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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Dec 07. 2019

D-100 프로젝트 < D-22 >

< 철없던 나에게...>


유정아.

문득 20 여전의 네가 떠오른 건, 큰 아이가 새벽기차를 타고 친구들과 부산으로 놀러 갔기 때문인지, 아니면 KFC에 붙은 닭똥집 튀김 포스터를 본 때문인지 모르겠다.

이제 한 달 후면 성인이 되는 내 아들은, 입시가 끝나지 않아 아직 맘이 무겁지만 답답해서 어디든 다녀와야겠다며 친구들과 당일치기 부산여행을 갔단다. 내 큰아들은 빨리 운전면허도 따고 싶어 하고 동네 술집 도장깨기도 하고 싶어 해. 밥 먹는 아이를 앞에 두고 폭풍 잔소리를 해댔지.

"엄마, 아빠를 태우고 최소 10번은 시운전을 한 뒤에야 엄마 차를 줄 수 있어!"

"장거리 운전은 안돼!"

"지금 운전하고 다니는 친구들 차 절대 타면 안 돼! 뉴스 봐라. 꼭 이맘때 사고 많이 일어나잖아. 운전이 운전자만 잘한다고 되는 것도 아니지만, 선무당이 사람 잡는다고 갓 운전면허 땄을 때가 얼마나 위험하다고."

"차는 망가져도 되고 벽은 받아도 되지만 사람은 절대 다치게 하면 안 돼!"

"성인이 될 때까지는 절대 술집에 가면 안 된다. 영업하시는 분 망하게 할 일 있니?"

"네가 잘 먹는다고 남한테 술 권하면 안 돼! 정신 잃을 정도로 많이 마시면 안 돼! 세상이 얼마나 무섭다고..."


우습지? 넌 스무 살에 운전면허를 따자마자 엄마 차를 타고 여기저기 혼자 잘도 돌아다녔는데... 겁도 없었지... 돈 아낀다며 제대로 된 학원으로 안 가고 혼자 연습시키는 값싼 시골 학원을 찾아내 몇 번 연습하지도 않고 면허를 땄지. 주차하면서 여기저기 차도 긁어먹었지만, 때마침 함께 초보였던 엄마의 실수에 조용히 묻어갔던 너... 부모님은 얼마나 노심초사하셨을까? 혹시, 운전면허 학원비를 중간에서 얼마 정도 떼어먹지 않았나 의심되는 부분이다...

넌 대학 때 술도 엄청 마셔댔지. 그땐 아직 취업 걱정보다는 대학시절의 낭만을 더 찾을 시절이라, 정경대학 옆 잔디밭에서 점심때부터 술을 마셨었지... 그렇게 종일 마신 술병을 모아 편의점에 가서 컵라면으로 바꿔 먹고 다시 술집으로 향하던 걸... 부모님은 모르셨지. 열심히 학교 다니며 공부하는 줄 아셨을 텐데...

술 먹고 1시가 넘어 귀가하던 날 기억나니? 엄마는 밤늦게 오지 않는 딸을 기다리다 아파트 1층 계단에 앉아 울고 계셨지... 다 큰 처녀가 술 처먹고 정신이 오락가락해서 겨우 집을 찾아왔던 그날 엄마는 얼마나 맘을 졸이셨을까? 세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험하긴 마찬가지인데... 넌 참 간댕이도 컸구나...


우리 큰 아들은 친구를 꽤나 좋아한단다. 공부를 좋아하고 열심히 하는 과는 아니었지만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학교생활을 열심히 했지. 학급 임원도 거르지 않고 하고 학교 선생님들과도 스스럼없이 어울려 고등학생이 된 후로도 중학교 은사님들을 찾아가 급식까지 얻어먹고 오는 번죽 좋은 아이였지. 중3 말부터 방황을 하기 시작했어. 점심시간에 외출증도 없이 집으로 와서 라면 끓여먹고 가고, 부모님 여행 가신 친구 집에서 술도 진탕 마셨더라. 고등학교 가서는, 성적이 뛰어나지 못하면 임원의 기회도 주어지지 않는 현실을 대면하면서 더 삐뚤어졌어. 공부보다는 친구들과 축구하고 생일 파티해주는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지. 엄마인 내 맘은 타들어가고 속상했지만 어려워서 대차게 말도 못 했어. 행여나 관계가 단절될까 봐... 살살 달래며 나쁜 길로만 가지 말라고 기도했지. 심성이 착한 아이라 그럴 일은 없었지만, 친구라면 자다가도 나가고 집 앞에서 고민 들어주다가 늦게 들어오는 날들은 어찌나 많던지...


널 쏙 빼다 박았지...

중학교 2학년 때 사춘기가 와서 크게 방황했던 너는 일요일마다 친구들과 어울려 돌아다녔었지. 덕분에 성적도 반토막 나서 엄마가 처음으로 성적 때문에 우셨던 기억...나지? 그즈음 부모님께 늘 퉁명스럽게 툭툭 거리며 말한다고 꾸중도 많이 받았었지. 훔치던 걸레를 마루 저쪽 끝에서 이쪽 끝으로 던지셨던 것도 기억나지? 오죽하셨으면 그러셨을까...

고등학교 때, 여기저기서 몰래 술도 잘 마셨더랬지. 독서실 끊어놓고 친구와 공원 벤치에 앉아 소주 한 병씩 마시고 독서실에서 한숨 자다가 새벽에 들어가면 엄마는 "피곤하지? 얼른 쉬어~" 하셨었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 했니?  야자 시작 전, 학교 담을 넘어 시내까지 나가 친구들에게 주문받은 닭똥집 튀김을 잔뜩 사서 교실로 들어왔던 극성맞았던 너. 입술을 마르게 만들고 최대한 초췌한 얼굴을 만들어 담임선생님께 아프다고 뻥치고 조퇴하던 너. 내 아들은 어쩜 그리 너를 꼭 닮은 거지?


그래서...

이제는 걱정을 좀 내려놓으려고 해.

그렇게 철없던 너지만 잘 컸잖아. 매일매일 열심히 살려고 노력하는 사람이 되었잖아.

20년 넘게 무사고로 안전 운전하고 있고, 술 때문에 문제 일으킨 적도 없잖아.

부모님과 선생님을 살살 속였던 너지만, 지금은 고지식하리만치 진실되고 정직한 사람이잖아.

우리 아이도 너처럼 잘 자라주고 있다고 생각하기로 했어.


다 알지만 눈 질끈 감고 입을 틀어막으며 널 믿고 묵묵히 기다려준 부모님 덕분이라고 생각하지?

이제는, 내 차례야...

내가 그렇게 해주어야 할 시간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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