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일 가스, 셰일 오일 - 셰일 '혁명'
'혁명'이라 하면 뭐가 생각나세요?
농업 혁명, 프랑스 대혁명, 산업 혁명...
기존의 질서를 온통 뒤흔드는 굵직한 사건들이 생각납니다.
최근에도 혁명이라는 말을 붙여 자주 부르는 사건이 있습니다. 그건 바로 "셰일 혁명"인데요, 뉴스에서 자주 들어본 말이지요. 셰일 가스, 셰일 오일의 발견과 이용이 시작되며 전 세계 에너지 판도를 뒤흔들고 있기 때문에 혁명이라고까지 부르는 거예요.
그렇지만 저는 사실 최근까지도 '뭘 저렇게까지 호들갑을...'이라고 생각했었습니다. 오늘은 저와 같은 분들을 위해 셰일 가스에 대해 좀 알아볼까 합니다.
셰일이 뭐길래 이 난리
셰일이 뭐인고 하니, 돌입니다. 퇴적암의 한 종류인데요, 얘네들이 특별한 점이 뭐냐 하면 바로 셰일층 안에 가스나 오일이 들어 있는 경우가 있단 겁니다. 오~ 에너지원이 돌 안에 들어 있다니 신박합니다. 이런 화석연료야말로 나라의 소중한 자원인데 말이죠.
모두 잘 알다시피 화석연료 분포는 치사하게도 엄청나게 불공평한데요, 한국의 경우는 석유 한 방울 나지 않고 그 흔한 석탄마저도 품질이 별로 안 좋은 애들만 나옵니다. 반면에 사우디나 카타르 같은 산유국들은 잘난 것 하나 없으면서(?) 석유를 팔아서 떵떵거리고 살게 되었죠.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던 미국도 예전엔 텍사스에서 석유가 좀 났었는데 금방 고갈되었고, 석유만큼은 수입국 입장이 되며 산유국들 눈치를 보는 입장이었어요.
오일쇼크 사태만 보아도 석유 가격이 얼마나 세계 경제를 쥐락펴락할 수 있는지 잘 알 수 있었지요. 석유, 특히 내연 기관에 쓰이는 석유야말로 대체품이 전혀 없는 화석 연료잖아요. 전기차니 뭐니 이런 것도 다 요즘 얘기지, 예전엔 석유 없이 굴러가는 자동차나 트럭은 상상하지 못했으니까요.
가스나 오일을 품고 있는 셰일층의 존재는 예전부터 알려져 있었습니다. 특히 미국이나 중국에 거대한 규모의 가스가 셰일층 안에 매장되어 있다고 했지요. 그러나 산유국들이 더럽고 치사하게 굴어도 미국이 이제까지 셰일 가스를 파내지 못한 이유는, 채굴이 너무나 어려웠기 때문입니다.
그냥 땅을 파서 채굴을 하는 것도 쉬운 게 아닌데, 얘네들은 돌 층 안에 있다니까요? 지하 10km 정도에 띠 형태로 있어서, 기존의 유전처럼 일단 시추를 해서 빼내는 방식으로는 경제성이 도통 나오질 않았습니다. 뭐 힘들여서 할 수야 있겠지만, 그걸로 돈을 벌기는 틀렸단 거죠. 아래 그림을 보면 왼쪽은 기존의 유전이고, 오른쪽은 셰일가스층입니다. 그림만 봐도 까만 부분이 좀 감질나게(?) 생겼죠.
그런데 2000년에 들어선 어느 날, 두둥.
미국에서 수압파쇄법(fracking)이라는 기법을 이용해 셰일 가스 생산에 성공합니다. 수압파쇄법이 뭐냐 하면, 말 그대로 수압을 이용해서 돌을 부숴 버리는 기법입니다. 물을 엄청나게 쏘면 지층이 파쇄되며 가스가 추출되는데, 이런 방식으로 셰일 안에 가두어져 있던 가스나 오일을 얻을 수 있었던 거죠.
아직은 이런 방식의 생산 기법이 기존의 석유 생산에 비해 비싸기는 합니다. 초반엔 사우디가 가격으로 후려치기를 해서 미국의 셰일가스 생산 싹을 잘라버리려고 애쓰기도 했고요. (글케 혼자 다 해 먹어야겠니 증말) 그러나 셰일가스 생산 단가는 점차 낮아졌고, 이는 전 세계 에너지 판도를 바꾸고 있습니다.
