뾰로롱 핵융합
스스로 인식하는 나이 ≠ 실제 나이
저는 요렇게 된 지 좀 됐습니다.
한 스물둘까지는 비슷비슷하게 따라가다가, 어느 순간 인식이 따라가지 못하더라고요. 실제 나이는 스물다섯, 여섯, 늘어가는데 마음의 나이는 스물둘 근방에 머무르기 시작했습니다. 인식하는 나이는 실제 나이보다 훨씬 느리게 먹어가서, 실제 나이가 서른이 훌쩍 넘길 때도 스스로 인식하는 나이는 20대 후반을 넘기지 못하더군요. 다행인지 불행인지, 만으로도 불혹이 머지않은 지금쯤 되니 그래도 내가 더 이상 젊지는 않단 걸 인정하고(그보다 엄청나게 거지같아진 체력으로 깨닫고) 마음의 나이도 슬금슬금 실제 나이를 따라잡는 중입니다.
마음의 나이와 실제 나이가 비슷했던 시절, 최고로 힙하다고 인정받는 남자 연예인은 "비(정지훈)"였습니다. 특히 <태양을 피하는 방법>을 부를 때 레이밴 선글라스와 정체불명의 헐벗은 패션은 비의 트레이드마크가 되었죠. (현세대에게는 비는 그저 가끔 나오는 왕년의 스타 아저씨(?) 정도로 보일지 모르겠습니다.. 아 세월아)
아무튼, 오늘 제목을 <태양을 "만드는" 방법>으로 하려고 끄적대다 보니 나도 모르게 <태양을 "피하는" 방법>이 생각나 구구절절 나이 얘기를 해 버렸습니다.
근데 갑자기 태양을 왜 만드냐고요?
원자의 힘을 이용한다니, 천재 아냐?
아서 클라크는 "고도로 발달한 과학은 대체로 마술과 비슷하다"는 말을 했는데요, 진짜 맞는 말 같아요. 저는 특히 눈에 보이지 않는 분자, 원자를 과학자들이 알아내고 증명하고 실험하고... 이런 모든 것이 너무너무 신기했던 기억이 납니다. 이제는 그 존재를 알아낸 것에 더해 원자가 갖는 힘을 이용하기까지 하고 있죠. 저도 인류의 일원이지만 이런 일을 해내는 인류가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원자가 갖는 힘, 즉 원자력 에너지를 말하는 거예요. 우리가 흔히 말하는 원자력 발전이란, 원자가 두 개로 쪼개지는 힘을 이용한 겁니다. 우라늄은 쪼개지며 어마어마한 열에너지를 방출하는데, 그 열로 물을 끓여 터빈을 돌리면 전기를 만들 수 있거든요. 그게 지금 전 세계에서 상용적으로 이루어지는 원자력 발전입니다. 다시 말해 핵이 쪼개지는, "핵분열" 에너지를 이용하는 것입니다.
원래 터빈을 돌리기 위해 석탄 같은 화석연료를 태우는 경우가 많은데, 그러면 석탄의 주성분 탄소(C)가 산소(O2)와 만나 이산화탄소(CO2)가 생깁니다. 그것도 아주 많이요. 이산화탄소는 온실 기체라서 지구를 덥게 만드는 주범이고, 지금 인류의 큰 위기인 기후변화를 가져왔지요.
그런데 화석연료를 태우는 대신 원자력의 힘을 이용하면 온실 가스 배출 없이도 전력 생산이 가능합니다. 그래서 원자력을 많이들 이용하는 것이죠. 그러나 원자력은 사고 위험이 높은 데다 핵폐기물 문제가 있기 때문에 '청정 에너지원'이라고 부르기엔 한계가 있습니다. 연료로 사용하고 남은 우라늄 찌꺼기부터 쓰고 남은 발전기 부품, 작업복 등은 방사능 문제가 있기 때문이죠.
인류의 꿈, 핵융합 에너지
"핵융합" 에너지는 핵분열과는 반대입니다. 원자 하나가 반으로 쪼개지는 게 아니라, 원자 두 개가 뭉쳐서 다른 원소를 만드는 건데요.
