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Hoon Mar 23. 2021

엄마는 아이를 얼마나 잘 알까

나는 세상에서 우리 아이를 잘 아는 것이 엄마인 나라고 생각했다.


아기일 때부터 매일 봐 왔으니, 아이가 정말 즐거울 때 내는 꺄르르 하는 웃음소리며, 불안할 때 보이는 눈빛, 심지어 응가를 할 때 짓는 표정까지 아이의 모든 소소한 말과 행동이 대충 이해가 가는 것이다.


나는 끈기가 있는 편은 아니지만 뭔가 한 번 꽂히면 집요하게 지속하는 특징이 있는데, 몇 개 안 되는 것 중 하나가 육아일기다. 남편과 아이디를 공유하는 앱으로 쓰기 시작한 육아일기는 임신 때부터 8년 넘게 매일 이어지고 있다. 앱을 켜면 1년 전, 2년 전, 3년 전의 오늘은 거슬러 올라가 보여 주는데, 아이의 하루를 사진과 함께 간단히라도 기록해 놓은 것이 이쯤 되니 지층처럼 쌓였다.


특히 만 2-3살쯤 그날 처음 한 말, 처음 한 행동을 기록한 부분을 보며 "아, 저땐 저랬지" 싶기도 하고, 그때와 성향이 크게는 변하지 않은 것이 느껴지기도 한다. 육아일기를 보며 차곡차곡 쌓인 아이의 시간과 성장을 지켜봤다는 것이 감격스럽기도 하고, 역시 내 아이만큼은 내가 제일 잘 안다는 묘한 뿌듯함이 느껴지기도 하는 것이 사실이다.



가끔은 그 감정이 자만심으로 연결되기도 하는 걸 요즘에야 알았다. "엄마라면 응당" 알아야 한다고 나도 모르게 생각하고 있달까. 예를 들어 아이의 친구 중 엄마가 아주 바쁜 아이가 있는데, 코로나 이전에는 외국으로 1, 2주일씩 출장을 다니곤 했다. 한 번은 그 엄마와 얘기를 하게 되었는데, 피자와 파스타를 유달리 좋아하는 우리 아이의 식성에 대해 말하며 전생에 이탈리아 사람이었나 보다고 농담을 했다. 그러면서 그 집 아이는 뭘 좋아하냐고 물으니, 곰곰이 생각해 보더니 자기는 아들이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하는 게 아닌가.  그 아이는 주로 헬퍼가 키웠으니 아마 그 집 헬퍼는 잘 알고 있었을 테지만, 그 순간에는 "어떻게 엄마가 그런 것도 모르지?"라고 내심 생각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사실 아이의 성격과 습관을 잘 안다고 해서 특정 상황에서의 아이의 반응 또는 행동까지 이해가 가는 건 아니다. 우리 아이는 얼굴은 나를 많이 닮았지만 성격은 남편을 더 닮았다. 그래서 간혹 나로서는 도통 이해가 안 가는 행동을 남편은 훨씬 잘 이해해 주기도 한다.


게다가 엄마가 아이의 일거수일투족을 눈에 담는 것도 어릴 때나 가능한 얘기다. 아이가 커 가면 기관을 다니며 나름 사회생활이란 걸 하고, 내가 모르는 시간이 늘어나게 마련이기 때문이다. 코로나 때문에 지난해부터 딱 붙어 지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요즘은 다시 학교를 오전에라도 나가기 시작하며 서로 독립적인 시간이 확보되었다. 내내 집에 있을 때는 아이가 부족한 점이 너무 많이 보여 그리도 답답하고 걱정되더니, 오히려 내 눈에 보이지 않으니 잘 지내겠거니 생각한다. 어쨌든 아침에 즐겁게 학교를 가고, 웃는 얼굴로 집에 오니 그걸로 된 것 아닌가.



아이의 학교는 홍콩에 있는 국제학교 치고도 북경어 교육을 굉장히 중시하는 학교다. 중국어를 단지 교과목의 하나로 취급하지 않고, 담임 선생님 두 분 중 한 분이 중국어 원어민이라 하루 종일 옆에서 중국어로 떠들어(?) 주신다. 자연스레 중국어를 접할 수 있게 되기 때문에, 특히 국제 가정이나 중국어를 자연스럽게 배우게 하고 싶은 서양인 가족들이 많이 선택하는 학교다. 우리는 중국어가 우선순위는 아니었지만 학교 자체가 맘에 들어, 중국어도 잘하면 나쁠 게 없다는 생각에 보내게 되었다.


그런데, 아이가 그 학교를 시작하자마자 홍콩 곳곳에서 시위가 터졌다. 그리고 그다음 해는 코로나였다. 하루의 대부분을 학교에서 이중 언어와 사회적 환경에 노출되어야 할 아이가, 쓸쓸하게 엄마와 집에 처박혔다.


