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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Nov 28. 2020

금붕어와 운동화와 장난감의 거리

홍콩의 OO 스트리트 탐구

다닥다닥 붙어 있는 가게들이 쭉 늘어선 거리를 보면 무슨 생각이 드나요? 유현준의 <도시는 무엇으로 사는가>라는 책에 보면 이런 말이 나옵니다.


단위 거리당 상점의 출입구 수가 많다는 것은 세 가지 의미를 가진다. 첫째,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보행자에게 권력을 이양한다. (...) 둘째,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보행자에게 변화의 체험을 제공한다. (...) 셋째, 높은 이벤트 밀도의 거리는 매번 같은 거리를 가더라도 방문을 할 때마다 새로운 체험의 가능성을 높여 준다.


이 말과 딱 들어 맞는 홍콩의 특별한 거리들이 떠올랐어요. 수없이 많은 가게들이 같은 듯하며 다른 물건들을 파는 곳. 아래 소개할 토이 스트리트와 골드피시 스트리트, 그리고 스니커즈 스트리트입니다.


삼수이포, 토이 스트리트  

(이것도 다 코로나 전 이야기지만) 국제학교에서는 대개 아이의 생일이 되면 교실에서 작은 파티를 열어주고, 축하해준 반 친구들에게 답례로 조그만 구디백(Goody bag)을 준비해서 줍니다. 구디백 안에는 사탕이나 초콜릿 같은 간식을 비롯해서 학용품, 장난감 같은 것이 들어가게 마련이지요. 같은 반 친구들에게 근사한 선물을 돌리면 참 좋겠지만, 한 사람당 만원씩만 잡아도 반 친구가 스무 명이면 20만 원. 부모 입장에서는 쉽게 쓰기 어려운 비용이 들곤 합니다.

홍콩에 온 지 몇 달 지났을 때, 아이의 생일을 맞은 언니 하나가 구디백을 준비해야 하는데 삼수이포의 '토이 스트리트'에 같이 가지 않겠냐고 물었어요. 현금을 챙기고, 코스트코 백 같은 커다란 쇼핑백도 하나 들고 오라고 당부했죠. 처음 가 본 토이 스트리트는  정말 신세계였습니다. 낡고 좁다란 거리 양쪽에 빽빽하게 들어찬 가게에는 각종 자동차, 로봇, 블럭, 인형을 비롯해서 학용품, 보드게임, 킥보드, 물놀이 튜브, 파티용품까지 생각할 수 있는 모든 장난감을 팔고 있었거든요. 핼로윈에는 코스튬, 연말에는 엄청나게 커다란 크리스마스 장식까지, 철마다 다른 물품을 판다는 것도 나중에 알게 되었습니다.

Toy street 풍경 (이미지: Discover Hong Kong, hongkongers101)

토이 스트리트의 최장점은 '싸다'는 겁니다. 진짜, 진짜 쌉니다. 오죽하면 어떤 엄마는 생일날 아이를 데리고 가서 "뭐든지 골라봐, 다 사줄게!"라고 했다고 해요. 두 손 가득 골라도 2, 3만 원이면 충분한 경우가 많으니, 토이저러스나 레고 샵에 가서 정품 하나를 사 주는 것에 비해 아이의 만족감은 열 배는 될지도 모릅니다. 구디백을 준비할 때나 생일파티를 열어줄 때, 엄마 아빠의 지갑 부담을 덜어주는 고마운 거리입니다.


품질이요? 가격이 이런데 품질까지 좋으면 사기 아닐까요? ㅎㅎ 물론 조잡한 짝퉁모조품인 경우가 대부분이긴 합니다. 특히 레고처럼 정교한 장난감의 경우 정품과의 차이가 두드러지는 편인데요, 작은 박스 하나에 몇 천 원이면 사기는 하지만 부품이 제대로 없거나 매뉴얼이 빠져 있는 건 애교고, 아귀가 잘 들어맞지 않을 때도 많습니다. 레고 프렌즈 모조품의 경우 원래의 알록달록 예쁜 색감은 온데간데없고 뭔가 침울한 색깔에 사람들의 표정도 어딘가 무시무시합니다. 그래도 아이들이 한 번 하고 거들떠도 보지 않는 장난감이 많은 걸 생각해 보면, 받을 때 기분 좋고 한두 번 만지작거리기에는 그만한 게 없죠.

레고아님 주의. 저작권 위반의 향연이긴 합니다. (이미지: brickshow.com)

학용품과 보드게임은 의외로 알찬 편입니다. 연필이나 크레용, 지우개, 카드놀이와 단순한 보드게임은 몇천 원이면 마음껏 살 수 있을뿐더러 품질도 괜찮아서, 여럿 쟁여놓고 필요할 때마다 꺼내 쓰기 좋지요. 아이 생일파티를 할 때도 풍선이며 갈랜드, 고깔모자 등을 저렴한 가격에 한꺼번에 구매할 수 있어서 참 좋았어요.


이런 실용적인 이유 말고도, 저는 아이를 데리고 갔을 때 아이의 표정을 구경하는 것만도 재미있습니다. 어른 눈에도 재미난데 아이들에겐 오죽할까요. 거리를 오가며 마음껏 구경하고, 가지고 싶은 걸 하나 골라 품에 안고 돌아오는 재미가 쏠쏠합니다.  

  

프린스 에드워드, 골드피시 스트리트

아이가 외동이다 보니 반려 동물을 고려한 적이 몇 번 있습니다. 하지만 손이 많이 가고 수명이 긴 동물을 키우기엔 우리 가족이 얼마나 오래 홍콩에 살지 모르기 때문에 선뜻 들일 수가 없었지요. 그때 마침 금붕어 시장에 구경을 갈 일이 생겼습니다. (근처에 맛있는 로컬 딤섬집이 있어서..)


