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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Nov 10. 2023

이제 '본방사수'는 없다  

전력도 프로슈머 시대

이제 두 돌인 저희 집 둘째는 (한국의 다른 모든 유아들과 마찬가지로) 타요버스 팬입니다. "타우타우 타우타우~"하며 노래도 따라 부르는 게 얼마나 귀여운지 몰라요. 

솔직히 재밌음... 

아기들이 영상물을 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니 되도록 영상물에 노출시키지 않았지만, 두 돌도 넘었으니 요즘은 5-10분 정도 타요 동영상을 보여주기도 해요. 얼마 전에도 넷플릭스를 통해 잠깐 보여주고 껐는데, 성에 안 찼는지 아이가 "또 보여도(보여줘)"하는 거예요. "아냐, 이제 타요버스 끝났어. 안 나와"하니, 아이는 리모컨을 들어 TV를 켜더니 넷플릭스를 틀더군요.. 하필 방금 보던 영상의 썸네일이 떠 있었고, 아이는 이거 누르면 되는데 끝나긴 뭐가 끝났냐는 눈빛으로 절 바라봤어요. (엄만 이것도 몰라...?)


비로소 이런 생각이 들더군요. 예전엔 시간 맞춰 TV 앞에 앉아 '본방사수'를 해야만 볼 수 있었던 콘텐츠인데, 요즘 아이들은 본방사수가 뭔지 전혀 모를 것이란 생각이요. 신문에서 TV 편성표를 보고, 시청하고 싶은 프로그램에 동그라미도 치던 옛날 옛적. 채널이라고는 공중파밖에 없던 그 시절. 본부에서 틀어주는 걸 그대로 봐야만 했던 때도 있었는데. 요즘 아이들이 들으면 아마 눈을 휘둥그렇게 뜨겠지요? 



전력도 프로슈머 시대 

예전엔 콘텐츠 제작이며 방영이 중앙집중식이었지만, 요즘은 누구나 보고 싶은 콘텐츠를 골라 아무 때나 볼 수 있는 시대입니다. 거기서 더 나아가 콘텐츠를 제작하고 방송할 수도 있죠. 어린아이들부터 직장인까지 누구나 유튜브 채널을 만들어 영상을 업로드할 수 있고요, 요즘 학생들은 친구들과 함께 틱톡에 올릴 재미난 영상을 만드는 것으로 시간을 보낸다고 하죠. 콘텐츠의 생산자(producer)와 소비자(consumer)가 따로 구분되지 않는, 프로슈머(prosumer)의 시대입니다. 


그런데 이게 동영상만 그런 게 아니에요. 스마트폰을 충전하느라 우리에게 친숙한 '전기'도 마찬가지거든요. 예전에는 각 지역의 발전소에서 전기를 만들어서 소비자의 사무실이나 집까지 전력을 송, 배전했는데, 마치 몇몇 방송국에서 콘텐츠를 생산해서 공중파에 방영하는 것과 비슷한 것이죠. 중앙집중적인 시스템이니까요. 그런데 기후 위기와 함께 에너지 문제가 대두되며 이런 방식이 달라지기 시작합니다. 


예전처럼 거대한 양의 전기를 발전소 한 군데에서 한꺼번에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훨씬 적은 양의 전기가 이곳저곳에서 생산되기 시작한 거예요. 특히 요즘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있는 풍력 발전이나 태양광 발전의 경우 한 번에 생산할 수 있는 전력의 양이 기존 화력발전소나 원전에 비해 크지 않고, 지역적으로도 훨씬 분산되어 있습니다. 그렇다 보니 작은 단위의 공동체에서 각자 만들어서 각자 쓰는 모양새가 나타나기 시작한 거죠. 남는 전력이 있다면 주변에 보내기도 하고요. 에너지의 자급자족이랄까요? 중앙집중형의 기존 시스템과 달리, 각 꼭지에서 다 컨트롤이 가능한 이런 시스템을 마이크로그리드라고 부릅니다. 그리드는 망, 즉 전력망을 말하는데, 규모가 작게 곳곳에 있다는 뜻이죠. 어디서 많이 들어본 말이죠?


마이크로그리드 개념도 (이미지: Mesa Solutions)



혼자라도 씩씩하게 

이런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의 최장점은 역시 정전 걱정이 없다는 겁니다. 


