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부터 유행하는 MBTI 유형으로 말해 보자면, 나는 소위 "스파크형"이라고 불리는 ENFP에 속한다. 대학생 시절 공대에서 한창 적성에 맞지 않아 방황을 할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학과 내 개설되어 있는 심리상담가를 찾아간 적이 있다. 상담사 선생님은 성격 검사를 포함해 몇몇 검사를 해 주시더니, "아휴, 힘들겠다."라며 혼잣말을 하셨다. 내가 무슨 말씀이냐고 하자, 그분이 이러셨다.
"전기/컴퓨터과에서 처음 봐요, 이 성격."
나는 전기과를 나왔다. 정확히는 전기전자제어공학 + 컴퓨터공학이 합쳐진 학부였다.
고등학교 때 (변태같이) 그저 수학을 좀 좋아해서 이과를 선택했을 뿐인데 수능이 끝난 내 앞에는 선택지가 많지 않았다. 고등학생 내내 해리 포터를 탐독하고 미술사 책을 들춰 보던 내가 진로 고민을 본격적으로 하지 않았던 안일함 때문이었을까. 이것저것 제하고 나니 딱 두 개 남았다. 의대, 아니면 공대. 동물을 좋아해서 수의대는 어떨까 했지만 항상 아픈 동물을 봐야 한단 생각이 원서를 쓰기 전에야 들어서 마음을 접었다. 의대는 언니가 갔으니 굳이 나까지 갈 필요 있을까 싶어서 그냥 원서에 공대를 썼다.
남들은 고등학교 내내 꿈꾸던 목표였을 텐데, 나처럼 별생각 없이 '이거 공부하면 괜찮을 거 같아서' 선택한 사람이 방황을 안 하면 그게 이상한 거다. 아니나 다를까. 눈에 보이지도 않는 전기와 전자를 공부하며 상형 문자 같은 수식과 씨름하고, 아무리 디버깅을 해도 꿈쩍 앉는 보드 판에 프로그램을 입력하는 건 재미가 1도 없었다. 벽돌처럼 엄청난 두께의 공업 수학이며 전자 회로 교재를 들고 다니고, 회색빛 강의실에 꾸역꾸역 출석을 하기는 했지만 내게 전공 공부는 끝까지 낯선 외국어였다.
공부만 적응이 안 된 건 아니었다. 공대 특유의 분위기도 나에게는 독이었다. 같은 공대라도 화학 공학과나 재료 공학과는 좀 낫다고 들었다. 전기, 기계, 토목은 정말 분위기가 '빡세다.' 꼰대처럼 남녀 비율에 대한 선입견을 따르고 싶지는 않지만, 그래도 남학우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은 곳에서 소수자로 살아가는 건 불편한 일이었다. 학부 전체가 300명 가까이 되는데 여학우는 11명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다행히 나의 경우 같은 고등학교를 나온 여자 친구를 비롯해서 다른 여학우들과 네 명이서 친하게 지냈던 터라 의지가 많이 되었지만, 어쨌든 주변에는 항상 남학우들이 바글바글했다.
가장 듣기 싫었던 말이 "어머, 너 그럼 '공대 아름이'겠네."였다. 당시에 혼자 여자인 공대 학생 '아름이'가 공대의 '꽃'으로 분위기 메이커가 된다는 어떤 광고가 있었다. 공대 아름이는 무슨. 명확히 내 감정을 표현할 수 없었지만 그런 분류가 무척 불편했다. (많은 남자 친구들과 몰려다니며 친하게 지냈지만 꽃으로 대접받은 적이 한 번도 없어서 그런지도 모르겠다)
반대로 어떤 여자 선배는 '그냥 네가 남자라고 생각하고 살아'라고 말해 주었다. 그리고 당시에는 난 그것이야말로 험난한 공대 생활에서 살아남는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했다. 털털하게, 부담 없게, 그저 '너희 중 하나'로 받아들여져야만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아무리 깡소주를 들이붓고 걸걸하게 욕을 해도, 정말 원 오브 뎀이 될 수는 없었다. 나는 여자니까. 일단 막 어른이 된 여대생의 옷차림은 걸출하게 화려했다. (변명하자면 라떼는 유독 형형색색의 패션이 유행이었다) 이미 외모부터 남자와는 거리가 먼데, 어떻게 남자가 되라는 건가.
여자가 성공적으로 공대를 다니려면 꽃이 되거나 남자가 되거나, 둘 중에 하나여야 할까? 나는 늘 그런 고민을 하며 지지부진 학교를 다녔다. 연극이며 미술사, 프랑스어 등 흥미진진한 교양 수업에는 최선을 다했지만 전공 수업은 열심히 하지도, 포기하지도 않고 그저 앉아 있기만 했다. 매번 대학 생활에서 할 수 있는 다른 모든 것들--동아리, 연애, 그냥 술 먹고 놀기--로 도망쳤다.
그렇지만.. 다시 누군가 내게 선택지를 준다면 고등학교 졸업 후 다른 전공을 선택했을까? 아이러니하게도 대답은 '아니'다.
혹시 되돌릴 수 있다면 나는 대학생 때 똑같은 전공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하는 말이기는 하다, 허허.) 대신에 이번에는 정말 열심히 해 보고 싶다. 나는 언제나 스스로 문과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지만, 정작 문과인들 틈에 껴있으면 항상 가장 이과적인 사람으로 분류되곤 했다. 내가 가진 소질과 관심보다 더 중요한 것이 '무언가를 대하는 태도'라는 것이 십수 년이 지난 지금에야 비로소 느껴진다. 책을 읽다 아래의 구절을 보고 느꼈다. 항상 도망가기만 했던 나의 청춘. 잘 안 맞는다는 변명 없이 끝까지 부딪쳐 보았으면 좋았을 텐데.
과학 교수들은 내가 여자아이였음에도 나를 받아들였고, 내가 이미 의심하던 사실들을 재차 확인해줬다. 바로 내 진정한 잠재력은 내 과거나 현재의 상황보다 투쟁을 마다하지 않는 내 의욕에 있다는 사실 말이다.
- 호프 자런, <랩 걸> p. 33
어쨌든 나의 부족함도 그렇게 쌓여서 지금의 나를 만들어준 것이다. 세상에 허투루 지나가는 것은 없다. 비록 그 4년 반의 시간은 내게 맥스웰 방정식조차 남겨주지 않았지만(이게 얼마나 기본적인 것인지는 공대생들은 압니다), 그래도 거기서 나는 한 친구를 만났고, 그 친구 덕에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인생에 가장 중요한 몇 안 되는 것 중 하나를 선물해준 것만 해도 나는 그 시간이, 그 방황이 고맙다.
이 글을 쓰며 찾아보니 이제 공대 아름이도 옛말이라고 한다. 최근 30년 간 여자 공대생이 20배나 증가했다고 하니 말이다(1명에서 20명 된 거겠지만). 내 안의 '공대 여자'도 이제는 불편하지 않은 기억이 되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