자원 고갈? 노워리 노워리
거대한 땅덩이며 인구며, 천혜의 자연과 천연자원을 가진 미국. 그나마 약점이 석유였는데, 이제 미국은 두려울 게 없습니다. OPEC의 입김이 예전만큼 세지기도 어려울 것이고, 유럽의 러시아에 대한 의존도도 조금씩 낮아지고 있습니다. (원래 유럽은 가스 수입을 러시아에 의존해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때 가스 가격이 천정부지로 치솟아 고생을 톡톡히 했었죠)
게다가 가스와 오일을 품은 셰일 층을 가진 나라가 미국만은 아니라는 사실! 중국은 미국보다도 매장량이 훨씬 더 클 것이라고 하고, 캐나다, 남미, 호주 등에도 셰일 가스층이 있다고 하는데요, 아직은 기술력과 자본력의 한계로 본격적인 생산이 어렵지만 이 국가들마저 자원을 뽑아내기 시작하면 미래의 에너지 판도는 어떻게 달라질지 모르겠습니다. (중국은 워낙 건조한 내륙 지역에 매장되어 있다는데, 수압파쇄법은 엄청난 양의 물이 필요하다 보니 생산이 쉽지 않다고 해요)
과거에는 2000년만 되어도 석유가 고갈될 것이라고 했었는데, 새로운 유전의 발견과 시추 기술의 발전으로 고갈 시점은 안 그래도 점점 뒤로 밀리고 있거든요. 여기 셰일 혁명까지 가세하면 에너지원 고갈은 머나먼 나라 얘기일지도 모릅니다.
그런데, 그게 과연 좋은 얘기일까요?
환경, 그리고 기후변화
우리의 소중한 에너지를 얻게 해주는 자원이 금방 고갈되지 않는단 건 고마운 얘기 같지만, 사실 장기적으로 따져 봤을 때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셰일 안에 있든 아니든, 화석 연료는 화석 연료잖아요.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죠. 지금 석유고 가스고 석탄이고 어떻게든 적게 쓰려고 난리인데, 화석 연료 가용 자원이 늘어났다고 만세를 부를 타이밍이 아니란 겁니다. 다음 주부터 담배 끊으려는 사람이 뒷방에 꿍쳐두었던 담배 열 보루를 발견하고 엉덩이춤을 추는 것과 뭐가 다른가요? 셰일 혁명은 화석 연료 의존도를 낮추는 데 오히려 방해가 될 수도 있단 겁니다.
물론 셰일 덕에 기존의 석탄화력발전소 대신 천연가스 발전소로 대체하여 전반적인 탄소발자국을 줄일 수 있는 점도 있긴 하지만(석탄보다는 천연가스가 이산화탄소 배출량이 훨씬 적거든요) 가스 발전이 근본적인 해결책은 아니니까요. 담배로 치면 1미리..랄까요. 니코틴 함량 줄이면 물론 건강에 덜 해롭겠지만 최종 목표인 금연이랑은 거리가 멀잖아요.
게다가 수압파쇄법 자체도 환경주의자들은 반대하곤 합니다. 물을 쏠 때 각종 화학 제품을 섞어서 쏘게 마련인데, 이게 지하수층으로 새어 들어가면 지하수 오염의 문제가 생길 수 있기 때문이에요. 뿐만 아니라 수압파쇄법이 지층에 엄청난 압력을 가하다 보니 지진을 유발한다는 우려도 있습니다. 근사해 보이는 셰일 혁명의 그림자랄까요?
깊은 땅 속에 묻혀 있는 지층에서도 자원을 뽑아낼 만큼 발달한 기술이 놀랍기는 합니다. 그러나 기술 발달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지는 않는단 교훈을 셰일 혁명이 가르쳐 주는 듯합니다.
* 표지 이미지: Unsplash.com
* 한귀영, <세상을 움직이는 힘, 에너지> 중 제6장을 많이 참고했습니다. (아니 근데 이 책 진짜 잘 쓰셨음. 대체 어떻게 이런 재밌는 책이 있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