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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Hoon May 03. 2021

우리가 잠깐 자리를 비우니 생긴 일

다큐멘터리 <The Year Earth Changed> 리뷰

BBC 다큐멘터리 <The Year Earth Changed> 보신 분?! 

예고편은 아래↓↓: 
https://www.youtube.com/watch?v=XswV_yqPq28

48분의 길지 않은 이 다큐에서는 정말 아름다운 지구의 모습을 볼 수 있지만, 엔딩 크레딧이 올라갈 때쯤에는 어마어마한 현타가 밀려옵니다. 

... 우리 인간은 대체 이제까지 무슨 짓을 하고 산 거지? 


작년 한 해는 역사상 최초로 지구가 잠깐 온전히 멈췄었지요. 아직도 끝날 줄을 모르는 이 전염병 때문에 전 세계 수많은 국가들은 락다운을 선택했고, 상점과 식당, 거리는 텅텅 비었습니다. 저도 작년에 이 전무후무한 사태를 누군가 기록하지 않을까 싶었는데, 정말 이 영상에서는 지구촌 구석구석 텅 빈 도시와 바닷가를 보여 줍니다. 사람들의 발걸음이 끊긴 거리는 고즈넉하고 초현실적이기까지 하지요. 


그런데 말이죠, 사람들이 더 이상 떠들썩하게 모이지 못하고 여행을 떠나지 못하게 되자 야생 동물들의 행동이 변하기 시작합니다. 도시에 사는 새들부터 아프리카 초원에 서식하는 치타들까지, 이제까지 인간에게 서식지를 뺏기고 자동차 경적 소리 때문에 목소리가 묻혔던 동물들이죠. 


제게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알래스카의 고래들이었어요. 원래는 관광객을 가득 태운 크루즈 배들이 쉬지 않고 오가던 그 바다가 고요해지고 고래들은 자유롭게 헤엄을 칩니다. 그러나 소음의 단절은 단순히 고래들의 기분이 좋아진 것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엄마 고래들은 아기 고래를 데리고 먹이를 잡는데, 특히 수유를 하는 경우 충분한 영양분을 공급받아야 하지요. 그런데 이제까지는 배가 내는 소음 때문에 아기 고래에게서 오래 떨어질 수 없었다고 해요. 고래들은 서로 물속에서 소리를 내어 의사소통을 하는데, 예전에는 거대한 배들 때문에 그게 불가능했으니까요. 


하지만 이제는 아기 고래가 안전한 걸 확인하면서도 다른 어른 고래들과 효과적으로 물고기를 몰아 충분히 영양을 섭취하고 있다고 해요. 건강하고 배부른 어미는 새끼들의 생존율도 높여 주고요, 성장과 번식의 선순환으로 이어져 개체 수 자체도 늘어날 수 있답니다. 


하지만 이런 흐뭇한 장면들을 보며 '지구가 회복하고 있구나, 힘든 해였지만 참 다행이야'라고 할 수 없단 게 문제입니다. 다큐멘터리에서도 나온 것처럼,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니 전 지구적으로 온실가스 배출량이 작년 상반기에만 대략 6-8% 정도 감소한 건 사실입니다. 이제까지 한 번도 없었던 일이었죠. 그렇지만 그건 코로나 초반인 작년 상반기 얘기고, 하반기에는 오히려 반등한 거 아세요? 이제 백신도 보급되고 있겠다, 아마 올해도 전혀 나아지지 않을 겁니다. 



저도 아직 다 읽어 보진 못했습니다만, 코로나로 인해 텅 빈 세상은 마치 앨런 와이즈먼의 2007년작 <The World Without Us (인간 없는 세상)>을 연상시키는 듯합니다. 온 인류가 갑자기 말 그대로 하루아침에 지구에서 사라져 버린다면, 자연은 어떤 방식으로 회복할까요? 

http://www.yes24.com/Product/Goods/2720424

하지만 지난주 Carbon Brief [1]에서 지적한 대로, 이 책조차 인간이 모두 사라져서 온실가스를 더 이상 배출하지 않는다고 했을 때 기후 온난화에 어떤 영향을 끼칠지는 명확히 다루고 있지 않습니다. 자연의 회복이 곧 기후변화의 종료를 의미하지는 않으니까요. 


이제까지 배출한 온실 가스가 대기에 남아 있는 한, 인간이 뒤늦게 정신 차려서 넷 제로를 달성한다고 기후 재앙을 막을 수 있을지 불분명합니다. 코로나 전에 사람이 한 명도 없는 뉴욕 타임 스퀘어 거리를 상상조차 할 수 없었듯, 지금도 넷 제로를 달성하여 더 이상 온실가스 배출량이 존재하지 않을 때의 기후 상태를 모델링하는 건 굉장히 어려운 작업이라고 해요. 각 온실 기체가 대기 중 얼마나 머무는지도 추정에 불과하니까요.


배출량이 0이 되더라도 이미 배출된 녀석들 때문에 온실 가스 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된다면, 분명 아래의 빨간 선처럼 지구의 온도도 계속 올라갈 거예요. 하지만 온실 가스는 영원히 그곳에 있는 게 아닙니다. 점차 해양과 숲에 흡수되고 (그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그렇다 치더라도), 더 이상 인간들이 배출하지만 않는다면 이제까지 배출한 양도 마저 흡수할 수 있을 겁니다. 따라서 과학자들은 만일 정말로 넷 제로가 달성된다면 빨간 선이 아니라 아래의 파란 선처럼 지구의 온도가 일정하게 유지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온실 가스 농도가 일정하게 유지될 때 & 넷 제로가 달성되었을 때 지구 기온 그래프 추정 (출처: Carbon Brief)


그래서 일단의 결론은 이렇습니다: 


현재 구할 수 있는 최선의 증거로 미루어 보았을 때, 이산화탄소 배출량 제로가 달성된다면 기온 상승도 억제될 가능성이 높다. 즉 인간이 미래의 기후를 결정할 수 있다. 
(The best available evidence shows that, on the contrary, warming is likely to more or less stop once carbon dioxide (CO2) emissions reach zero, meaning humans have the power to choose their climate future.)


지금 열심히 추구하는 넷 제로를 달성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생긴 셈입니다. '차라리 우리가 지구에 없는 게 낫겠어'라는 슬픈 결론이 나지 않게 말이죠. 


*표지 이미지 출처: Youtube 

[1] https://www.carbonbrief.org/explainer-will-global-warming-stop-as-soon-as-net-zero-emissions-are-reached?utm_campaign=Carbon%20Brief%20Weekly%20Briefing&utm_content=20210430&utm_medium=email&utm_source=Revue%20Weekl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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