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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다름바름 Oct 27. 2022

부러운 마음

약간은 동화, 조금은 에세이                 

*사진출처;@Fliket


'부러운 마음'  

   

 학교 종을 엿 바꿔먹을 수 없다. 왜? 학교 종은 오래전 전자음으로 바뀐 지 오래니까. 실체도 없는 것을 어떻게 바꾼다 말인가? 글쎄 모르겠다. 우리 중 누구라도 타고난 사기꾼이거나 장사꾼이면 모를까. 그러나 나와 미야는 계획이란 것이 있었다. 멀리서 엿장수 아저씨가 커다란 가위를 철컹이며 다가오면 사이다병과 소주병을 양 손에 들고 팔목엔 노끈에 맨 신문지 한 묶음을 달랑 걸고 우리는 아저씨를 따라간다. 엄마 몰래 찌그러진 주전자도 갖고 나오고 싶었지만, 내 눈엔 다 낡아빠진 주전자가 엄마 눈엔 어떻게 신제품으로만 보이는 지, 괜히 손 탔다간 그나마 있던 계획도 물거품이 될 거라 나는 입맛을 다시며 그냥 놓고 나온다. 학교 폐품 수집 날 가져갈 물건은 없어도 엿장수 아저씨에게 내놓을 물건은 언제나 있다. 하얀 전분을 뒤집어 쓴 알싸한 박하향이 나는 엿을 우리는 포기할 수 없다.     


"엿! 친다"


"아저씨 좀만 더 쳐주면 안돼요?"  


"쪼맨한기... 자 요만큼이면 됐지?"     


미야가 흥정을 하는 사이 나는 가져온 병을 아저씨의 수레에 살포시 놓는다. 미야의 볼멘 소리가 들린다.     


"전에 강훈이 한테는 엄청 많이 줬잖아요. 남녀 차별하기예요?


"차별은 무슨...게집애가 단거 마이 먹으면 이 다썩는다"


"사내애는 이 안썩고요?"     


한마디도 지지 않는 미야 손을 붙들고 나는 그만 가자고 한다. 아저씨가 그나마 인심쓰듯 자른 엿도 다시 가져가 버릴지 모르니 말이다.     

 입 속에 엿을 물고 뱅글뱅글 돌린다. 박하향이 싸하게 퍼지고 입술에 묻은 허연 전분 가루를 날름날름 핥는다. 목구멍에 달콤한 침이 고이고 꿀꺽 한번 넘긴다. 아껴 녹인 엿이 아직은 바둑알 크기로 입 안에 남아있다. 이렇게 달콤한 침 넘기기는 경민이와 강훈이가 주산 학원에서 돌아오면 나와 미야의 엄청난 자랑거리가 된다. 경민이와 강훈이가 재미없는 주산 알과 씨름하는 사이 미야와 내가 얼마나 즐거웠는지 보여줘야 한다.

 사실은 엄마에게 나도 주산학원에 다니고 싶다고 했다. 학교 앞에서 학원 원장님이 예쁜 주산학원 가방을 나눠주며 등록만 하면 산수도 잘할 수 있고, 암산 왕이 될 수 있을 거라고 했다. 엄마는 내 말은 끝까지 듣지도 않고 가방을 다시 학원에 돌려주라고만 했다. 미야네 엄마는 학원에 보내준다고 했지만 미야가 가기 싫다고 했다. 경민과 강훈은 끝내 주산 학원에 갔고 학교가 파한 후 우리들의 시간은 달라졌다.

 나는 기필고 경민과 강훈 보다 재밌어야 했기에 미야와 함께 온갖 놀 궁리를 했다. 엿을 바꿔먹고, 종이 인형에 파티복도 만들어 입히고, 이웃 할머니가 기르는 파밭에 물도 주고 그렇게 놀아도, 놀아도 넷이 놀 때만큼 신이 안나 나와 미야는 곧 시들해졌다.
  하루는 바꾼 엿을 네 개로 나눠 주산 학원 앞에 갔다. 경민과 강훈이 학원에서 나오기에 엿을 하나씩 나눠줬다. 경민과 강훈은 주산학원이 대게 재미없다며 예전처럼 같이 노는 게 좋다고 했다. 부러운 마음이 엿을 베어 문 달콤한 침과 함께 꼴깍 배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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