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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25. 2019

D-100 프로젝트 < D-34 >

< 단 한 사람 >


개봉 영화 지각감상러가 되었다. 뭐가 바쁜지 한참 화제가 될 때는 못 보고는, 보고 싶은 마음은 가라앉질 않으니 늦게라도 챙겨본다. <82년생 김지영>에 이어 이번엔 <조커>.

브런치에 조커를 검색하니 조회 결과가 '1000+a'라고 나온다. 긍정적이건 부정적이건 많은 이의 글에서 이미 충분히 소비된 소재이다. 거기에 하나 더 보태는 꼴이기는 하지만 씁쓸한 마음을 남겨놓고 싶다.


코미디언을 꿈꾸는 광대, 남을 웃기고 싶지만 그전에 본인이 웃어버리는 '병적 웃음'환자.

어머니한테 '해피'라고 불렸지만 한 순간도 행복한 적 없었던 인물.

넘쳐나는 리뷰 속에는, 토마스 웨인이 실제 아버지인지, 어머니는 정말 망상증 환자인지에 대한 다양한 추측들,  선악에 대한 인간 본성 논쟁들, 사회적 폭력으로 치환된 개인의 폭력, 상층부로의 이동이 좌절된 하층민들의 결집과 그들의 우상이 된 조커 등등의 이야기들이 가득하다.  


하지만 나에겐, 그저 외로웠던 한 남자만 보였다. 

살을 부대끼며 사랑을 속삭일 대상도 없고 존중받을만한 곳이 전혀 없던 삶. 

하루 일과를 마치고 돌아간 집에서조차 어머니의 식사를 챙겨드리고 씻겨드리고 잠자리를 봐드려야 하는 피로한 삶.

지치고 외로운 자신의 속마음을 지속적으로 진지하게 들어줄 사람조차 존재하지 않았던 아서.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그의 말을 들어줬더라면...

단 한 사람만이라도 그의 휑한 눈을 들여다봐줬더라면...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를 붙잡고 "오늘 학교 어땠어?", "급식은 뭐가 나왔어?", "오늘 뭐가 제일 재미있었어?"라고 아무리 질문을 해도 아이들은 그 자리에서 바로 성의껏 대답해준 적이 없었다. 하지만 놀다가도, TV를 보다가도, 밥을 먹다가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일들이 있을 때마다 엄마에게 쪼르르 다가와 얘기해주었다. 

학교에서 칭찬받은 일이 있을 땐 묻지 않아도 종알종알 잘도 얘기했다. 

"너무 잘난 척하는 거 아냐?"라고 하면 "내가 집에서나 이렇게 자랑하지 어디서 잘난 척하겠어~?"라며 으쓱대던 얼굴. 

집에 들어서며 하는 "다녀왔습니다~"라는 말 한마디만 들어도 아이의 기분이 느껴졌었다.

"목소리가 왜 그래? 무슨 안 좋은 일 있었어?"라고 물으면 닭똥 같은 눈물을 뚝뚝 떨어뜨리며 서러움이 폭발하던 아이들... 혹은 씩씩거리며 누군가에 대한 분노를 분출하던 순간들...

그렇게 모든 감정을 배설할 수 있는 '엄마'의 존재. 

엄마가 아니더라도 할머니이건 아빠건 형제건 상관없이 자신의 속내를 드러낼 수 있는 누구라도 있다면 다행이다. 


아서에게는 그 '단 한 사람'이 없었다. 

비단, 아서만의 일은 아닐지니...

어제 접한 여자 연예인의 가슴 아픈 소식에도 '단 한 사람'의 부재가 원인이 아닐까 생각했다.

그녀의 삶이 얼마나 외롭고 힘들었는지는 감히 상상할 수 없다. 혼자서 감당하기 힘든 속내가 있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야기를 들어줄 단 한 사람만 있었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않았을까? 가족이나 친한 지인들이 들으면 섭섭할 얘기이겠지만, 결국 마지막 순간 그녀를 잡아줄 사람이 없었다는 것, 절박한 순간 도움을 청할 사람을 못 찾았다는 것은 피할 수 없는 사실이 아닐는지...


"나의 죽음이 나의 삶보다 더 가치 있기를..."

극 중 아서의 조크 노트에 쓰여있던 말이다. 

그 말이 죽음에 초점을 맞춘 말이 아니라, 행복한 삶을 간절히 원하는 말로 느껴지는 것은 나뿐일까?

그 어떤 죽음이 삶보다 가치 있을 수 있을까...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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