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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름바름 Feb 28. 2022

비밀 하나

약간은 동화, 조금은 에세이

비밀 하나

     

 청운빌라 1층에는 미야가 산다. 살짝 열린 대문 틈으로 담배 냄새와 짝짝 화투장 부딪는 소리, 왁자한 여자들 소리가 새어 나온다. 매캐하게 구린 담배 냄새는 미야의 할머니 광자 할매 것일 테고, 몇이나 모였는지 알 수 없지만 미야와 경민이 엄마, 그리고 동네 엄마 몇이 안방에 모여 화투를 친다. 엄마가 동전을 내밀며 친구랑 나가서 놀라고 했다는 미야, 미야를 따라나선 나, 그리고 경민이와 강훈이 까지, 어른들만 뭉치란 법 있냐는 듯 우리는 빌라 1층 복도에 모여 어른들 동정을 살핀다. 누군가 싹쓸이를 할양인지 시끌시끌하던 목소리가 잦아들고 폭풍전야처럼 찾아온 고요. 미야가 경민의 귀에 대고 소곤댄다.     


“또 싸우진 않겠지?”     


“울 엄마가 전번에 그러고는, 절대 안 싸운다고 했어.”     


미야가 하얗고 반반한 이마를 찌푸린다.     


“어른들이 언제 약속 지키는 거 봤니?”     


 나는 지난번 미야와 경민이 엄마가 닭이 볏을 세우고 싸우듯, 머리채를 움켜줬던 모습이 떠올랐다. 또 싸울 것이 분명한데 왜 어른들은 모였다 하면 화투를 치는지 알 수 없다.     


 우리는 빌라를 빠져나와 뒷동산 개미굴로 갔다. 강훈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주섬주섬 꺼낸다. 미야의 눈이 반짝, 나는 입 속에 벌써 침이 고이고, 경민은 강훈이 꺼낸 신호등 사탕을 제 것처럼 가져다 하나씩 꺼낸다. 빨강은 제 입에 먼저 쏙 넣고, 노랑은 미야, 초록은 나, 강훈에게 하나 남은 파란 사탕을 봉지째 넘긴다. 남은 가루까지 탈탈 털어먹는 강훈, 평소라면 제멋대로인 경민을 째려보거나, 밀거나 했을 텐데 오늘은 우리 기분이 모두 별로니까 강훈도 그냥 넘어가며 한마디 툭 던진다.     


“우리 누나가 그러더라. 엄마 일수놀이 하는 꼴 더 보기 싫어서 집 나갈 거라고”     


경민이 귀를 쫑긋 세운다.     


“집 나오면 어디 갈 데는 있고?”     


미야가 대뜸 좋은 생각이 난 듯 말한다.     


“있어 있다고…. 우리 광자 할매 살던 집”     


나도 한 마디 거든다.     


“할매 집이 어딘데?”     


기억을 더듬는 미야.     


“터미널에서 버스 타고 가면 돼…. 할머니가 맨날 시골집에 가고 싶다고 하거든.”     


“가자 우리 몽땅 다 같이 가출 어때?”     


경민이 대범하게 말한다. 가출 얘길 먼저 꺼낸 강훈이 자기는 오늘은 안 된다고 한다. ‘개구리 왕눈이’를 봐야 한다고. ‘개구리 왕눈이’ 얘기에 경민이도 마음이 흔들리는 지 생각해보니,  오늘 학습지 선생님 오는 날이란다. 미야가 우리를 둘러보며 터미널까지만 같이 가자고 한다. 원양 어선 선장인 미야 아빠가 돌아오기만 하면 엄마가 화투를 딱 끊는다고 했는데, 그날이 언제일지 알 수 없다고. 이제 자기는 할매 집에 가서 혼자 살 거란다. 할매는 맨날 담배만 피우고, 엄마는 화투나 치고 아줌마들이랑 싸우고, 자기한테는 일절 관심이 없단다. 찔끔 눈물까지 흘린다. 나에게 관심 없기는 울 엄마도 마찬가지다. 미야 손을 잡고 터미널로 가야 할까? ‘개구리 왕눈이’도 보고 싶은데…. 광자 할매 집은 얼마나 멀까? 미야가 길을 제대로 알고 있을까? 내가 묻는다.     


“미야 근데 너 버스비는 있어? 난 한 푼도 없는데.”     


주머니에서 동전을 꺼내 보이는 미야. 50원이다.     


“그게 다야?”     


“응”     


미야는 시든 풀처럼 고개를 푹 꺾고, 어차피 가출은 안 되는 거였다며 낄낄대는 강훈, 강훈의 뒤통수를 때리는 경민, 나는 미야의 손을 잡는다. 우리는 언젠가 멋지게 가출할 거다. 개미굴 속에 다시금 구덩이 하나를 더 파고, 미야의 50원을 넣는다. 비밀 하나를 굴속에 묻고 우리는, 떠나고만 싶은 엄마가 있는 집으로 저마다 흩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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