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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26. 2019

D-100 프로젝트 < D-33 >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그러게... 어떻게 해야 되냐?"

십수 년 전, 어머니, 혹은 시어머니가 간단한 문제 앞에서도 신속한 결정을 하지 못하실 때 이해도 안 되고 답답해하던 내가 떠오른다.

'계산기 두드려보면 답 안 나오나? 장점 쭉~ 생각해보고, 문제점 쭉~ 생각해봐서 결정하면 되지!'

'연륜이 쌓이면 문제 해결 능력도 높아지고 노하우도 풍부해지는 것 아닌가?'라고 생각했다.


물론, 개개인의 성에 따른 차이도 무시할 수 없는 변수일 테다. 그러나, 성격이 급하기로는 우열을 가리기 힘든 두 분인데도 결정의 순간 앞에서 확고하지 못두 어머니.

그녀들의 마음이 이제는... 이해가 간다.


작은 성공의 경험이 쌓이면 삶에 자신감이 생기고 다른 분야에서의 성공 확률도 높아진다. 달리기를 주제로 글을 쓴 안철수나 무라카미 하루끼가 공통적으로 주장하는 말이기도 하고 마라톤 하프를 정복한 남편을 보아도 그렇게 느껴진다.

하지만 아무리 장고에 장고를 거듭해도 잘 모르겠고 성공의 경험이 있다 해도 나의 자신감으로 적립되지 않는 분야들이 있다. 결과에 대한 책임, 비용을 내 인생에서 까는 게 아닌 경우들이라서 그렇지 않을까... 생각했다. 

바로 자식 문제.


아들의 체대 입시를 준비하며 나는 열심히 공부했다. 아이는 아이대로 열심히 먹고 열심히 쉬고 열심히 운동하며 준비를 했고, 나는 나대로 입시자료집과 입시 코칭 사이트를 왔다 갔다 하며 분석을 했다. 수시 6개 원서를 쓰는데 작년 합격 컷과 실기 종목, 경쟁률, 등급 간 점수 차등을 비교해가며 10개 정도의 학교를 추렸다. 상향인 학교도 있었지만 대체로 안정적이라 판단되는 학교들이었다. 체전굴, 좌전굴처럼 유연성을 평가하는 종목은 아무리 해도 나아지지 않았다. 극복이 안 되는 아이의 한계에 맞춰 그런 학교들은 리스트에서 제외시켰다. 체대 입시학원 원장님과 상담하면서 내가 만든 리스트와 학원 측 리스트를 비교하고 공통되는 학교 위주로 원서를 냈다. 6개 학교 중 2,3개 학교는 학원에서도 충분히 합격 가능하다고 한 곳들이었다.


결과는... 참패였다. 

상향으로 지원한 2개 학교는 수능 최저를 못 맞추는 바람에  실기시험도 보러 가지 못했다.

'합격 확실'이라고 보장됐던 학교는 상위권 학생들의 대거 진입으로 합격 컷이 올라가버려 작년의 합격 컷으로 확실하다고 믿었던 것이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나머지 학교들도 당일의 컨디션, 당일의 실수 한 번으로 탈락해버렸다. 평소 연습에서는 꾸준히 만점을 만들어내던 종목도 센서를 덜 건드렸거나, 공을 던지다 손이 미끄러지는 실수들이 생겼다. 그걸로 그만이었다. 더 이상의 기회도 없이 그 길로 탈락.

아이도, 나도 좌절했다. '열심히 하면 좋은 결과가 있을 거라는 것'은 공허한 구호에 불과했다.


정신을 가다듬고 정시 준비를 하려고 보니 아이도 나도 도저히 결정을 내릴 수 없었다. 답답한 마음에 남편에게 현재의 상황을 털어놓았다.

"정시 준비에 자신이 없어하는 것 같아. 열심히 했다가 수시처럼 또 떨어질까 봐 두려운 거지... 수능도 평소보다 못 보고... 정시 준비를 위해 또 큰돈을 쓰는 게 부담인가 봐... 수시도 확실하다고 믿었지만 돌발변수들로 떨어졌으니... A, B, C 대학은 현재 실기 기록상으로 상향이고 D, E, F는 안정권이야. 물론 아이는 D, E, F는 안 가고 싶어 하지.. 열심히 준비해서 상향지원을 하고 싶다고 하지만..."

남편은 황당해했다.

"당신 하는 말이 앞뒤가 안 맞잖아~ 어차피 돌발변수, 당일의 컨디션, 실수가 문제 될 거라면 무조건 상향을 하는 게 맞지 않아? 학원에서는 아이의 실력을 제대로 파악하기나 한 거야? 어쩌다 한번 나온 기록으로 원서를 쓰는 게 아니냐고! 당신은 아이가 자신 없어하는 이유가 뭐라고 생각해? 수능이 생각보다 안 나와서? 아니야... 자신의 실기 실력에 대한 자신이 없는 거야~~~!"


앞뒤가 안 맞는 얘기를 한건 맞다. 하지만 그만큼 알 수없고 결정하기 힘든 게 아이의 입시였다. 도통 답을 모르겠고 결과도 예측할 수 없는 일... 어떤 결과든 '나의 인생'이 아니라 '아이 자신의 인생'이 되어버리기 때문에 밀어붙일 수도 없다.


백화점에 가서 이걸 살까 저걸 살까 고민하며 결정하지 못하는 차원의 주저함이 아니다. 실패한 구매야 중고시장에 되팔거나 몇 년 쓰다가 버리거나 하면 될 일이다. 잘못한 결정으로 시간, 돈, 에너지를 버렸다면 좋은 경험 했다고 넘겨버리면 그만이다. 내 삶이면...  그러면 그만이다.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에서도 데드라인은 다가오고 누군가 결정은 내려야 한다.

당사자가, 책임자가 결정을 내리는 게 당연하겠지... 만,

그 책임감의 무게까지도 짊어주고 싶은 게 부모라서 이리도 주저하고 고민스러운가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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