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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Dec 04. 2023

희망 or 폭망?

화석 연료를 사용하지 않으면서 에너지 밀도를 유지할 수 있는 방법은
OOO발전 뿐이며,
오직 그것만이 시장에서 검증받은 대안이라 할 수 있다.


이 문장에서 OOO 안에 들어갈 말은 과연 무엇일까요? 


정답은 뜨겁다 못해 불타는(!) 감자, "원자력" 발전입니다. 저 같은 어중이떠중이(...)가 한 말 아니고요, 똑똑 박사 바츨라프 스밀 교수님의 말씀이니 믿으셔도 됩니다. 

빌 게이츠가 가장 사랑하는 작가 바츨라프 스밀. 얼굴만 봐도 똑똑해 보임.. (이미지: https://windshoes.khan.kr)

기후 위기가 심각해지며 신재생 에너지를 확대하고 화석 연료의 사용을 줄이려 온 세계가 애쓰고 있는 건 다 아시죠? 그런데 신재생 에너지가 참 그럴듯해 보이지만 여러 문제가 있습니다. 제일 큰 문제는 '간헐성'으로, 태양광이나 풍력 발전은 청정한 에너지원이긴 하지만 태양빛이 없는 밤이나 바람이 잠잠한 날 발전을 하기 어렵다는 커다란 문제가 있죠. 우리에게 전력을 24시간 필요하니까요. (갑자기 휴대폰 충전 못하면 대패닉)


또 다른 아주아주 큰 문제는 바로 신재생 에너지의 낮은 '에너지 밀도'입니다. 석탄이나 석유, 가스와 같은 화석 연료는 에너지 밀도가 겁나 큰데요, 그 말은 적은 양으로도 아주 많은 에너지를 생성할 수 있단 겁니다. 하지만 신재생 에너지를 이용해서 똑같은 양의 에너지를 생성하려면... 산을 깎고 들판을 밀어서 모두 태양광 패널로 빼곡히 채워도 될까 말 까거든요. 청정에너지를 위한답시고 온실 가스를 흡수하는 숲을 밀어버리는 모습을 보면 뭔가 배보다 배꼽이 큰 느낌을 지울 수 없지요. 


아무튼 그래서 이렇게 에너지 밀도가 차이가 나기 때문에, 바츨라프 스밀 님은 원자력 밖에 답이 없다고 말씀하신 겁니다. 사실 이 분만 원자력 발전을 옹호하는 건 아닙니다. 전 세계 수많은 전문가들이 '석탄 화력 발전소'에 대해서는 '줄이거나 없애야 한다'는 똑같은 의견을 가지고 있지만, 원자력 발전에 대해서만큼은 의견이 갈립니다. 그것도 명백하게 갈려요. 탈원전이 답이라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원자력만이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지요. 


저는 에너지와 기후 위기에 대한 글을 몇 년 간 열심히 써 왔는데요, 사실 글을 쓰면 쓸수록 답은 분명해 보였습니다. 기후변화는 이미 일어나고 있는데 변화는 너무도 더디거든요. 재생 에너지 가격이 많이 싸지긴 했지만, 인도나 중국 같은 개도국에서는 급증하는 인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향후 10년 동안 엄청난 양의 석탄 화력 발전소를 더 건설할 것이라고 발표하기도 했고요. 이러다 보면 극지방 얼음 다 녹는 건 시간문제일 것만 같아요. 그러니 그냥 원자력 계속하는 게 답 아닌가... 싶더라고요. 


저만 그렇게 생각하는 게 아닙니다. 원전 축소 또는 탈원전을 선언한 국가들도 슬금슬금 원전으로 다시 복귀하고 있는 경우가 많거든요. (나야 나 대한민국) EU의 경우는 최근 원자력 발전을 '친환경 에너지원' 중 하나에 껴 줍니다. 태양광이나 풍력과 어깨를 나란히 한 거예요. 원전에 투자하면 녹색 투자로 인정받아 각종 혜택을 받게 되었단 소리지요. 영국도 원래는 원전을 한 곳 빼고 폐쇄하려다가, 원자력 발전 비율을 높이겠다고 정책 기조를 바꾸었다고 해요. 


