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확한 시기는 모르겠다. 엄마, 아빠라는 호칭 대신 '어머니, 아버지'를, 반말 대신 존댓말을 사용한 게 언제인지. 가정교육에 엄격하셨던 아빠의 요구였다. 아마도 그렇게 불러야 부모의 권위가 서고 함부로 대하지 못한다고 판단하셨을 것이다.
처음엔 '무슨 사극 찍나?' 할 정도로 어색하고 입에 붙지 않았지만 어느 순간 엄마, 아빠라는 말이 더 어색해졌다. 초등학교 일기장을 보니 서서히 어머니, 아버지로 바뀌다가 5학년 무렵부터는 정착이 되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깍듯한 존댓말과 함께 '어머니, 아버지'라 말하는 나와 동생에 대한 주위의 반응은 극과 극이었다. 친구들은 엄마, 아빠를 왜 그렇게 부르느냐고 의아해했고 주위 어른들은 입이 마르게 칭찬을 했다. 쓰라 하시니 쓰긴 했지만 엄격한 호칭은 부모님에 대한 거리감을 불러일으켰던 것 같다. 워낙 애교가 없고 무뚝뚝한 성격인 탓이 더 크겠지만 '말'이 주는 영향도 무시할 수 없었다. 아빠는 자식들의 무례하고 경우 없다 싶은 언행, 원칙을 지키지 않는 태도를 엄하게 꾸짖으셨고 그럴 때마다 심리적인 거리감은 조금씩 더 벌어진 것 같다. 존칭과 존댓말을 깍듯하게 쓰고 예의를 차리면서 부모님을 친구처럼 대하기는 힘들었다. 그렇게 30여 년이 흘렀다.
요즈음 들어 지난 30여 년간 주야장천 썼던 존댓말과 존칭을 서서히 무너뜨리고 있다.
초등학생 시절 일기장에서는 그렇게도 어머니, 아버지를 깍듯이 썼건만, 요즘 내 글에는 온통 엄마, 아빠다.
제삼자에게 우리 부모님 이야기를 할 때 "우리 어머니는~"이라고 말하던 것이 "우리 엄마는~"으로 바뀌었다.
엄했던 부모에 대한 반항이라거나 불러보지 못했던 '엄마, 아빠'라는 이름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니다. 이제는 적당한 반말과 경계를 무너뜨리는 호칭을 더 좋아하시는 듯한, 늙으신 부모님이 보이기 때문이다.
"오~ 심여사~ 그렇게 서방이 좋아? 나 동생 생기나?"라며 짓궂은 농담을 던져도 호호호호 좋아하신다.
"아버지, 요즘 바쁘셔? 식사는 잘하시고?"라며 은근슬쩍 말을 줄여도 무례하다며 혼내시지 않는다.
존댓말과 존칭이라는 벽에 가로막히고 멀어져 돌아오지 않을 줄로만 알았던 딸, 혹독한 사춘기를 거치며 부모에 대한 원망과 부정적 인식이 더 커졌던 나는 어느새 성인이 된 자식을 둔 엄마가 되었다. '아버지, 어머니'를 쓰며 심리적인 거리감이 멀어졌다고 여겼지만 이제는 그들의 가르침이 얼마나 크고 깊었는지를 이해하게 되었다. 덕분에 어디 가서 '예의 없다, 경우 없다, 개념 없다'는 소리는 듣지 않는 어른으로 성장했음이 감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의 아이들에게는 존칭과 존댓말을 강요하지 않았다. 부모에 대한 존경과 권위는 한낮 '말'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친구처럼 격의 없이 반말로 대화해도 소통이 우선이며, 공감과 배려의 모습을 부모가 몸소 보인다면 그걸로 충분하다는 것이 내 나름의 교육철학이다. 내가 옳고 나의 부모가 틀렸다고 여기지는 않는다. 그들의 방식과 나의 것이, 그들이 생각하는 최선과 내가 생각하는 최선이 다름을 인정해야 하지 않을까?
그 시절 부모님은, 철없는 자식들이 당신들을 친구처럼 생각해 막 대하다가 다른 어른에게도 무례해질까 걱정되던 마음으로 엄하게 가르치셨다. 친구 같은 부모가 되고 싶어서 무던히도 노력했지만 멀어지는 거리를 어찌 좁혀야 할지 모르셨을 것이다.
세월은 흐르고 그 시절의 당신들 나이가 된 딸이 반말로 농을 지껄였을 때... 당황스러우면서도 행복했으리라 짐작한다. 버르장머리가 없어서 그러는 게 아니니까... 엄했던 부모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올라하는 행동이 아님을 아니까... 나이 들고 기운 달려서 꾸짖을 힘도 없어 그냥 내버려 둔 게 아니니까...
부모에 대한 사랑과 존경심 혹은 애틋함으로 친구가 되어 말을 걸어오고 눈을 맞춰주는 딸이 고맙지 않았겠는가. 30여 년간 공들였던 '존댓말, 존칭 가르치기 프로젝트'가 언뜻 실패로 돌아간 것 같지만 실은 완벽하게 성공한 교육이라고 흐뭇해하시지 않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