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라크루 금요문장 공부 >
[오늘의 문장] - [순례자] 파울로 코엘료
‘선한 싸움’은 자신의 마음이 시켜서 하는 것입니다.
선한 싸움은 우리가 간직한 꿈의 이름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젊은 시절, 우리 내면에 간직한 꿈들이 힘차게 꿈틀댈 때면 우린 용기백배하지만 그땐 아직 싸우는 법을 알지 못했지요. 각고의 노력 끝에 마침내 그 방법 터득하게 되었을 때는 , 전장에 뛰어들 용기가 남아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을 적대시하게 되고, 결국엔 스스로 자신의 가장 큰 적이 되고 마는 것이지요.
(중략)
꿈들을 죽일 때 나타난 첫 번째 징후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내가 살면서 알게 된 사람들 중 가장 바빠 보였던 사람조차 무엇이든 할 시간이 있었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사람들이 늘 피곤하다고 말하고, 정작 자신들이 하는 게 거의 없음을 깨닫지 못하면서 하루가 너무 짧다고 끊임없이 불평을 하지요. 그들은 사실 '선한 싸움'을 벌일 자신이 없는 겁니다.
두 번째 징후는 스스로에 대한 지나친 확신입니다. 삶이 우리 앞에 놓인 거대한 모험이라는 것을 보려 하지 않는 것이죠.(중략)
세 번째 징후는 평화입니다. 삶이 안온한 일요일 한낮이 되는 것이지요. 우리는 자신에게 대단한 무엇을 요구하지도, 우리가 줄 수 있는 것 이상을 구하지도 않게 됩니다. 그러고는 우리 자신이 성숙해졌다고 여깁니다. (중략) 하지만, 실상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잘 알고 있지요. 우린 자신의 꿈을 위해 싸우기를 포기한 겁니다. 즉 '선한 싸움'을 벌이기를 포기한 것이죠.
'자기 의심'은 스스로에게 명령을 해야만 할 수 있습니다.
성장하겠다는 각오를 품고 작정할 때 자신을 의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처음 강의하던 시절, 도대체 내가 제대로 가르치고 있는 것인지 궁금했습니다. 다른 강사들의 수업을 듣고 밤새워 공부하며 어떻게 하면 더 효과적으로 가르칠 수 있을지를 궁리했습니다. 해가 거듭될수록 조금씩 나아지는 자신을 발견하는 재미가 쏠쏠했습니다. 그러다 어느 순간, 궁금함도 사라지고 궁리도 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호기심, 의심이 사라진 자리에는 방심이 자리 잡은 것입니다.
자신을 의심하지 않을 때 나타나는 첫 번째 징후는 흐뭇함입니다.
이 정도면 충분히 괜찮은 강의였다는 생각이 드는 순간 처음에 가졌던 나를 향한 의심은 더 이상 고개를 들지 않습니다. 어깨가 펴지면서 당당해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지만 그건 자존감이 아니었습니다. 자만이었습니다.
두 번째 징후는 수업 후기가 궁금하지 않다는 것입니다.
뻔한 칭찬과 더 뻔한 불만이 섞여 있으리라고 단정 짓게 됩니다. 치명적으로 날카로운 것들보다 그 뻔하디뻔한 것들이 나를 자극한다는 사실을 망각합니다.
세 번째 징후는 무료함입니다.
잘하고 있는 강의를 더 이상 건드릴 필요가 없다고 생각하면 늘 같은 것을 반복해야 합니다. 그러니 지루할 수밖에 없습니다. 지루함, 무료함을 완벽함으로 오인하는 순간, 질 좋은 강의는 물거품처럼 사라집니다.
끊임없이 자기를 의심하는 사람이야말로 해당 분야의 전문가라고 생각합니다. 의심한다는 것은 성장에 대한 목마름이 있다는 뜻이며, 늘 목마르다는 것은 받아들일 자세가 되어있다는 의미입니다. 잘 안다고 생각하는 것에 대해서도 그게 전부가 아닐지 모른다는 의심을 가질 때 계속해서 궁리하고 발견해 낼 수 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순례자가 되어야 합니다. 길의 끝에 무엇이 있는지를 궁금해서 걷는 사람이 아니라 걸어야만 발견할 수 있는 진리가 있기에 걷는 것입니다.
오늘도 저는 저를 의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