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늘봄유정 Nov 28. 2019

D-100 프로젝트 < D-31 >

<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기 >


초등학교 시절을 떠올릴 때마다 기억나는 장면이 있다. 

따뜻한 봄날, 친구네 집 앞마당, 돗자리 가득 콩을 쏟아놓고는 썩은 콩을 골라내던 친구의 할머니, 그 할머니 옆에 옹기종기 앉아있던 친구와 나. 

할머니를 따라 우리 둘은 구멍 난 콩들을 골라내고 있었다. 두런두런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을 테지만 그날 그 장면의 제목처럼 따라다니는 친구의 한마디만이 선명히 기억난다.

"할머니! 콩에 있는 이 구멍을 보니까 북한 괴뢰군이 파놓았다는 땅굴이 생각나요. 콩 속의 벌레들은 간첩이겠지요? 콩 속에 몰레 숨어있다가 구멍을 파서 우리나라로 쳐들어오는 나쁜 괴뢰군들 같아요. 이번 반공 글짓기 때 이 얘길 써야겠어요."

그 친구의 말이 내게는 꽤나 큰 충격이었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은... 학교에서 글짓기 좀 한다는 나였다. 글짓기 대회마다 상을 타서 어깨 뽕 좀 들어갔던 시절이었다. 하지만 친구의 참신한 발상에 대한 놀라움과 나는 좀처럼 그런 생각을 하지 못했다는 자괴감으로 자존심이 상했던 그날의 기억은... 친구의 이름과 얼굴은 기억이 나지 않는데 멍해졌던 나에 대한 기억은... 선명하다. 


살면서 내 능력의 한계를 경험하고 자신감을 잃었던 일, 나보다 잘난 사람들 사이에서 주눅 들었던 경험, 내 능력의 본전이 드러났지만 들키지 않으려고 안간힘 썼던 기억들은 차고 넘쳐난다. 그때마다 여러 가지 변명들을 찾아 헤맸었다. 

'조건이 달라서 결과도 달랐던 거야...'

'상황이 안 받쳐줬어...'

'나도 저 나이 되면 저 정도 되겠지...'

이제와 생각해보니 모두 나 자신의 부족함에 대한 쪽팔림이었다.

스스로도 만족할 만큼 충분한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을 때, 상대가 들인 노력의 크기를 과하게 포장해버렸던 때, 타인의 운과 나의 운을 저울질하기도 했던 때. 그럴 때마다 느꼈던 찌질한 기분이 반복되면서 내린 결론은, '나 자신에게 집중하자는 것'이었다. 

나만의 콘텐츠를 만들어내고, 내가 만족할 만큼의 노력을 할 것. 그래서 내 실력과 능력치를 올릴 것.

누군가를 부러워하고 시기, 질투하는 맘이야 자연스러운 것이지만 그것이 그 사람을 미워할 이유로는 충분치 않다는 것. 

그런 부정적인 감정에 내 시간과 에너지를 쏟지 말고, 좀 더 생산적이고 긍정적인 방향에 나를 던져야 한다는 것.

따라서 지금의 나는 과거보다 많이 자유로와졌고 훨씬 편안하다. 


중3인 둘째 아이의 학교 1학년 엄마들 사이에서 시끄러운 뉴스가 있었다. 

수학 수업시간에 치러진 단원평가의 한 문제가 특정 학원 문제집의 문제와 숫자 하나 바뀌지 않고 똑같이 나왔다고 했다. 부당하다며 일부 학부모들이 문제를 제기했고 교감선생님과의 간담회를 가질 예정이라고 했다. 특정학원 고유의 문제도 아니었으며 시중에 판매되는 문제집의 문제라는 것이 밝혀졌지만 상황은 잠잠해지지 않았다. 자유학년제라서 교과 내신이라는 것이 의미가 없는 상황이고 단원평가에 불과한 시험이었으며 변별력을 키우기 위해 출제된 어려운 문제도 아니었지만, 엄마들의 항의는 계속되고 있다.


무엇을 부당하다고 느낀 것인지 나로서는 이해가 되지 않는다.

그 학원을 다녔거나 그 문제집을 푼 아이들에게 유리한 문제였다는 것과 자기 아이의 성적이 낮은 것과의 상관관계는 성립하지 않기 때문이다. 

재시험 얘기까지 나오던데, 재시험을 치면 출제된 모든 문제에 만족할 것인가?

재시험으로 점수가 더 낮게 나오더라도 순순히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인가?


학교 선생님이 문제 출제에 대한 성의가 부족했다는 것이 문제라면 동의할 수 있다.

그것이 아니라면 내 아이의 수준이 그 문제를 풀 수 있는 수준이 아님을 인정하는 것이 먼저일 것이다. 다른 아이가 맞추고 아니고를 신경 쓸 일은 아닌 것이다. 


타인의 조건에 신경 쓰지 말고 자신에게 집중하기를... 

그래서 자유로와지고 편안해지기를...





작가의 이전글 D-100 프로젝트 < D-32 >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