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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Aug 19. 2023

재미없는 이야기를 끈질기게 하는 사람

오잉, 이게 뭐지?

한참 동안 글을 쓰지 못하다가 오랜만에 브런치스토리를 열었습니다. 그런데 필명 아래 처음 보는 아이콘이 달려 있더라고요. "인문, 교양 부문 크리에이터"라니, 신기했습니다. 그리고 의문도 좀 들었어요. 


내가 쓰는 것이 과연 인문, 교양 분야였나..?



마땅한 카테고리도 없다는 현실 

구독자 수에 연연하지 않고 글을 쓴 지도 3년이 넘었습니다. 한 주먹만 되는 사람이라도 읽어주면 된다는 생각, 아니 그보다 그냥 제 만족을 위해 글을 썼어요. 하필 제가 좀 안다는 분야도 노잼 중 노잼, 기후변화와 에너지. 그래도 더 많은 사람들이 이 중요한 문제에 대해 알아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 최대한 읽기 쉽게 쓰려고 했습니다. 쉽게 쓰려면 내가 잘 알아야 하는데, 제가 사실 얼마나 무지한지도 사무치게 깨닫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ㅋㅋ) 


크리에이터에 선정되신 다른 분들에 비해 저는 구독자 수가 아주 적은 편인 것 같아요. 사실 저도 저와 비슷한 글을 쓰시는 다른 기후변화 관련 작가들의 글을 구독하지만, 알람이 오면 바로 클릭해서 읽지는 않는답니다. 이런 류의 글을 읽을 때면 뭔가 마음의 준비(?)가 필요한 느낌이거든요. 반면 일상이나 육아, 연애 등에 대한 글은 아무 때고 바로 읽고 싶습니다. 저조차 이러니 일반 독자들은 더하지 않을까요..? ( 글들 중 가장 높은 조회수를 기록한 글 탑 5는 모두 홍콩살이에 관한 글입니다. 좁은 집과 바퀴벌레, 헬퍼(가사도우미)나 국제학교 등이 주제지요. 해외생활과 육아가 아무래도 기후변화보다는 훨씬 흥미진진하다는 증거인 듯해요.


‘인문교양‘이라는 분류는 이런 실태를 반영한 것 같아요. 브런치스토리나 헤드라잇 등 다른 플랫폼에도, ‘환경’이라는 주제가 따로 분류되어 있는 경우는 잘 없더라고요. 과학과 시사이슈, 사회, 교양의 성격을 모두 아우르기 때문에 어떤 카테고리를 선택해서 발행해야 할지 막막할 때도 있었어요. 결국 제 생각을 대충 끼적였다는 의미로 '에세이'라고 분류한 적도 있고요. 글의 의도상 에세이는 분명 아니지만 말이에요. 


어쨌든 저는 듣는 사람도 몇 없고 재미도 없는 이야기를 이렇게 꾸준히 하고 있습니다. 



계속 할꺼다, 재미없는 얘기 

기후변화 이야기가 인기 있는 주제가 아니라는 점은 한국만 그런 건 아니에요. 다른 나라도 마찬가지죠. 잘 모르는 이야기, 아니면 무서운 이야기잖아요. 게다가 기후 위기의 책임이 오롯이 인간에게, 우리 모두에게 있단 점 역시 듣기 싫습니다. 이를 해결하려면 지금 누리고 있는 편의성을 희생해야 한단 것도 싫고요. 차 타면 될 것을 굳이 걷고, 로켓 배송 시키면 되는데 귀찮게 직접 사서 담아와야 한다는 잔소리가 싫은 건 당연하죠. 


그래서 사람들은 기후 위기를 당장 당면하지는 않은 과제라고 생각하는 편을 좋아합니다.  


사람들이 왜 기후변화에 대한 담론을 거부하는지 심리학적으로 파헤친 책 <기후변화의 심리학(조지 마셜)>에 따르면, 사람들은 "기후변화가 머나먼 곳의 사람들에게 닥칠 미래의 위협, 특히 인간에게는 해당되지 않는 위협이라는 프레임을 만들어 기후변화를 우리와 상관없는 일로 포장"하곤 합니다. 빙하가 녹는 바람에 살 곳이 없어진 북극곰은 가엾지만, 당장 에어컨을 끌 생각은 없단 겁니다. 


그런데 제가 느끼기로 한국은 특히 정부 차원에서 기후변화에 특별히 적극적이지도 않고, 시민들이 일상적으로 접할 기회도 적은 것 같아요. 저는 주로 영문으로 된 뉴스레터나 사이트를 보고 글을 쓰거든요. 제가 참고로 하는 자료들이 대개 한국어 언론에도 보도가 되기는 하지만, 매일 스쳐 지나가는 수많은 뉴스 중 하나에 불과한 것 같아요. 연예 기사처럼, 그저 한 번 보고 잊어버리는 그런 기사 말이에요. 

Climate Action Tracker에 따르면 실제로 한국은 기후 위기 대처가 "매우 불충분"한 수준입니다.

물론 정부 산하의 여러 기관들에서는 기후변화에 대처하고 관련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뭔가 일반 시민들도 아주 손쉽게 기후 데이터를 확인하고 한눈에 심각성을 깨칠 만한 리소스는 아닌 듯해요. 관련 법령도 잘 정리해 두었고, 필요한 링크도 잘 모아 놨지만, 비주얼 자료에 약하고 어려운 용어가 많단 생각이 듭니다. 

NASA의 Global Climate Change 랜딩 페이지. 직관적으로 한눈에 보이는 자료입니다. 

이처럼 아직은 기후변화 담론의 분위기가 무르익지 않았지만, 불행히도 지구는 충분히 무르익었습니다(?). 최근 UN에서는 지구 온난화(global warming)의 시대를 넘어서서 지구 열대화(global boiling)의 시대가 왔다고 선언하기도 했죠. 열대라고 하면 야자수가 생각나지만, 영문으로 읽으면 그런 낭만적인 풍경이 아니라 '보일링'입니다. 보글보글 끓고 있다고요. 


아무튼 그래서, 앞으로도 어떻게 하면 이 얘기를 더 많은 사람들에게 읽힐 수 있을까 고민하려고 합니다. 읽고, 생각하고, 다시 입으로 전할 수 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처럼 재미없는 이야기를 끈질기게 하는 사람들이 더 많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다 보면 '환경' 부문도 카테고리가 생길 날이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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