그러나 에너지 문제라는 게 이렇게 개념적으로 득과 실을 따져서만 해결되는 건 아닙니다. 특히 원자력 발전의 눈부신 장점 뒤에는 그보다 더 진한 그늘이 있거든요. 말로만 들었던 무시무시한 핵 사고들에 대해 공부해 보니 과연 나의 가족이나 친구가 이런 사고를 겪었다면 똑같이 생각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아무리 '인재'라지만..., 체르노빌 참상

인류와 핵 에너지의 만남은 결코 다정하지 않았지요. 실제로 사용된 건 제2차 세계대전을 끝장내버린 히로시마의 원자 폭탄, '리틀 보이'였으니까요. 원자력의 위력을 실감한 전 세계의 국가들은 그 이후 핵을 평화적으로 사용하려는 노력, 즉 원자력 발전에 큰 관심을 기울입니다. 특히 냉전 시대, 소련은 원자력 발전소를 여럿 건설하며 인민들에게 안정적으로 에너지를 공급했지요. 그러나 <에너지 세계사>라는 책에서 언급했듯, 원자력은 "결코 군사 무기로서의 능력이나 잠재적인 위험성에서 완전히 벗어난 적이 없"습니다. 폭탄을 만든 같은 기술로 에너지를 만드는 것뿐이기 때문에, 사고가 발생하면 그에 상응하는 재앙이 벌어졌거든요.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1986년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전 사태입니다. 체르노빌 사고에 대해서 잘 알고 싶으신 분은 이 영상 추천: 

https://www.youtube.com/watch?v=X8OpWkRmukw&t=3491s

쉽고 재미있게 잘 만들어진 영상이고, 꽤 자세하게 다루고 있어 볼 만합니다. 


아무튼 히로시마 원폭만도 충격적이었는데, 당시 방사능 양의 무려 400배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양의 방사능 물질이 방출되었습니다. 이로 인해 사고 초기에 사망한 사람들만 수천 명, 그 이후 암에 걸린 지역 주민들까지 합치면 피해자가 수백만 명에 이른다고 합니다. 이 방사능 물질이라는 게 눈에 보이질 않기 때문에 얼마나 무서운지 감을 잘 못 잡는 사람들이 있는데, 아래의 사진을 보면 단번에 이해가 됩니다. 피부가 전부 괴사 되어 시간이 지나자 얇은 껍질이 계속 벗겨져 나왔고, 혈관이 터져 나가서 금방 사망에 이르렀다고 하죠.

드라마 <체르노빌> 중 방사선에 직접 피폭된 피해자의 모습

DNA에 바로 영향을 미치기 때문에 위와 같이 급성으로 바로 나타나는 영향부터, 암이나 백내장 등의 만성적인 질병, 그리고 대물림되어 나타나는 유전적 문제 등 광범위한 문제가 나타납니다. 인간만이 아니고, 연구해 보니 이 지역의 새들은 정상적인 새들보다 상당히 뇌가 작고, 나무들도 더디게 자라고 있다고 해요. 


체르노빌 사태는 당시 여러 가지 미숙함과 실수, 은폐가 점철되어 생긴 '인재(人災)'라는 의견이 지배적이지만, 핵 사고가 한 번 일어나면 얼마나 끔찍하며 오래도록 흉터를 남기는지 알려주는 무시무시한 경고장이 되었습니다. 이 사태 이후 사람들은 폭탄이 아니더라도 '핵'이라는 말 자체에 공포를 느끼게 되었으니까요.



사고가 아니더라도, 폐기물은 어쩌나 

문제는 원전이 폭발하지 않아도 방사성 물질이 배출되는 오염원이 계속 존재한다는 겁니다. 네, 바로 폐기물이에요! 원자로가 아무 사고 없이 완벽하게 작동한다 하더라도, 핵 폐기물은 발생하잖아요. 다 쓴 핵 연료봉에서 생기는 폐기물이 얼마 동안이나 위험한지 아세요? 무려 5만 년 동안이나 인간에게 해롭다고 합니다. 원자력을 쓰는 국가들은 이를 이곳저곳에 나눠서 저장한다든지, 재처리해서 쓴다든지 여러 방안을 고안하고 있기는 한데요, 그래도 여전히 맘이 놓이지 않는 건 사실이지요. 

