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주에 치킨을 먹은 후 게워낸 토사물 냄새... 동도 트지 않은 어스름 새벽, 안방까지 흘러들어온 냄새를 따라간다. 마루 가득 냄새가 진동한다. 마루에서 현관까지 바닥을 훑어보지만 토사물은 보이지 않는다. 내 코가 잘못된 걸까? 아니다. 분명 진해지고 있다. 냄새만으로도 토사물의 양이 가늠될 정도다. 큰아이의 방에 가까이 갈수록 '가지 말까?' 하는 마음이 커진다. 내 눈으로 제일 먼저 확인하고 싶지 않다. 먼저 확인하는 놈이 먼저 치워야 하지 않겠는가? 용기를 내 살짝 열린 문틈으로 안을 들여다본다. 하.........
"드럽게 많이도 처먹었네."
교양이고 나발이고 혼잣말인데 어떠랴. 중얼중얼 욕을 해가며 손에 비닐장갑을 끼고 휴지로 토사물을 끌어모아 비닐에 담았다. 물티슈로 1차, 세제 묻힌 티슈로 2차, 걸레로 3차 닦아낸 후 큰아이를 한차례 째려본 뒤 안방으로 돌아왔다. 부스럭거리는 소리에 잠이 깬 남편이 물었다.
"무슨 일 있어?"
씩씩거리며 휴대폰으로 찍어둔 증거물 사진을 보여주었다. 새벽부터 역하다 할 만도 하건만 그저 껄껄껄 웃는다. 스무 살이 된 아들이 술을 마셔도 귀엽고 토해도 웃긴가 보다.
"콩나물 사 와야하나? 김치 콩나물국이라도 끓여주게..."라고 혼잣말을 하는 나에게 "카레 끓여줘~"한다.
"카레? 웬 카레?"라고 물으니,
"대학생 때 술 먹고 친구네 집에서 자고 일어났는데, 그 친구 어머니가 다음날 아침 카레를 주신 거야. 술 먹은 다음날 뜨끈한 북엇국이나 콩나물국으로 속을 달래야 하는 게 아닌가 싶었지. 당황스러웠지만 그래도 차려주신 거 안 먹을 수 없으니 먹었는데, 의외로 괜찮더라고. 숙취해소도 되는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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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레라...
오래전, 엄마의 요리에 동참하고 싶어 하는 아이들과 함께 만들던 음식이었다. 안전칼과 도마를 하나씩 주고 당근, 감자, 양파, 피망 등을 썰도록 했다. 삐뚤어도 좋고 크기가 제각각이어도 상관없었다. 식탁 위에 레인지를 올려놓고 냄비에 자른 야채를 볶다가 물을 부어 끓인다. 야채가 어느 정도 익으면 카레가루를 넣어 풀고 걸쭉해질 때까지 저으며 끓여준다. 나 혼자 하면야 후딱후딱 간단히 해버릴 수 있지만 번거롭고 손이 많이 가도 아이들과 판을 벌렸던 건 어느 육아서적에서 본 게 있어서였을게다. 엄마와 함께 요리하는 아이가 좌뇌 우뇌가 함께 발달해 똑똑하다든가 엄마와의 유대, 정서발달에 좋다든가 말이다. 제 손으로 만든 카레라 더 열심히 먹었고 각종 채소를 자연스럽게 먹일 수 있으니 그것도 좋았다. 어린 시절 너무 자주 해 먹어 이제는 즐겨먹지 않지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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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유도 없이 밥그릇 가득 담은 시리얼. 총각무 하나 달랑 올려진 고봉밥. 자갈치, 새우깡, 꽃게랑, 오징어집 과자를 올린 초밥. 인터넷에 떠도는, '술 취한 남편의 아침밥상'이라는 타이틀의 사진들이 떠오른다. 아내의 소심한 복수심을 담은 귀여운 아침밥상. 화는 났으나 아침부터 싸우고 싶지는 않고 그냥 넘어가고 싶지도 않다는 마음의 표현일 것이다. 아내의 마음을 달래기 위해 까칠한 입에 시리얼을 털어놓고 총각무를 씹어가며 깔깔한 밥알을 욱여넣는 남편들의 모습이 상상돼 웃음이 피식 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