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은 항상 온도가 일정하니까, 지열 발전
대체 왜 그런지 잘 모르겠는데(?), 저는 감정 기복이 좀 심합니다.
물론 장점도 있겠지만, 아이를 키울 때 엄마의 큰 감정기복은 단점이 더 많은 것 같아요. 어느 날은 엄마가 구름 위를 걷고, 다른 날은 엄마 얼굴에 먹구름이 드리워져 있으니 아이도 혼란스럽지 않을까 싶어 미안한 마음이 가끔 듭니다. (그러나 그다지 바뀌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저는 기복이 없이 안정적인 정서를 지닌 사람이 참 부러워요. 당황스러운 일이 있어도 침착하고, 화가 나는 일이 있어도 언성을 높이지 않는 사람. 기분이 좋아도 아이처럼 팔짝팔짝 뛰지 않는 사람.
그런데 말이죠, 우리가 사는 지구도 지표면은 딱 저 같습니다. 태양빛에 달궈지면 저녁이 되어도 도무지 시원해질 줄을 모르는 여름의 열기도, 해가 구름 뒤에 숨어버리면 대낮에도 차디찬 냉기도 모두 지표면에서 일어나는 일이니까요. 그렇지만 두더지처럼 땅을 파고 들어가다 보면, 태양의 여부와 관계없이 늘 일정한 곳이 나옵니다. 기복 없이 늘 비슷하지요.
늘 일정한 땅 속의 온도, 지열 에너지
인류는 이렇게 늘 비슷한 온도로 유지되는 지중의 열을 이용하고 있는데요, 이걸 "지열 에너지"라고 부릅니다. 가장 쉽게 생각할 수 있는 지열의 사례는 바로 온천인데요, 지하 깊숙한 곳에 있는 열이 화산 지대에서는 지표면으로 솟아오르게 되어 물을 따끈하게 데워주기 때문입니다.
온천뿐 아니라 지글지글 지열의 힘을 여러 가지로 이용하는 국가의 대표주자는 아이슬란드입니다. 아이슬란드는 비교적 젊은(?) 땅으로, 아직도 새로운 섬이 눈앞에서 생기기도 하는 곳입니다. 지질 활동이 활발하기 때문에 아이슬란드 사람들은 지열을 이용해서 냉난방을 하기도 하고, 물을 데우기도 하며, 전기를 생성하기도 합니다. 리베카 솔닛이 아이슬란드에 가서 쓴 에세이를 읽어보면, 아이슬란드가 마치 살아 숨 쉬는 생명체처럼 느껴집니다. 지열은 그 생명체가 내뱉는 숨과도 같달까요.
화산은 지금도 아이슬란드를 만드는 중이고 또한 부숴 가는 중이다.
- 리베카 솔닛, <멀고도 가까운> 중
이 중 '지열 발전'은 말 그대로 땅을 파서 그 열기를 이용해 터빈을 돌림으로써 전기를 생성하는 것입니다. 온천처럼 뜨거운 물이나 수증기가 분출되며 증기가 생성되면 그 힘으로 터빈이 돌아가게 되거든요. (지하수가 없는 경우 인위적으로 물을 넣은 다음에 데워서 이용하기도 합니다.) 석탄 화력발전소는 석탄을 태워서 그 연기로 터빈을 돌려 전기를 만드는데요, 석탄을 태우면 탄소와 산소가 만나 이산화탄소가 생성되고, 이것이 바로 기후변화의 주범이 됩니다. 그러나 지열 발전은 이미 뜨거운 땅의 열기를 이용하기 때문에 재생 에너지에 속합니다. 온실가스가 배출되지 않는단 거죠.
요즘은 기술이 좋아져서 꼭 화산 지대에만 지열 발전을 할 수 있는 건 아닙니다. 충분히 깊이 땅을 파고 들어가면 발전에 충분한 열이 어디든 존재하거든요. (깊이깊이 땅을 파서 관을 꽂아서 지중의 열을 이용하는 방식을 '심부지열발전'이라고 부릅니다.) 그렇지만 아무래도 지열의 포텐셜이 눈에 보기에도 큰 지역이 현재로서는 지열 발전의 선두주자입니다. 앞서 말한 아이슬란드는 지열 발전에 힘입어 에너지 자립을 달성하였고, 북부 캘리포니아 일부 지역도 절반이 넘는 전력 수요를 지열로 충당하고 있습니다.
지열 발전의 장단점
지구의 자원인 화석 연료를 캐서 사용하는 것과 달리, 지열은 재생 에너지원이기 때문에 고갈된 염려도, 환경에 악영향도 없다는 것이 최고의 장점입니다. 원래 뜨거운 태양을 이용하는 태양광, 태양열 에너지 이용과 마찬가지로, 원래 뜨거운 지구의 열을 이용하는 것이니까요. 간혹 미네랄 등의 부산물이 생기기도 한다는데, 이는 땅으로 다시 주입할 수도 있고 유용한 자원을 추출할 수도 있어 환경에 악영향은 미미합니다. 실제로 최근 한국의 한 회사는 미국의 지열발전소를 이용하여 지열수로부터 리튬 추출을 할 계획이라고 하니 그야말로 일석이조죠.
