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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기 Jul 06. 2020

노랗고, 빨갛고, 파랗게.

나이를 먹어가며 서글픈 순간도 많지만, 고마운 순간도 꽤 있다. 한 살 한 살 나이에 숫자가 더해가며 더 환히, 또렷이 ‘내’가 들여다보일 때 특히 신기하고 고맙다. 

내가 몰랐던 나를 알게 되는 순간, 이제껏 알았던 나와 이별하고 새로운 나를 만나는 순간은 마치 위대한 발명가나 탐험가가 된 듯 전율이 오른다. 그 순간이 내게는 참으로 소중하다. 근데 왜? 왜 나이가 들어갈수록 나를 더 잘 알게 되는 걸까? 안개 속에 숨어 있던 내가, 거울 뒷면에 붙어 있던 내가 시간이 흐를수록 더 잘 들여다보이는 이유는 뭘까?

나는 그 이유가 ‘실패의 배움’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살면서 겪게 된 수많은 실패가, 그 실패를 받아들이는 마음가짐이, 실패를 딛고 일어서려는 의지가 내가 어떤 사람인지 극명하게 깨닫게 한다. 그만큼 실패는 힘이 세다. 실패는 어느 화가보다 더 섬세하게 나를 그려낸다. 그럼 나는 어떤 실패가 만들고 치장한 사람일까? 실패는 나에게 어떤 무늬와 어떤 색으로 남겨졌을까?


1. 유쾌한 실패는 노랗게 무늬를 낸다.


대학 1학년 때, 많은 사람들 앞에서 노제에 절을 올리는 예를 행하게 됐다. 기독교 집안에서 자라 세배 외엔 절을 해본 적 없던 나는 장승 앞에서 참으로 곱고 반듯하게 반절을 했다. 다른 사람들이 큰절을 하는 걸 봤지만, 내 몸은 익숙한 반절을 선택했다. 순간, 지켜보던 사람들 속에서 ‘큭큭’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몇몇은 크게 복장대소하기도 했다. 나는 당황하고 부끄러워 노제가 끝나기도 전에 그 자리에서 줄행랑을 쳤다. 진짜 땅을 파서 숨어버리고 싶었다. 그날 밤, 집으로 돌아와 학교를 휴학해야 하나 고민하며 밤을 새워 울었다. 그날 내가 흘린 눈물은 더없이 진지했지만, 지금 생각해보면 귀엽기 그지없다. 

모든 실수, 실패가 다 아프고 괴롭기 만한 것은 아니다. 당시는 아팠어도, 돌이켜 생각하면 더없이 유쾌한 상처도 얼마든지 있다. 노제의 반절 같은 유쾌한 상처의 기억은 오랜 시간을 거쳐 내게 노란색 무늬로 남았다. 그 노란 무늬 실패 중 또 하나는 다이어트다.

나는 적어도 일 년에 한 번은 다이어트를 계획한다. 방법은 이렇다. 

우선 동네방네를 다니며 주워들은 정보로 다이어트 보조제 식품을 잔뜩 구입한다. 그 뒤, 보조제 식품은 부엌 한 구석에서 마치 오래된 가구처럼 편안히 늙어간다. 

또는, 식품으론 안 되겠다, 무작정 굶어보자 작정한다. 

“오늘은 먹고, 내일부턴!!” 

결의에 가득 찬 목소리로 가열차게 굶겠노라 부르짖은 뒤, 포만감 속에 배 두드리며 잠에 든다. 

혹은, 평소 안 하던 운동에 손을 대보겠다고 각종 기구를 다양하게 사들인다. 귀한 기구들이니 편히 모시고, 예쁜 먼지 옷도 수북하게 덮어준다. 

먹는 게 낙인데다 천성이 게으른 나에게 다이어트 성공은 너무 요원해 보인다. 그러니까 내 다이어트는 한 번도 성공한 적이 없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는.

“또 해? 또 실패할 텐데?” 

반복 시도하는 다이어트 앞에서 내 안의 ‘나’가 질문을 던진다. 그래, 맞다. 번번이 실패하는 다이어트를 나는 왜 계속 시도하는 걸까. 

그건 당연히, 실패하기 때문이다. 성공하면 더 이상 시도할 필요가 없겠지.

누군가는 유혹에 약하고, 의지력이 빈곤한 나의 변명이라 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난 다르게 생각한다. 내일 다시 시도할 수 있으니 오늘 실패해도 괜찮은 거라고. 실패했지만, 즐겁고 유쾌하게 웃자고. 내 웃음소리가 노랗게 동심원을 그리며 퍼져 나간다.


2. 뼈저린 실패는 빨갛게 물든다. 


뼈가 저리다는 게 정확히 어떤 감각인지 알게 된지 얼마 안 됐다. 숱하게 내뱉었지만, 사실 잘 모르고 썼던 말이다. 직접 겪어보기 전까진. 그건 심장을 비롯한 내장기관이 저린 것과는 다른 느낌이다. 대나무 통에 미세하게 구멍을 뚫고 바람을 불어넣으면 비슷한 느낌일까? 내 뼈에 누군가 바람을 불어넣고 그 바람이 새는 느낌이 뼈가 저리다는 감각과 비슷할 것 같다. 가혹하게 고통스럽진 않으나 끈질기게 아픈 느낌이랄까? 그 감각은 관계의 실패 속에서 찾아왔다. 

