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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Nov 21. 2020

가격도 분위기도 천차만별, 홍콩 딤섬 이야기

마음에 점을 찍다(點心)


딤섬을 한자로 풀이하면 참 시적이다. 마음에 점을 찍는 것처럼 허기만 채우라는 가벼운 식사. 그래서 홍콩에서도 딤섬을 점심때만 파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나는야 식도락을 즐기는 한국인. 점만 찍기 아쉬워서 시커멓게 한 획을 그으며 다닌다.   


홍콩에서 딤섬을 즐기는 방법은 무궁무진하고, 그래서 재미있다. 최고급 호텔에서 시중을 받으며 우아하게 먹을 수도 있고, 관광객이 넘쳐 나는 유명 식당에서 간신히 낑겨 앉아 먹을 수도 있으며, 광둥어를 하는 사람과 함께가 아니면 도저히 문을 열 용기조차 나지 않는 로컬 딤섬집을 시도해 볼 수도 있다.


딤섬은 차와 함께 먹는데, 그걸 '얌차'라고 한다. 좋은 딤섬집에 갈수록 차도 맛이 훌륭하다.


최고급 호텔 딤섬: 룽킹힌 (Lung King Heen)
룽킹힌의 딤섬

룽킹힌은 포시즌 호텔에 있는 중식당으로, 미슐랭 3 스타를 자랑하는 홍콩 최고의 레스토랑이다. 물론 그만큼 가격은 사악해서, 저녁식사 가격은 상상 초월이며 따라서 나와는 관련이 없는 곳이다. 하지만 낮에 판매하는 딤섬은 (생각보다는) 사 먹을 만한 가격이다. 당연한 소리지만 그래서 점심 예약은 너무너무 어렵다.


한-참 미리 예약해서 딱 한 번 가 봤는데, 식당에 도착하자마자 양 옆에서 친절하게 시중드는 분들이 둘, 셋이나 달라붙어서 너무 고맙고 부담스러웠다. 화장실 한 번 가려고 하니 화장실 코 앞까지 데려다주고 문도 열어 줬다. 빅토리아 하버가 보이는 멋진 뷰는 덤.


음식도 기대를 어긋나지 않게 훌륭했다. 얇은 피 안에 가득 들어 있는 재료의 신선함이 느껴졌고, 전복처럼 값비싼 재료를 이용한 딤섬이나 금가루(진짜 금. 골드.)를 뿌린 딤섬 등 왜 비싼지 알 수 있는 음식을 즐길 수 있다.


호텔은 아니지만 파인 다이닝: 못 32, 딤섬 라이브러리, 만모 딤섬
못32와 만모 딤섬(이미지: 식당 홈페이지)

손님이 오시면 가기에 딱 좋은 포지션을 지닌 식당들도 있다. 딤섬 라이브러리는 고급 쇼핑몰 퍼시픽 플레이스에 위치해 있고, 못 32(Mott32)와 만모 딤섬은 센트럴에 있기 때문에 관광하다가 들르기에 딱이다. 고급스러운 인테리어와 분위기 덕에 딤섬을 깔끔하게 즐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딤섬 라이브러리의 딤섬

이 중 못 32가 가장 고급스럽고 예약도 쉽지는 않은 반면, 딤섬 라이브러리나 만모 딤섬은 좀 더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편이다. 두 곳 다 트러플이나 치즈 같은 서양식 재료를 혼합해 퓨전 중식의 느낌이 있다. 특히 만모 딤섬의 경우 유럽 사람이 운영하는지 웨스턴 관광객들이 많이 오고, 위치도 소호(SOHO)다 보니 맛 자체보다도 특이하고 재미있는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아무튼 세 곳 다 홍콩에 처음 오는 귀한 손님이 왔을 때 모시고 가면 좋을 만한 곳이다.


로컬 유명 딤섬집: 푹람문과 예만방

양조위나 장국영처럼 유명 배우들도 자주 찾다는 두 식당이다. 마찬가지로 고급 식당이지만 위에 소개한 서구화된 느낌과는 달리 아래 사진과 같이 분위기가 딱 중식당 분위기다. 완차이에 위치한 푹람문의 경우 예전에는 미슐랭 2 스타까지 받았다고 하는데 요즘은 예전만 못하다고. 그래도 딤섬 초보인 내가 갔을 때는 바삭한 춘권도 그렇고 하나같이 맛있었다.

푹람문과 예만방(이미지: asiatatler, openrice)

예만방은 해피 밸리라는 곳에 있어서 접근성이 조금은 떨어지는데, 못 가본 사이에 문을 닫아 버렸다(!). 장국영의 단골 집으로 유명했는데, 아쉽다.


관광객 천국: 팀호완과 딤딤섬
팀호완과 딤딤섬 (이미지: tripadvisor)

'세계에서 가장 저렴한 미슐랭 1 스타'라고도 알려진 팀호완은 한국인들도 많이 가는 관광 1순위의 맛집이다. 관광객들은 공항 철도를 탈 수 있는 IFC몰 지하에 있는 곳에 많이 가지만, 거기 말고도 노스 포인트, 삼수이포 등 다른 곳에도 있다. 사실 미슐랭 별을 받은 건 삼수이포 본점이고, 그래서인지 왠지 거기가 제일 맛있는 느낌적인 느낌이 있다. 지점마다 분위기는 약간 다르지만 어디나 사람이 많고 줄을 오래 서야 한다. 그게 좀 귀찮기는 하지만 역시 차슈바오(바베큐 포크 번)만큼은 팀호완이 제일 맛있는 것 같다.