수소와 수소가 만나 헬륨이 되는 겁니다. 주기율표의 1번과 2번으로 우리에게 익숙한 원소들인데요. A와 B, 서로 다른 두 사람이 만나 결혼을 한다고 합시다. 그러면 두 사람의 몸무게의 합은 단순히 A 무게 + B 무게가 될 텐데요, 원자와 원자의 결합은 그렇게 단순하지가 않습니다. 헬륨의 질량은 수소 원자 두 개의 질량보다 약간 작거든요. 그러면 나머지 질량은 어디에 있을까요?
잃어버린 질량만큼 어마어마한 에너지로 방출이 됩니다!! (사람들은 결혼하면 살이 찌기 마련인데, 원자의 세계는 역시 다르네요)
빛과 열의 형태로 방출되는 이 에너지는 별이 빛나는 것과 원리가 같습니다. 태양을 비롯한 별들에서는 핵융합이 일어나고 있기 때문에 그렇게 뜨겁고 반짝이며 빛이 나는 거예요.
만일 지구상에서도 조그만 태양을 만들 수 있다면, 아주 작은 연료로도 엄청난 양의 에너지를 만들 수 있기 때문에 에너지 위기 문제는 단박에 해결이 될 겁니다. 그뿐인가요? 온실가스도 방출하지 않고, 핵폐기물도 생성하지 않아 안전하고 100퍼센트 친환경적인 에너지이기도 하죠. 핵융합이 가능하기만 하다면 기후 위기도 끝이 보일 겁니다.
태양을 피하는 건 어렵지 않은데...
그러나 이렇게 말처럼 쉬우면 얼마나 좋겠어요? 핵융합은 아직 '꿈'에 지나지 않습니다. 태양을 비롯한 우주의 별은 그렇게 쉽게 만들어지는 게 아니에요. 일단은 수소 중에서도 중수소(2H)와 삼중수소(3H)가 연료로 사용되어야 하는데, 문제는 삼중수소는 지구상에 자연스럽게 존재하는 게 아니라고 해요. 그래서 핵융합을 하려면 삼중수소를 얻는 과정이 따로 필요합니다. (자세히는 사실 잘은 모릅니다 풀썩)
또, 핵융합 반응이 일어나려면 태양처럼 초고온의 플라스마 상태가 필요한데, 1억 도 정도(!) 된다고 해요. 말만 들어도 약간 불가능의 향기가 스멀스멀 배어 나오죠. 그러나 수많은 과학자들이 거대한 핵융합기를 이용하여 이러한 초고온 상태를 만들고 유지하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만일 초고온 상태를 만들어 유지한다 한들, 그 플라스마를 담고 핵융합 반응을 일으키도록 만들어줄 그릇이 없습니다. 플라스틱 접시에 아주 뜨거운 음식을 담으면 녹아버리는 것처럼, 지구상 어떤 용기도 1억 도를 견딜 수는 없기 때문이죠. 그래서 그릇을 사용하는 대신 자기장을 이용해 초고온 플라스마를 둥둥 띄우는 방식을 생각하고 있다고 해요. (아무리 생각해도 세상엔 똑똑한 사람이 너무 많은 것 같아요...천재 아니냐고) 그러나 이런저런 방식이 모두 핵융합이 생산할 수 있는 에너지보다 투입되는 에너지가 많아 배보다 배꼽이 큰 실정입니다.
이처럼 핵융합에는 여러 가지 장애물이 많이 있습니다. 태양을 피하는 건 쉬운데, 만드는 건 훨씬 어렵죠?
언젠가는 만들 수 있을 거야, 조그만 태양들을
그래도 물론 인류는 노력 중입니다.
미국의 핵융합 스타트업 "헬리온 에너지"는 얼마 전 마이크로소프트사와 계약을 맺어 5년 뒤부터 핵융합 발전으로 생산된 전력을 공급하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전문가들은 이에 그다지 낙관적이지는 않은데요, 아무리 빨라도 핵융합 발전이 상용화되려면 2040년은 되어야 한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작년에는 미국에서 투입된 에너지보다 생산된 에너지가 많아 "순 에너지"를 생산하는 데에도 최초로 성공했습니다. 더디지만 이러다 보면 정말 가능할지도 모르죠. 실제로 아마추어 과학자들을 포함해 작은 규모의 핵융합을 성공한 사람들이 있거든요. 핵융합 상용화만 기다리며 화석연료를 쓰는 건 무책임한 일이지만, 그래도 가끔씩 뉴스를 찾아보며 성공을 기원해야겠습니다.
표지 이미지 출처: 대학생신재생에너지기자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