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on Dec 19. 2020

홍콩의 겨울 날씨, 생각보다 많이 춥다

 

어느덧 홍콩에서 맞는 네 번째 겨울입니다.


홍콩의 겨울은 온화한 편이라서, 코끝이 박하사탕처럼 얼어 버리는 한국의 겨울 날씨와는 쨉도 비교도 되지 않습니다. 홍콩에 첫 발을 디뎠던 2017년 연말. 공항에 도착하자마자 느껴지는 가을처럼 시원한 날씨에 무척 기분이 좋았어요. 이사를 오자마자 살 것이 있어서 밤에 밖에 나갔었는데, 한국 같으면 김말이 같은 롱패딩에 털부츠를 신고도 오들오들 떨 계절에 얇은 니트 겉옷 한 장만 걸치고 있단 게 믿기지 않을 정도였죠. 최저 기온도 15도 내외에, 낮에는 20도가 넘으니 숫자로만 보면 얼마나 쾌적한가요.

이번 주가 1년 중 제일 추운 축에 속하는데, 기온이 이정도입니다.

<마녀사냥> 에피소드 중 겨울철 홍콩에서 촬영한 걸 봤는데, 출연진들은 노천카페에 앉아 맥주를 마시며 "햐, 진짜 날씨 좋다!" 하며 감탄사를 연발하더군요. 두꺼운 겨울 코트를 걸치고 출발한 여행이기에 포근한 온도가 새삼 따스하게 느껴졌겠지요.

<마녀사냥> 홍콩편 (이미지: JTBC)

그런데, 막상 지내다 보면 홍콩의 겨울이 그리 만만치만은 않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일단 실내 난방 시설이 전혀 없어서 집 안이 냉골입니다. 온기라고는 1도 없죠. 그뿐인가요? 상업용 건물들이나 버스에서는 습기 때문인지 주구장창 냉방을 해 대서, 온종일 냉기만 으슬으슬하고 따스함을 느낄 공간이 전혀 없습니다. 이사 준비를 할 때 홍콩 내 한국인 커뮤니티에서는 난방 텐트나 온수 매트를 필히! 지참하라고 누구나 강조를 하는데, 그게 이제야 이해가 갑니다. 홍콩에서 맞은 첫겨울, 좁다란 집에 히터를 3개나 장만할 정도였으니까요.


그런데 이걸 뭐라 표현하기가 참 곤란합니다. 한국에 있는 가족이나 친구들과 연락을 주고받을 때도, 날씨 얘기를 하면 참 민망하기 이를 데 없거든요. 저는 나름대로 너무 추워서 "오늘 13도로 내려갔어, 훌쩍"이라고 하면 "야! 여긴 영하 13도다 지지배야"라는 답만 돌아오곤 하죠. (응 미안) 물론 한국의 겨울 날씨야 저도 잘 알지만, 그래도 집 안만큼은 뜨뜻하니 실내외 기온 차이가 분명하지요. 여기는 실내나 실외나 비슷하고, 가끔은 실내가 더 춥게 느껴집니다.


그래도 연말은 그나마 건조하고 날씨가 좋은 편인데, 한 2월 경이 되면 엄청난 습기가 찾아오며 추위는 뼛속까지 들어옵니다. 왠지 셜록 홈스님이 사건을 해결하던 런던의 안개 낀 거리를 상상하게 되죠. 이리로 이사를 오는 사람들이 겨울 옷이 필요하냐고 물으면 패딩 하나는 꼭 챙기라고 말해 주곤 합니다. (저는 코트도 자주 입습니다) 춥고 음습한 날씨가 끝나길 이제나 저제나 바라다 보면, 3-4월경 순식간에 오랜 더위가 시작됩니다. 악명 높은 홍콩의 여름철이 시작되는 거죠.

습도가 80퍼센트를 훌쩍 넘는 홍콩 여름 날씨 (그래프: 홍콩 기상청)

여름철을 생각해 보니.. 그래요, 그래도 겨울이 훨씬 낫습니다. 홍콩에서 여름철을 세 번 보냈는데, 너무나 습하고 더워서 무척 고생했습니다. 첫 번째와 두 번째 해에는 여름이 시작될 무렵 크게 한 번씩 아팠고, 세 번째쯤 되니 괜찮더군요. (습기에 익숙해진 건지 코로나 때문에 정신없이 지나갔는지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뒤돌아 생각해 보니, 이곳에 이사 온 뒤로 살림의 많은 부분은 습기/곰팡이와의 전쟁이었던 것 같습니다. (다른 한 축은 바선생님 퇴치)


그래도 나름 사계절이 있어 긴 여름을 견디기 쉽고, 힘든 여름이 있기에 겨울철의 냉기에 감사할 수 있는 거겠지요.


올해 겨울은 마음이 더 춥습니다. 유명 쇼핑몰들은 여전히 앞다투어 형형색색의 화려한 크리스마스 장식을 내걸었지만, 모두 알고 있죠. 그 어느 때보다 경제는 엉망이고 소비 심리도 위축되어 있단 걸요.

반짝반짝 크리스마스 장식들 (오른쪽 이미지 출처는 pinterest)

지금 이 곳 홍콩에서는 4차 유행의 정점을 보고 있는데요, 1월의 1차 유행, 3-4월이 2차 유행, 7월의 3차 유행에 이어 네 번째로 모든 것을 걸어 잠그었습니다. “모든 것을 닫아 버린다 -> 상황이 나아진다 -> 조금씩 규제를 완화한다 -> 다시 유행한다”의 굴레를 네 번이나 겪은 사람들은 이제 피로감이 극에 달했나 봅니다. 지병이 없던 40대 사망자 소식에도, 곳곳에서 불쑥 튀어나오는 집단 감염 소식에도 점점 무뎌져 가고 있으니 말이에요. 실제로 홍콩의 T-머니라고 할 수 있는 옥토퍼스 교통카드 사용량을 분석해 보니, 재택 근무령 이후에도 사람들의 이동은 좀처럼 줄지 않았다고 해요. 애꿎은 아이들만 학교도 가지 못하고 스크린을 바라보며 온라인 러닝을 하고 있죠.


우리 가족이 홍콩으로 이사를 왔을 때, 15년이 지난 그 시점에도 여전히 2003년의 사스(SARS)를 겪어낸 흔적이 온 사회에 역력했는데요. 곳곳에 일상적으로 자리한 핸드 새니타이저와 가벼운 감기에도 마스크를 쓰는 문화 등은 처음에는 잘 이해하지 못했지만, 전염병을 겪어 보니 이제야 고개가 끄덕여지는 부분입니다. 5월 말에 마법처럼 사라졌다는 사스를 겪은 후에도 그런데, 1년이 되어가는데도 사라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 코로나는 우리 사회에 얼마나 깊은 자국을 남길까요? 코로나라는 이 전무후무한 시대가, 마치 끝을 모르는 길고 추운 겨울처럼 느껴지는 오늘입니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