딤딤섬도 팀호완만큼은 아니지만 관광객들을 많이 볼 수 있는 딤섬집이다. 마찬가지로 점심시간에 맞춰 가면 사람이 굉장히 많아서 줄을 서서 기다리거나 자연스레 합석을 해야 한다. 안에 바삭거리는 튀김옷을 넣은 라이스롤이 일품이다.


김밥천국 스타일: 쿵푸딤섬
쿵푸 딤섬 메뉴와 외관 (이미지: openrice, timeout)

로컬 사람들이 늦은 아침식사나 점심을 해결하려 많이 들르는 곳으로, 이곳저곳에 많이 있다. 가격도 저렴하고 맛도 괜찮으며, 메뉴 종류도 다양해서 부담 없이 가기에 좋다. 위 사진메뉴만 봐도 동네 식당의 친근함이 있지 않은가. 줄 서서 기다리는 맛집에 굳이 가고 싶지 않을 때, 집 앞에서 동네 친구와 즐길만한 딤섬 집이랄까.


로컬 끝판왕: 썬힝

아, 썬힝.


남편이 홍콩 동료들과 한 번 다녀오고 맛과 분위기(?)에 감탄해서 데려간 신세계. 이 곳은 로컬 사람들 사이에서는 제법 유명한 집으로, 내부에 신문 기사나 유명인이 다녀간 사진이 붙어 있는 걸 보면 내공이 느껴진다. 신기하게도 저녁 장사는 하지 않고, 새벽 3시에 열어서 오후까지만 딤섬을 판다. 앉아서 먹을 수도 있지만 딤이 담긴 바구니를 산처럼 쌓아놓고 팔기 때문에 테이크아웃하는 손님들도 꽤 많다.


식당의 외관으로 말할 것 같으면, 모르고 가면 아마 식당인 줄도 모르고 그냥 지나칠 것 같은 모양새다. 용기를 내어 문을 열고 들어가면, 아무도 반겨주지 않는다. 커다란 원형 식탁이 군데군데 놓여 있고, 로컬 분들이 광둥어로 떠드는 가운데 알아서 자리를 찾아 앉아야 한다. 물론 대부분의 홍콩 식당들이 그렇듯 합석은 기본이다. (코로나 사태가 터지고 정부 규제가 강화된 이후에는 테이블 간격이 넓어지고 한 테이블 당 앉을 수 있는 사람의 수가 줄기는 했다.)

썬힝의 외부와 내부 (이미지: openrice, tripadvisor)

자리에 간신히 앉아도 친절한 케어는 기대할 수 없다. 단골들은 알아서 뜨거운 물과 접시를 가져다가 소독을 하고, 찻주전자를 가져다 마신다. 종이를 한 장 받아서 딤섬을 가져다 먹을 때마다 표시를 해 달라고 하면, 그걸 보고 나중에 계산을 해 주신다. 우리는 주로 눈치를 보며 기다리다 새로 딤섬이 나올 때 바로 가져다 먹는데, 두리번거리면 아주머니들이 요리를 막 들이밀며 강매하기도 한다. 광둥어로 '맛있어, 한번 잡숴 봐'라는 것 같기는 한데, 어리버리 하다 보면 어느새 계산서에 표시하고 우리 앞에 접시를 던져두고 가 버린다.


불쾌한 경험이냐고? 전혀 그렇지 않다. 음식 맛이 이 모든 당황을 잊게 해 준다. 하가우나 슈마이 같은 기본 딤섬도 맛이 어찌나 좋은지 모른다. (블라인드 테스트하면 룽킹힌이랑 구별 못할 것 같다.) '라이웡바오'라는 안에 커스터드와 계란 노른자를 채운 딤섬이며 달콤한 연유 튀김은 입에서 살살 녹고, 심지어 '라쯔야오(고추기름)'까지 맛있다.

썬힝의 라이웡바오 (이미지: sassyhongkong)

사실 딤섬집에 가서 로컬 분들이 식사하시는 걸 지켜보면, 딤섬은 한 개나 두 개만 시키고 연잎밥 같은 식사를 시켜 간단히 먹는 경우가 더 많다. 골고루 맛보겠다고 대여섯 개를 시켜 놓고 배불러서 차만 홀짝이고 있다 보면 스스로 좀 미련해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맛있는 딤섬은 진짜 맛있다. 한 입 베어물 때 톡 터져 나오는 육즙을 음미하며 향긋한 차와 삼키는 그 맛.


코로나 사태 때문에 몇 달 동안 외식을 거의 하지 못하며, 가장 그리웠던 건 썬힝의 딤섬이었다. 간신히 자리를 찾아 앉아서 어정쩡하게 주위를 둘러보다 보면, 아주머니가 어느새 찻주전자를 탁 놓고 가고 맞은편에 앉은 아저씨가 광둥어로 이런저런 설명을 해 주시는 곳. 생각해 보니 모락모락 연기가 나는 먹음직한 딤섬보다, 코로나 이전의 도란도란한 분위기가 그리운지도 모르겠다.


*표지 이미지: Hong Kong Alphabet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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