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Dec 17. 2019
D-100 프로젝트 < D-12 >
< 의미와 재미 >
삶의 '의미와 재미'라는 말을 좋아한다.
빅터 프랭클의 '삶의 의미' 이론에 더해, 삶은 재미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깔깔깔깔 웃어대는 재미만 재미는 아닐 터, 감동도 재미, 지적 만족도 재미, 유희도 재미, 쾌락도 '재미'다. 때로는 고난도 재미다.
'나의 하루하루는 의미가 있던가 아니면 재미라도 남기던가 해야 한다'는 강박이 있다. 하루 종일 뒹굴거렸어도 '난 오늘 충분한 휴식을 취했노라'는 의미를 부여하면 그만... 강박이라기보다는 자기변명이나 위안에 더 가까운 '재미, 의미 찾기'인 셈이다.
오늘의 의미와 재미...
마을교사 양성과정을 마무리하는 운영 평가회가 있었다. 한해의 사업을 마무리하며 완성된 자료집도 살펴보고 수고한 서로를 토닥이는 자리... 맛있는 식사와 함께 두 가지의 체험활동이 이어졌다. 원래 일정에는 와우정사 산책도 포함되어있었지만 비도 추적추적 내리고 스산한 날씨에 아무도 나서질 않아 취소...
첫 번째 체험활동은 '감정 인형 만들기'였다.
자신의 감정을 온전히 표현하고, 표현한 나의 감정을 끌어안아주기.
그렇게 감정을 표현한 사람이 먼저 움직여 타인의 감정을 알아주기.
이러한 추상적인 과정을 마크라메 인형 만들기로 시각화하는 발상을 누가 처음 했을까? 아무것도 안 하고 인형만 만들었을 뿐인데 힐링되는 이 기분은 뭐지?
소근육 발달에 좋은 이런 활동은 나에게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선이 굵고 몸 전체를 쓰는 활동을 좋아하는 사람이었으며, 작고 이쁜 것들을 만드는 것이 왠지 낯간지러웠던 나다. 그런데 어떤 색이 어울릴까를 고르고 있고 어떻게 하면 더 이쁘게 만들까를 구상했으며, 매듭 하나하나를 만들며 내 감정의 소중함을 어루만지는 오글거림을 만끽하고 있었다.
"우리 유정이는 손재주도 참 없지..." 하시던 엄마의 말과는 달리, 내가 손재주도 있고 이런 오글거리는 활동도 아무렇지 않게 해내는 사람임을 확인한 의미 있는 시간...
두 번째 활동은 도자기 페인팅.
아... 학교 다닐 때도 미술시간이 제일 싫었다. 그림도 잘 못 그리니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올라도 그걸 멋지게 구현할 수가 없다는 절망감이 컸다. 매듭 인형 만들기에 이어 또다시 손재주가 필요한 시간, 그림을 그려야 하는 이 시간이 절망스러웠다.
그런데 참 알 수 없는 나란 인간... 주어진 접시에 주어진 본으로 밑그림을 그리고 정해진 색을 칠하면 완성되는 그 작업이 난 싫었다. 공산품 같은 작품을 수작업으로 만드는 게 아이러니했다고나 할까? 모두가 똑같은 접시에 올리브 아니면 동백꽃을 그리는데 나도 그래야 하나... 싶었다. 게다가 접시는 집에 이미 많다. 그래서 나 혼자 삐딱선을 탔다. 평소 좋아하는 사람들과 소재를 생각해 나만의 작품을 만들기로...
다른 사람들과 같은 걸 했다면 강사님도 편하셨을 테고, 체험 시간도 비슷하게 맞췄을 텐데... 나 혼자 하고 싶은걸 해보겠다고 남들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제대로 민폐를 끼쳤지만 그래도 만들어놓고 보니 뿌듯하고 그렇게 재미있을 수가 없었다. 미술을 싫어하던 내가 그림을 그리는 내내 속으로 '재밌다, 너무 재밌다'를 연발했으니...
사실, 그림 그리는 게 재미있었다기보다는, 이 '작품'을 선물 받을 사람들의 반응을 상상하니 재미있었다는 게 맞을 테지만... 어쨌든 공포스러운 시간을 재미있게 만들었다는데 의미를 두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