. 더울 때 에어컨을 켜면 콘센트를 통해 전기가 흘러 구동되고, 반대로 추울 때 난방을 켜면 가스보일러가 작동하니까요.


그런데 집이 춥고 더울 때 가만히 있으면 어떻게 될까요?

냉난방 없이 지낸다고..? (이미지: Off Grid Hideaways)

그야, 밖이 추울 땐 엄청 춥고 밖이 더우면 엄청 더워지겠죠. 그게 다 열이 집 안팎을 드나들기 때문인데요, 밖이 추우면 실내의 따스한 기운을 뺏기고, 밖이 더우면 실외의 열기가 집 안으로 스며들기 때문이에요. 그래서 냉난방에 외부의 에너지를 사용하지 않는 패시브 하우스의 특징은 뭐다?! 첫 번째도 두 번째도 단열!! 바로 열 이동을 차단하는 겁니다.


실제로 패시브하우스는 잘만 지으면 80-95퍼센트(!)까지도 에너지를 절약할 수 있다고 합니다. 전기 검침원이 일을 하다 패시브하우스의 계량기를 보고 고장 난 줄 알았다고 생각했단 유명한 일화도 있지요. 패시브하우스는 마치 '보온병'과 같아서, 한 번 담은 열기를 오래오래 간직할 수 있는 첨단 기술을 십분 활용합니다.


특히 겨울철 난방이 없이 견디려면 무조건 태양의 힘을 이용해야 하는데요, 남향으로 집을 지어 햇빛을 최대한 받고 밀봉이 잘 되는(?) 자재와 창호로 집을 짓습니다. 저는 홍콩에 살 때 정북향(!) 집에 살아 보았는데요, 24시간 중 눈부신 햇빛이 드는 시간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나마 안방에 한 뼘 정도 동쪽으로 약간 면한 창문이 있어, 오전 한두 시간만 햇빛이 약간 비추었는데요. 이런 집에 살아보니 태양빛이 얼마나 강력하고 따스한지 실감 나더군요. 하루종일 오들오들 떨던 습한 겨울날, 오전 잠시만큼은 그 창가에 앉아 햇볕을 담뿍 쬐곤 했습니다.


또, 내부 발열원도 적극 활용합니다. 하루종일 컴퓨터로 노닥거리고 일을 하다 보면 뜨끈뜨끈, 컴퓨터가 열이 나곤 하는데요, 이렇듯 기계의 발열이나 인체열도 허투루 날려 보내지 않고 그대로 간직합니다. 그렇다고 실내 공기가 답답해지면 안 되니, 열교환 환기 시스템을 이용하여 창을 열지 않고도 쾌적한 실내를 유지할 수 있고요. 패시브하우스에 필수는 아니지만 여기다 태양열이나 지열 같은 외부 열원이 보조적으로 기능한다면 더더욱 안심이겠죠. (이런 식이면 액티브하우스가 됩니다ㅎㅎ)



완벽한 건 없어 ㅠㅠ

패시브하우스 자료를 찾다 보면 난방 얘기가 더 많습니다. 그건 왜냐하면 냉방 없이 실내 온도를 유지하기란 그만큼 어렵기 때문이에요. 특히 한국처럼 여름이 고온다습한 지역은 더 그렇죠. 열기는 햇빛을 차단하면 어느 정도 해결되지만 습기는 다스리기 더 어려우니까요. 패시브하우스가 출발한 것 자체가 독일인데, 알다시피 한국과는 기후가 많이 다르죠. 난방이 더 중요한 곳이니까요.


그래서 한국에서 패시브하우스에 사는 분들은 아무리 외부와 기밀하게 차단을 한다 해도 아주 냉방 장치 없이 살기는 어렵다고 합니다. 에어컨을 약간 가동한다든지, 천장에 다는 실링 팬을 이용한다든지 하는 것처럼 말이에요. 실제로 에너지 절약은 난방이 90%, 냉방이 60% 정도로 아무래도 냉방 부문이 더 떨어집니다.


패시브하우스는 참 멋지고 좋은 아이디어 같지만, 누구나 다 패시브하우스에 살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세상 많은 문제들이 그러하듯, 역시 문제는 돈이죠.



특히 기존 저택의 단열을 일부 강화하는 건 가능하지만, 아예 패시브하우스를 노린다면 처음부터 새로 지어야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자재 자체가 다르고 창호나 환기 시스템 등을 모두 바꿔야 하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패시브하우스는 땅을 사서 새로 집을 지으려는 사람들에게 많이 추천됩니다.


또한, 방마다 용도가 다를 수 있는데도 방마다 따로 온도 설정을 할 수가 없고, 습도 조절도 자로 잰 듯하기는 어려운 점이 있어 단점으로 꼽힌다고 합니다.


아파트에 사는 저는 패시브하우스가 약간 동떨어진 이야기 같아 보이기는 합니다. 그러나 최근 패시브하우스로 이루어진 공동체들이 자치단체의 계획 하에 한국에도 속속 나타나고 있는 듯합니다. 나중에 여행을 다닐 때 특별해 보이는 건물을 보면 한 번 눈여겨보면 어떨까요?



<에너지와 기후변화 매거진>은 헤드라잇에도 연재됩니다.

헤드라잇 글 링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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