토이 스트리트와 얼마 떨어져 있지도 않은데, 금붕어 시장은 또 다른 신세계입니다. 다닥다닥 붙은 가게에는 열대어, 거북이, 이구아나, 토끼, 뱀, 고양이 등의 수많은 동물들과 반려동물에게 필요한 각종 사료 및 용품들이 가득 차 있어요. 뿐만 아니라 뱀 같은 동물들을 키우면 필요한 먹이, 즉 벌레와 개구리 등도 수조에 그득그득해서, 전 처음에는 "누가 집에서 벌레를 키워!?" 하며 빼액 소리를 지르기도 했답니다. 간혹 탈출을 꿈꾸는 개구리가 수조에서 튀어나와 길거리에서 그만 지나가는 차바퀴에 운명을 달리하는 모습도 목격합니다ㅠㅠ

골드피시 스트리트의 모습 (이미지: 위키피디아)

우리 가족이 선택한 동물은 소라게였습니다. 야행성인 이 동물은 수줍음이 무척이나 많고 굴에 자꾸 숨어서 영어로도 "Hermit (은둔자) crab"이라고 부릅니다. 사람의 손을 많이 타면 오히려 좋지 않아 초보인 우리에게는 적당할 것 같아 귀여운 소라게 한 마리와 필요한 물건들을 사 왔죠. 나중에 더 공부해보니 집단생활을 잘한다고 하여 두 마리를 더 사 왔습니다. (그러나 그중 한 마리가 살인마로 돌변한 이야기는 다음에 기회가 되면 해 보겠습니다 ㅠㅠ)

귀여웠던 소리게들

소라게 세 마리를 위한 큰 집과 아래에 깔아줄 특수 재질의 모래, 낮에 숨어 있을 동굴(?), 먹이 통과 먹이 등 한 군데서 손쉽게 살 수 있어서 참 편리했어요. 일 년 여 함께 살던 소라게들은 무지개다리를 건넜지만, 아이에게는 소라게들이 새 집으로 갈아타러 다시 금붕어 시장에 갔다고 했습니다. 아이는 요즘도 여전히 근처를 지날 때 "우리 소라게들은 잘 있을까?"하며 구경하러 가곤 합니다.


강아지나 고양이의 경우 펫 샵보다는 유기견, 유기묘를 가족으로 삼는 것이 의미 있겠지만, 금붕어 거리는 쉽게 보기 어려운 파충류나 물고기 같은 동물들을 구경하고 구매하기 더 좋은 곳 같습니다.  


몽콕, 스니커즈 스트리트

얼마 전, 아이가 갑자기 축구에 꽂혀서 축구 유니폼을 갖고 싶다고 했는데요(정확히는 ‘등에 숫자가 있는 싸커 사람들이 입는 옷’). 알아보니 몽콕에 있는 나이키에 가면 구할 수 있다고 하더라고요. 남편이 몽콕에 들러 보겠다고 했는데, 곧 연락이 왔어요.

 

내 눈앞에만 나이키가 열 개야!


엥? 남편이 보내준 사진에는 3층짜리 나이키 건물이 하나 있고, 그 옆 건물에는 1층에만 나이키 표시가 세 개 보였습니다. 나이키뿐만이 아니었어요. 아디다스나 퓨마 같은 스포츠 브랜드가 골목 가득히 차 있었지요. 쇼핑몰 안에도 나이키 풋볼, 아디다스 풋볼, 나이키 키즈 등 각종 스포츠 용품점이 수도 없이 입점해 있었습니다.

나이키가 몇개입니까..

알고 보니 또 나만 몰랐지


이 곳은 "스니커즈 스트리트"라고 부르는 곳으로, 운동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라면 하루 종일이라도 있을 수 있을 법한 스포츠 용품의 성지입니다. 장난감 거리나 금붕어 거리가 양옆으로 빼곡히 들어찬 직선의 거리라면, 이 곳은 좀 더 규모가 크고 큰 길가에 있습니다. 가게가 1층에만 자리한 게 아니고 2, 3층까지 한 건물이 몽땅 같은 샵이거나, 쇼핑몰 안에 자리한 멀티샵 형태로도 입점해 있지요.


축구 유니폼을 찾던 아이를 직접 데리고 가니 눈이 휘둥그레 해집니다. 시내에서 잘 보기 어려웠던 유니폼들도 종류별로, 사이즈별로 구비되어 있고, 한 벽면은 축구화로 가득 차 있으니 말이에요. 몽콕에 가서 나이키를 찾던 우리가 민망해질 법도 하죠.



그러고 보면 홍콩은 무슨 무슨 거리가 참 많습니다. 주방 용품을 모아 파는 상하이 스트리트, 밤에 더 유명한 레이디스 마켓, 골동품을 파는 캣 스트리트, 옥 제품을 파는 제이드 스트리트 등 테마별로 쇼핑을 즐기려면 한도 끝도 없죠. 앞서 소개한 책에 나오는 대로, 이런 거리를 하나 골라 걷다 보면 우연성이 가져다주는 즐거운 경험이 쌓이게 마련입니다. 전에는 못 봤던 육지거북이만 모여 있는 가게를 발견한다든지, 벽 한 면이 몽땅 지우개인 학용품 가게가 눈에 들어온다든지 말이죠. 모퉁이를 돌면 새로운 세계가 구석구석 숨어 있는, 홍콩만의 매력이 아닐까요?  


*표지 이미지: 레이디스 마켓 (출처: Govisi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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