학교를 다닐 틈이 없으니 아이의 중국어도 제자리걸음이었다. 온라인으로 하는 수업에서 아이는 도통 집중하지 못했고, 나도 아이 탓을 할 수 없었다. 어른도 5분을 집중하기 어려운 컴퓨터 화면에서 귀도 안 트인 중국어라니. 게다가 중국어 숙제는 대개 쓰기로 나오는데, 어릴 적 한자를 배운 나에게도 어려운 알쏭달쏭한 문자를 아이가 한 바닥씩 즐겁게 쓰면 그게 더 이상한 것 아닌가.


마음 아픈 일도 있었다. 아이의 친한 친구는 엄마가 중국 사람이라 중국어를 굉장히 잘하는데, 우리 아이에게 왜 온라인 수업에서 선생님 말을 따라 하지 않냐고 계속 물어 댔다. (좋은 의도란 건 안다. 제일 친한 친구니까 도와주고 싶었던 것 같다.) 우리 아이는 안 그래도 무슨 말인지 몰라서 스트레스인데 친구까지 그러니 무척 속상해했다. 나는 위로해 주려고 아이에게 말했다. "그 친구는 엄마가 중국 사람이잖아. 너도 만약 학교에서 한국어랑 한글 배우면 반에서 제일 잘할걸?" 갑자기 아이 얼굴이 환해졌다. "와! 나는 '다람쥐'도 쓸 줄 알고 '참외'도 쓸 줄 아는데. 그러면 내가 그 친구한테 빨리 따라 쓰라고 할 거야." 


그래서 아이에게 중국어를 열심히 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냥 수업 시간에 앉아만 있게 했고, 숙제만 너무 뒤처지지 않게 시켰다. 아이는 시큰둥하며 마지못해 따랐다.


그런데 지난주, 온라인으로 하는 학부모 상담일이었다. 영어 선생님과는 영어로 하는 학습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다음은 중국어 선생님과 상담 시간이었다. 영어 선생님은 아이가 잘 지내지만 수학과 리딩이 좀 더 늘어야 할 것 같다고 말씀하셨고, 남편과 나도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상담을 마쳤다. 중국어 선생님에게 접속하며 남편과 나는 무슨 말을 하실까 약간 걱정이 됐다.


그런데 오히려 중국어 선생님은 칭찬 일색이었다. 아이가 아직 중국어가 부족하긴 하지만 그 누구보다도 태도가 좋고, 한 번 가르쳐 주면 금방 배우며, 눈 감고 들으면 중국 아이가 얘기하는 줄 알 만큼 발음도 좋다고.

네? 우리 아이 얘기 맞나요....? (딴애 얘기 같은데)


물론 선생님이 과하게 칭찬해 주신 것은 맞는 듯하다. 아이 학교 교사들은 이 수준의 아이에게는 과외 선생님도 붙이지 말라고 당부하는데, 중국어가 늘기도 전에 싫어하게 될 수도 있기 때문이란다. 아마 포기해 버릴까 봐 더 열심히 칭찬해 주신 것 같다.


그래도 아이가 나름 성실한 태도를 보인 것 같아 그것 하나만큼은 정말 기특했다. 아이가 온라인 수업을 하며 멍하니 딴짓을 하는 것을 보며 속이 터지곤 했는데, 아이는 엄마 없는 공간에선 그래도 사람 노릇을 하고 살아가고 있구나. 엄마가 아이를 제일 잘 안다지만, 꼭 그런 건 아닌가 보다.



그러고 보면 아이를 제일 잘 안답시고 아이가 스스로 문제를 해결할 기회를 먼저 차단시켜 버린다든지, 아이의 강점은 보지 못하고 엉뚱한 곳에 에너지를 쓰고 있는 엄마들도 많이 있는 듯하다. (저요) 우리 아빠는 좋은 글을 많이 쓰시는데, 내가 제일 좋아하는 글이 "아이 뒤에 서기"라는 제목이다. 부모가 아이를 사랑하고 잘 안다고 해서 앞에서 아이를 끌고 가는 것이 아니라, 뒤에서 조용히 따라가 주어야 한다고. 아이가 혼자 힘으로 앞서 나가다가 뒤로 넘어질 때만 묵묵히 안아주면 된다고. 아빠는 그 글의 속편(?)으로 "정말로 아이 뒤에 서기"라는 글을 또 쓰셨는데, 끝에 나오는 이 구절로 글을 맺으려 한다.


세상이 경이롭고 이 속을 모험하며 놀고 싶은 아이의 마음을 깊이 헤아리는 부모가 얼마나 될까. (...) 정말로 아이 뒤에 서서, 가능한 범위 내에서 있는 힘을 다하여 아이들을 지켜내야 하지 않을까. 우리의 현실을 보면서 진짜 노력할 사람은 아이가 아니라, 부모라는 생각이 든다.    




매거진의 이전글 집에 있는 엄마, 일하는 엄마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