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날이 되려면 아직도 한 달이나 남았건만 올해는 유난히 더위가 이르다. 복날이 아니면 어떠리, 고등학교 첫 시험을 치르는 아이를 위해 힘내라고 삼계탕을 끓여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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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0g짜리 영계와 파, 마늘, 대추, 황기, 전복, 낙지.
삼계탕에 빠지지 않고 넣는 재료들이다. 인삼은, 열이 많은 가족들 때문에 잘 넣지는 않는다. 대신 전복과 낙지 덕분에 국물만 먹어도 힘이 나는, 나만의 레시피.
지금은 눈 감고도 끓일 수 있을 만큼 쉽고 간단한 요리지만 20년 전, 아무것도 모르던 새색시에게는 큰 맘먹고 도전해봐야 하는 요리였다. 그 도전은, 조용히 혼자서 은밀히 해봐야 했건만 그들을 초대한 것이 화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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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3월에 결혼을 하고 그해 초복에 그들을 초대했으니 채 4개월밖에 안된 새색시가 간도 컸던 게 분명하다. 장정 다섯 명에게 초복이니 삼계탕을 끓여주겠노라 선언을 하고 인원수만큼의 닭을 준비했다. 엄마가 해주시던 기억도 더듬어보고 요리책도 펼쳐보았다. 곰탕 끓일 때 쓰라고 친정엄마가 신혼살림으로 준비해준 큰 스텐 솥에 닭을 넣고 마늘과 대추, 수삼을 넣었다. 마트에서 '황기'도 사다가 넣었다. 그래야 국물이 시원하고 허해진 몸을 보하는데 효과가 있다는 것을 어디선가 보았는지 들었는지...
푹 잘 끓여진 닭들을 냉면그릇에 한 마리씩 담고 마늘과 대추, 수삼도 골고루 넣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황기도 함께 넣어주었는데, 이유는 또렷이 기억이 나지 않는다. 황기도 먹는 것이라고 생각해 넣었던 것인지, 황기까지 넣어 국물을 우려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는지, 아무 생각 없이 넣은 것인지... 아무튼, 토요일 점심, 날은 덥고 한창 배가 고플 나이의 그들은 열심히 삼계탕을 흡입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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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쯤에서 '그들'에 대해 소개를 해야겠다. 24살에 이른 결혼을 한 나는 35명 정원 중 5명이 여학생인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했다. 대학시절 친하게 어울려 다니던 5명의 남학생들은 짓궂은 장난과 막말도 서슴지 않을 정도의 사이였다. 나는 졸업해 결혼을 하고 그들은 군대 제대 후 복학생이 되어있었을 무렵, 새색시가 된 친구의 사는 모습이 궁금한 그들은 나의 초대에 흔쾌히 응해주었다. 더불어, 새색시의 험난한 요리 도전에도 무모하게 응한 꼴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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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참을 먹던 중 한 놈이 말했다.
"이건 뭐꼬? 먹으라고 넣어준 건가?"
그러자 연이어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컴플레인...
"나도 아까부터 고민 중이었잖아."
"딱딱해서 아무리 씹어도 안 끊어지길래 포기했는데?"
"먹는 거 아니었어? 난 인삼인데 이렇게 질긴가, 넣어준 건데 성의를 봐서 먹어야지 하고 열심히 뜯고 있었잖아!"
"유정아! 이게 도대체 뭐야? 먹는 거야?"
친구들의 먹는 모습을 흐뭇하게만 바라보던 나는 당황했다. 생각지도 못한 상황 전개였다. 솔직히 말하면 황기를 먹어도 되는지 어떤지를 확실히 몰랐다. 그들도 나만큼이나 모르니 안 씹히면 안 먹겠지 안일하게 생각했었던 것 같다. 날도 더운데 진땀은 삐질삐질 나고, 정답은 모르겠고, "황기라는 건데... 일단 먹지 말아 봐~"라고 했던 기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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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로도 동기회만 되면 그들에게는 추억이었을, 나에게는 악몽이었을 그 일이 소환당했다. 황기 삼계탕이라 불린 그 음식 얘기만 나오면 쥐구멍을 찾고 싶은 게 아니라 그날로 돌아가 황기를 와그작와그작 다 씹어먹어버리고 싶었다.
"유정아! 아직도 삼계탕에 그거 뭐냐, 황기? 그거 넣냐? 하하하하하"
"아직도 모르겠다. 그게 뭐야? 황기? 그냥 집 뒤 산에서 나무뿌리 캐다가 넣어줬던 거 아니야? 하하하하하"
언제 모여도 이야기꽃의 시작은 '황기 삼계탕'이었다. 오래간만에 모인 어색함을 풀어주는 데는 그만한 소재가 없었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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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부 21년 차인 지금, 황기에 당귀, 헛개나무 등이 들어있는 간편한 백숙용 육수 팩을 이용하니 국물에 황기 따위는 남아있지 않다. 하얀 찹쌀에 녹두나 흑미를 섞어 풍미를 높이기도 하고 전복과 낙지를 넣어 진하고 깊은 맛의 국물을 만들어낸다. 다시 그들을 초대해 멀건 국물 대신 뽀얗게 우러난 국물을, 황기 대신 제대로 된 인삼을, 살도 없는 닭 대신 전복과 낙지가 함께하는 삼계탕을 대접해 그날을 설욕하고 싶다가도... 그때는 거기까지밖에 모르는 새색시였음을 인정하기로 한다. 그때는 황기가 무엇인지 모르는 나였고 평생 삼계탕을 처음 끓여보는 나였다. 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같은 게 있다면, 집에 초대해 내가 만든 음식을 나누고 싶고, 맛있게 먹는 거 보면 뿌듯하고, 그렇게 모여 하하호호 즐거운 시간을 갖는 걸 좋아하는 '나'라는 것이다. 그때의 나도 맞고 지금의 나도 맞는 이유... 그때의 삼계탕도 맞고 지금의 삼계탕도 맞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