기후 위기의 시대, 자연재해가 잦아졌지요? 일례로 최근 오염수 방류도 논란이 된 후쿠시마 원전도 쓰나미 때문에 원전 시설이 파괴되어 발생한 사건인데요, 이처럼 자연재해의 강도와 폐해가 커지면서 에너지 인프라도 위협을 받습니다. 덥고 건조한 캘리포니아도 매년 산불로 몸살을 앓는데, 산불 때문에 송전선이 파괴되어 대규모 블랙아웃이 온 경우도 자주 있거든요. 몇 년 전 유례없는 한파를 겪은 텍사스도 전력이 끊겨 엄청 고생했고요. 방송국이 파업해 버리면 TV를 볼 길이 없었던 과거와 비슷하달까요.


그러나 마이크로그리드 시스템이 갖춰지면 에너지의 자급자족이 가능합니다. 꼭 중앙시스템에 연결될 필요가 없거든요. 위에 제가 넣어 놓은 그림을 보시면 4시 방향에 Utility Provider라는 꼭지가 있는데, 이 선은 연결할 수도 있지만 끊을 수도 있어요. 만일 중앙 유틸리티와 연결이 끊겼다고 해도, 재생 에너지 발전이라든지 에너지저장 시스템, 전기차 배터리 등을 통해 섬 모드(Island mode)로도 전력 공급이 가능하니까요. 그래서 미국도 군사시설이나 병원 등에 정전을 대비해 마이크로그리드를 열심히 추진하고 있습니다. 


한편 재생에너지에 유리한 전력망이라는 것이 또 다른 장점입니다. EU는 이런 차원에서 마이크로그리드를 밀고 있는데, 전에 쓴 적도 있지만 재생에너지는 기존 중앙집중식 전력망 입장에서 보면 고마운 존재라기보다 '악동'이거든요. 예를 들어 갑자기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서 풍력 에너지가 너무 많이 생산되어 버리면, 전체 시스템의 계통 안정성을 해쳐서 오히려 정전 가능성이 생깁니다. 그러나 커뮤니티 단위로 쪼개지면 연결시켰다 끊었다, 훨씬 자유로워지죠. 


기후 위기 측면에서 봐도, 에너지 안보 측면에서 봐도 마이크로그리드는 중요한 주제죠. 



가상현실은 아는데 가상발전소라니?

그런데 말이죠, 한국은 다른 나라에 비해 이런 논의가 좀 더 어렵습니다. 왜냐고요? 답은 바로 아래 사진의 주인공 때문입니다.


.. 두둥, 한전

한국전력 (이미지: 시사저널)

다른 나라와 달리 한국은 한전이 우리나라의 전력 시스템을 독점하고 있습니다. 경제 성장에 필요한 전력을 무조건! 안정적으로! 공급해 온 일등 공신이죠. 거의 10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국 전체의 전력망과 전력 판매를 혼자 하고 있는데요, 한국의 기업과 국민들을 위해 전력 가격도 낮게 유지해 와서 매번 적자를 기록하고 있죠. 문제는 이제까지는 이런 구조가 잘 먹혔는데, 재생 에너지를 늘리고 마이크로그리드를 추진해야 하는 상황이 되자 얘기는 좀 달라집니다. 


집에 날아오는 고지서가 무조건 한전인 상황에서, 어떻게 우리는 프로슈머가 될 수 있을까요? 각자 전력을 생산하고 남는 전력을 판매하기도 하는 건 딴 세상 얘기죠. 외국에선 발전사업자, 전력거래소, 소비자들이 자유롭게 전력을 판매할 수 있는 가상발전소(Virtual Power Plant) 얘기도 본격적으로 논의되고 있는데, 한국은 구조적으로 그게 어려운 겁니다. 한전도 자체적으로 마이크로그리드 시범사업을 벌이고 다각도로 사업을 다변화하고 있지만, 근본적으로 개방적, 경쟁적인 시스템으로 이행하지 않는 이상 한계가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어쨌든 지역별로 분산된 분산전원이 트렌드가 되어가니, 어떤 식으로든 변화가 있겠죠. 



아무튼.. 이제 타요버스 그만 보라고 할 때 뭐라고 해야 할까요? ㅜㅜ 



*참고자료 

- 에너지고위경영자과정 변화와 미래 포럼, <기후변화와 에너지산업의 미래>, 2021

- 한국 IR협의회, 산업테마보고서 <스마트그리드/마이크로그리드>, 2019 

- Youtube 영상, 한전KDN, <에너지 자급자족, 마이크로그리드란?> , 2021 

- Youtube 영상, E 스튜디오, <에너지지식탐구(9화): 재생에너지의 한계를 보완하는 분산전원과 스마트그리드>,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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