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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Nov 24. 2019

D-100 프로젝트 < D-35 >

< 어떤 약속 >


11시로 예약해둔 설명회가 있었다. 강남이라 대중교통을 이용하기로 맘먹고 길찾기 앱을 켰다. 집에서 출발부터 도착까지 1시간... 10시에 집을 나섰다. 신분당선을 탈까 생각도 했지만 앱이 시키는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렸다. 곧 올 것 같던 버스는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았고 앱은 처음 알려주었던 그 시간을 고집스럽게 알려주고 있었다. 시간은 하염없이 흘러가는데도, '버스만 온다면 여기서부터 도착까지는 30분 걸린다'는 안내만... 결국 30분 기다린 끝에 도착한 버스 덕에 11시 30분이 되어서야 설명회 장소에 도착했다.


버스를 기다리던 순간부터 내내 갈등했다. 갈까? 가지 말까?

11시가 되던 순간, 주최 측에서 전화가 왔다. "네~ 가고 있어요~ 버스가 안 와서요..."라고 말하면서도 계속 고민했다. 버스에 내리고 건물 회전문을 통과하는 순간까지도, '30분이나 지났는데 가지 말까?' 하는 고민을 줄곧 했다. 그럼에도, 예약자 명단을 확인하며 발을 동동 굴릴 말단 직원의 초조함이 생각나고, 예약자 명단의 내 이름에 빨간 줄이 쫙 그어지는 게 싫어 꾸역꾸역 목적지를 향했다.


설명회가 후에는 어머님과의 점심 약속이 있었다. 설명회는 끝날 기미를 보이지 않았고 결국 끝까지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나와야 했다. 대중교통 앱을 켰다. 버스나 지하철을 타면 30분. 난 택시를 타고 10분 만에 어머님과의 약속 장소에 어머님보다 먼저 도착했다.


결혼 전부터 남편이 나에게 신신당부했던 것 하나는 '어머님은 약속시간 준수를 중요하게 생각하신다'는 거였다. 다른 건 크게 탓하지 않으시지만 약속시간에 늦는 것은 끔찍하게 싫어하신다는 것.

결혼전부터 어머님과 단 둘이 만나는 일이 종종 있었기에 늘 신경 써서 시간을 챙겼다. 약속시간 20분 전에 가더라도 어머님은 늘 먼저 와계셨다. 결혼 후에도 어머님과 단 둘이 만나든 가족모임이든 약속시간보다 한참 전에 가려는 노력은 계속되었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보면, 나의 약속시간 준수는 일관된 습관이 아니다. 강의를 가거나 어려운 자리에는 시간 전에 도착해 미리 자리도 잡고 차도 마시는 여유를 부린다. 당연히 집에서 준비하는 시간부터 여유롭게 계획을 세운다. 그런데 개인적인 약속, 캐주얼한 모임 같은 경우에는 마음도 함께 캐주얼해져 버린다. 나가기 10분 전에 씻고 옷 입고 하다 보니 맘을 급하게 먹는다고 해도 물리적인 준비 시간은 절대 마련되지 않는다. 당연히 늘 늦을 수밖에 없다. 멀리서 잡은 약속에도 늘 10분 20분씩 늦어버린다. 상대를 배려하지 않는 나쁜 습관이다.


프로지각러들이 지각하는 이유는 두 가지라는 글을 읽었다.

약속 장소까지 소요되는 시간을 제대로 계산하지 못했다는 이유 하나와,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고 싶어 하는 마음 때문이라는 것. 따라서 사람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라고...

난, 내가 나빴다고 생각한다.

어떤 약속은 절대 늦으면 안 되지만 또 어떤 약속은 약간의 지각은 용서되고 이해받을 거라는 안일한 생각. 누군가의 시간에 대해 소중히 생각하지 않은 못된 마음. 내가 먼저 가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은 비효율적이지만 반대의 경우에 대해서는 고려하지 않은 이기적인 태도.


세상에 '늦어도 되는 약속'이란 애초에 없음을 되새긴다.

'약속을 하는 순간부터 준비시간 시작'이라고 마음에 새긴다.

약속 장소에 미리 가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수고를 마다하지 않는 어머님의 정성을 본받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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