원자력 발전처럼 연료가 따로 필요한 것이 아니기에 운영비가 적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또한, 햇빛이 비치고 바람이 불 때만 발전 가능한 태양광, 풍력 발전과 달리 날씨의 영향을 받지 않아 언제나 안정적인 발전이 가능합니다. 폐수를 재활용하는 데 지열 발전이 쓰일 수도 있는데, 캘리포니아 산타 로사에서는 폐수를 지하로 주입하여 지열 에너지로 다시 활용한다고 합니다. 여러모로 장점이 많다고 볼 수 있죠.
그러나 모든 동전에는 뒷면이 있는 법. 단점도 있죠. 이 매거진에 나오는 모든 청정에너지 관련 기술의 문제인데요, 비용입니다. (껄껄 또 돈타령) 현재 태양광이나 풍력은 발전 단가가 예전에 비해 많이 낮아진 것에 비해, 지열은 아직도 단가가 이들 에너지원의 최대 3배라서 확대가 빠르지 않은 추세입니다. 초기 자본이 많이 든다고 해요.
게다가 아무 데서나 지열 발전이 가능한 게 아닙니다. 아주 깊숙이 관을 꼽는(?) 심부지열발전의 경우 시추 깊이가 3km 이상인데, 이런 구조물이 가능한 부지를 선정하는 것이 어렵죠. 또한 지진과의 관련성 역시 무시할 수 없는데요, 지열 발전 포텐셜이 높은 곳이 지진의 확률도 높은 곳인 경우가 많다 보니 발전 시설이 지진으로 인해 파괴될 가능성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반대로, 지열 발전소를 지음으로써 지진을 유발한다는 주장도 있는데, 대표적으로 2017년 포항 지진이 있습니다. 논란의 여지가 많기는 했지만, 전문가들은 포항 지열 발전소가 포항 지진의 원인을 제공했다고 잠정 결론을 내린 바 있죠.
이런저런 이유로, 여러 장점에도 불구하고 한국에서는 아직 지열 발전이 갈 길이 멉니다. (한국만 그런 건 아니고요, 옆 나라 일본도 지열 에너지 포텐셜이 매우 큰데도 (뜨끈하게 온천에서 몸을 지지는 원숭이 사진만 봐도 알 수 있죠) 사회적으로 지열 발전에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다고 합니다. 최근 들어서야 좀 확대 논의를 하는 듯해요.)
지열발전과는 다름! 지중열원 히트펌프
인천공항 제2터미널이나 롯데월드타워는 지열 에너지를 활용하는 것으로 유명합니다. 이런 말을 하면 많은 사람들이 "엥? 공항이랑 잠실에 지열 발전소가 있다고?"라며 오해를 하는데요, 사실 그게 그거가 아닙니다. (뭐라는 거야)
"지열 발전소"라고 하면 수 킬로미터 땅을 파서, 그 뜨거운 열기로 전기를 생산하는 걸 말하는 것이고,
"지열 냉난방"이라고 하면 수십 미터 정도만 땅을 파서 열교환을 하는 냉난방 방식을 말하는 겁니다.
깊이가 완전 다르죠? 땅으로 아주 깊숙이 들어가면 지글지글 뜨거운 열이 있어 증기로 발전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만큼 깊이 파지 않더라도 땅 속은 지표면과 달리 15도 정도로 연중 일정한 온도이기 때문에 냉난방 시스템에 이용할 수 있는 겁니다. (어릴 때 모래 놀이터에서 흙을 파다 보면 아래로 내려갈수록 좀 시원했던 것 같아요...)
영어로도 지열 냉난방 시스템은 "geothermal heat pump"라고도 하지만 "ground-source heat pump"라고도 합니다. 한국말로는 둘 다 '지열'이라 헷갈리지만 ground-source라고 하면 약간 더 직관적으로 이해가 되죠. 이런 냉난방 시스템은 지진과는 아무 상관이 없는, 효율적인 냉난방 시스템입니다. (히트펌프에 대한 글은 여기)
아무튼 둘 다 땅의 에너지를 이용한다는 점에선 공통점이 있죠.
글을 쓰려고 찾다 보니 한국의 지열 분야 기술력이 상당히 앞서 있단 걸 알게 되었습니다. 한국 기업이 지열 부문 특허 출원 1위라고 하니 말이에요. 현재로서는 국내에서 적극적으로 이용하고 있지 않지만 해외 시장에서라도 두각을 나타내면 좋겠습니다. 지열은 말 그대로 우리가 깔고 앉아 있는 무궁무진한 에너지니, 분명 미래에 한몫을 하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