나는 내 삶이 풍족하진 않아도 늘 정의롭고 인간미 가득하다고 믿었다. 오래된 인연 속에 둘러싸여 나는 인복이 좋은 사람이라고 자랑스러워했다. 그래서 내 아이들도 바르고 행복하게 자랄 것이라 믿었다. 그런데 어느 날, 아이가 학교에서 지속적인 왕따 폭력을 겪어왔다는 걸 알게 됐다. 순식간에 내 평온하던 세상이 와르르 무너졌다. 어디 가서 이유 없이 뺨을 맞고 왔대도 그때만큼 억울하고 원통하진 않았을 것이다. 자식 일만큼 내 뜻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있을까, 알고 있었으면서도, ‘설마 내 자식에게 이런 일이’라는 방종도 한 몫으로 작용했을 것이다. 

부모는 자식과 자신을 분리할 수 없는 원죄를 받았다. 하여 아이가 당한 학교 폭력은 내 삶의 실패로 새겨졌다. 정의롭고 인간미 가득했던 내 삶이 먼지 바닥을 뒹구는 기분이었다. 나만 저 멀리 던져져 어둠 속에 처박힌 것 같았다. 두렵고 아팠다. 처음엔 뭘 해야 할지 몰랐다. 어디가 찢어져 피가 나는 것도 아닌데, 아파서 일어설 수가 없었다. 분노와 원통함에 허우적거리기만 했다. 하지만 나는 일어나야 했다. 그 자리에서 일어서기 위해 내가 했던 일은 대단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가족의 손을 잡았을 뿐이었다. 마음을 다친 아들의 손을 맞잡고, 깍지 낀 가족의 손에 더욱 힘을 주는 것. 그렇게 무릎을 세우고 몸을 일으켰다. 내 아들도 일으켜 세웠다. 서로에게 의지한 채 손을 잡고, 다리를 일으키고, 몸을 세웠다. 그런다고 아픔이 순식간에 사라지는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는 일어섰음에도 감격했다. 더듬더듬 한 발자국을 나아갔다. 그러다 어느 날 성큼성큼 걷게 될 것을 믿으며, 그저 잡은 손을 놓지 않았다. 

여전히 우리는 조금씩 나아지는 걸음을 걷고 있다. 돌아보면 빨갛게 물들었을 길을. 내 발자국에 빨갛게 물이 들었다.     


3. 고마운 실패는 파랗게 새겨진다. 


내게는 꽤 긴 시간 놓지 못한 책들이 몇 권 있다. 끝을 봐야지 하면서 쉽사리 그리 되지 않는 책들이다. 그 중 가장 무거운 책 하나를 꼽자면 단연코 <율리시스>다. 이 책은 말 그대로 무겁다. 단단히 각오를 다지고 이 책을 펼치지만, 늘 열 장 남짓을 넘어서기가 어렵다. 그렇게 십 여 년을 넘게 읽어서 겨우 책의 삼분의 일 정도 진척이 나갔다. 그러니까 수치상으론 이십년만 더 읽으면 이 책을 다 읽게 될 것이다. 기쁘기 그지없다. 

긴 시간 실패에 실패를 거듭하며 끝까지 손에서 놓지 못하는 책이 있다는 건 참 고마운 일이다. 단숨에 읽어 내리는 책에 나름의 묘미가 있듯이, 마지막장을 덮을 날까지 무수한 외로움과 두려움을 견뎌내야 하는 책도 못지않은 희망과 설렘이 있다. 나는 이 책 앞에서 또 수없이 많은 시도와 실패를 반복할 것이 틀림없지만, 목표를 이루는 날까지 고맙게 반복할 것이다. 읽어야 할 책이 있어서, 마지막 장을 내 손으로 덮을 날을 고대하며. 나와 오랜 시간을 함께 해줄 고마운 실패는 나를 파랗게 돋을새김 할 것이다.


4. 두려움, 외로움, 나를 키우는 원동력


노랗고, 빨갛고, 파란 실패들을 겪으며 어찌 두렵지 않고, 외롭지 않았을까? 두려웠고, 외로웠다. 해내지 못할 미래가 두렵고, 이대로 선에서 밀려나갈까 봐 외로웠고, 나만 혼자 상처 받고 버려질까 원통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그 두려움과 외로움을 이길 방법을 안다. 내 옆에, 내 주변에 더 많은 자리를 만들면 된다. 그 자리를 애정으로 보듬으면 된다.    

내가 선 곳이 외진 가장자리일지라도, ‘함께’를 이루면 이곳이 중심이 되는 법이다.

내가 선 가장자리에 더 많은 이들과 함께 하는 방법도 아주 간단하다. 내가 한 걸음 물러서면 된다. 부족하면 두 걸음 물러서면 된다. 그러면 빈자리가 생기고, 그 자리에 ‘우리’가 들어찰 테니까. 그것을 깨닫는 순간, 나는 더 이상 떨리지 않는다. 두려울지라도, 외로울지라도 무너지지 않을 자신이 생긴다. 그렇게 나는 수없이 많은 실패 속에 작고 단순한 해결책을 얻으며 나이를 먹어가고 있다. 이 삶은 죽음을 향해 가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안고 아직 한참 더 자랄 수 있다는 믿음을 향해 커가는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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