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시럭부시럭
탈칵
촤아악
"뭐야! 참치캔 딴거야?"
"헉! 소리만 듣고 어떻게 알아맞춰?"
"아, 반찬 놔두고 참치는 왜 먹는거야?"
"그냥 갑자기 참치가 먹고 싶어서~"
간혹가다가 남편은 밥상 앞에서 참치캔을 딴다. 답은 늘 한결같다. 참치가 갑자기 먹고싶단다. 헐...간도 크지... 정성껏 차린 밥상을 앞에두고 참치캔을 따다니...이제는 20년 살았으니 그러거나 말거나고 진짜 먹고싶은가보다 하지만 처음엔 심히 당황스러웠다.
'엥? 내가 차린 밥상이 맘에 안드는거야? 왜 반찬 놔두고 참치캔을 먹는다는거야? 그게 뭔 맛이야?'
당황스러웠다기보다는 자존심이 상했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듯하다. 나름 공들여 차린 밥상인데 젓가락이 갈곳을 잃어 방황하다가 참치캔에 정착했다는것 아니겠는가. 분했다. 한낱 참치캔 따위에 지다니...
결혼 전까지 참치캔을 따서 바로 먹는 사람은 본 적이 없었다. 친정 엄마에게 참치캔은 항상 요리 재료였다.
통조림 속 기름에 달달 볶던 김치에 물과 참치캔 건더기를 넣고 팔팔 끓여낸 참치 김치찌개.
참치와 양파, 파, 밀가루, 계란을 버무려 지져낸 참치전. 이걸 동그랗게 만들어 튀겨낸 참치볼.
깍둑 썬 감자를 간장넣고 볶다가 익으면 양파, 파, 참치를 넣고 후루룩 버무려 먹는 참치 간장 조림.
샐러리나 오이, 양파, 홀그레인 머스타드와 꼭 짠 참치캔을 넣고 버무려 빵에 넣어 먹는 참치 샌드위치.
다양한 방식으로 요리해 상에 내어주던 식재료에 불과했던 참치가, 그 자체가 하나의 요리라니... 결혼과 동시에 얻었던 문화적 충격이었다.
남편은 수시로 참치캔을 땄다.
한밤에 소주 한잔이 생각나거나 출출할 때, 탄수화물을 끊고 다이어트 중일때, 끼니와 끼니 사이에...
한참이 지나고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아, 이 사람은 내 음식이 맘에 안들어 참치캔을 딴게 아니었구나. 그냥 참치캔을 좋아하는 사람이구나...'
제대로 된 끼니를 차려내야 한다는 주부의 강박, 요리도 잘하는 아내로 인정받고 싶다는 욕구. 이런 것들이 참치캔 하나에도 관대하지 못한 나를 만들었다는 큰 깨달음을 얻기까지는 20년이 걸렸다.
물론 여전히 남편의 지나가는 말한마디, 행동 하나하나에도 발끈하는 것을 내려놓지 못한 나다.
얼마전 내 노트북을 쓰던 남편이 물었다.
"당신 컴퓨터는 왜 이렇게 느린거야? 컴퓨터 문제야, 우리집 와이파이 문제야?"
남편은 그저 궁금해서 물었다는데 내게는 곱게 들리지 않았다.
"왜 컴퓨터 관리를 제대로 안하는거야? 안쓰는 파일들은 그때그때 정리를 하고 가끔씩 포맷도 해야 속도가 느려지지 않지!"라는 비난의 목소리로 들렸다.
'여전히 남편에게 완벽해보이고 싶은게냐? 조금의 실수도 보여주고 싶지 않은게냐? 뭐가 그렇게 스스로에게 자신이 없냐?'라며 이번에는 무엇을 내려놔야 하는가 고민해봤다. 아직 참치캔밖에 내려놓지 못한 나다.
내가 차린 밥상 앞에서 참치캔을 보란듯이 따는 것은 다된 밥에 재뿌리는 행동이라고 생각하던 내가 많이 성장했구나싶다. 아니, 그런 행동쯤이야 나를 해하려는 행동이 아님을 이해할만큼 우리가 오래 살았구나 싶다. 물론 본인에게 물어보면 그때는 진짜 손가는 반찬이 없어서였다고 할 수도 있겠다. 나만의 착각이 소설을 쓴것일 수도... 그러면 어떠리? 이제는, 나도 가끔 참치캔을 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