무시무시한 핵 폐기물 (이미지: Environment Buddy)

폐기물 중에서도 문제가 되는 건 '고준위' 폐기물입니다. 발전소에서 발생한 잡동사니나 쓰레기 등은 '저준위' 폐기물이라고 하고 동물로 치면 햄스터 정도로 생각하시면 됩니다. 방사능 수치도 자연 방사능에 비견될 정도고요. 원전에서 발생하는 폐기물의 대부분이 이 저준위 폐기물이라고 해요. '중준위' 폐기물부터는 위험한데, 작업복이나 원자로의 부품을 말하고요, '고준위' 폐기물은 아주 적은 양이 발생하지만 매우 위험합니다. 쓰고 남은 핵연료가 이 고준위 폐기물에 해당하죠.


맥네일이라는 학자의 글에서 보니 이 고준위 폐기물을 앞으로 3,000세대의 인간이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면 백혈병이나 암 발생률이 증가할 것이라고 합니다. 게다가 앞으로 그렇게 기나긴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생길지 어떻게 아나요? 분명 해수면은 상승할 것이고, 전쟁이 날 수도 있고, 코로나 같은 전염병이 세계를 휩쓸 수도 있고, SF 소설 같지만 정말 소행성 충돌이 일어날지도 모르잖아요. 그 모든 일을 겪으며 인간은 과연 핵 폐기물을 잘 관리할 수 있을까요?  




오염수 방류로도 이렇게 시끌시끌한데 

최근에 옆 나라 일본 때문에 또 시끌시끌했었는데요, 바로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 때문입니다.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2011년에 일어난 사고인데, 원래 '불의 고리' 위에 위치해서 지진 위험국인 일본에서 유달리 큰 규모의 쓰나미와 지진 때문에 발생한 사고입니다. 쓰나미와 지진 피해만도 골치가 아픈데, 하필 해당 지역에 원전이 있었던 거예요. 원전 냉각 시스템이 파괴되고 원자로 노심이 과열되어, 시설 내 용수가 방사성 물질로 오염이 되어 버렸죠. 더 큰 사고를 막으려면 연료봉을 식혀야 하니 냉각수를 투입했는데, 깨끗한 물을 붓더라도 이미 오염된 원전에 물을 부으니 오염수가 계속 발생하게 된 거죠. 그 양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나 봅니다.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이미지: 충청신문)

언제까지나 그렇게 오염수를 탱크에 채워 놓을 수는 없는 노릇이니, 일본 정부는 국제 사회의 반대를 무릅쓰고 오염수를 태평양에 방류하겠다고 결정합니다. 이미 원전을 쓸 수가 없게 되어 버렸고 해체를 해야 하는데, 그렇게 물을 쟁여놓고 있으면 아무것도 못 한다 이거죠. 물론 오염된 걸 그대로 방류하는 건 아니고, 처리 과정을 거치고 희석시켜 찔끔찔끔 방류하겠다고 발표했지만 사람들의 마음은 불안하기만 합니다. 특히 바로 이웃에 사는 한국은 더하죠.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체르노빌에 비해 인명의 피해는 적었지만, 원전 이용이 갖는 또 다른 한계를 보여 줍니다. 인재가 아니라 자연재해 때문이었잖아요. 사실 체르노빌 사태에 대해 알아보면 당시 여러 가지 나쁜 결정들이 겹치고 겹쳐 그 지경까지 간 것임을 알 수 있어요. 요즘 기술이나 언론이 발달한 세상이니 이런 사태는 또 일어나지 않도록 막을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인재는 우리가 막을 수 있지만, 자연재해는 그렇지 않죠. 기후가 점점 더워지며 앞으로 태풍이나 홍수 등 자연재해의 빈도가 더 잦아지고 강도도 점점 더 세질 것이라고 하는데, 원전에서 또 이런 사고가 일어나면 어쩌죠? 


이론적으로만 따지면 원자력만 한 선택지도 없는데 말이에요. 그냥 원자력 잔뜩 쓰고 부족한 부분만 신재생 에너지로 충당하면 좋을 것 같은 생각이 들지요. 그러나 체르노빌 피해자의 사진을 보고 후쿠시마 오염수를 뉴스에서 보면 원자력의 그늘이 얼마나 어두운지 알 수 있습니다. 이번엔 오염수지만, 다음엔 또 뭐가 될까요? 참 결론이 나지 않는 문제입니다. 



벌써 제 브런치스토리에 원전에 관해서만 세 번째 쓰는군요. 그만큼 원전은 논란도 많고 이슈도 많고, 현재진행형인 뜨거운 감자인 것 같습니다. 


첫 번째 글: 이거 정말 '핵망'의 길일까 

두 번째 글: 좀 더 건강한 정크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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