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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늘봄유정 Jul 18. 2020

예순일곱 번째 시시콜콜

무료로 받은 물건을 팔아도 될까?

최근 여기저기 눈에 띄는 잔짐들을 정리하기 시작했다. 정리, 청소라는 게 그렇다. 신경 끄고 손 놓으면 한없이 늘어놓고 살다가 어느 순간 필 받으면 그때부터 폭주하기 시작한다. 부엌부터 시작한 정리는 신발장, 그릇장 할 것 없이 온 집안을 뒤집어 놓고 있다. 정리하면서 나온 물건들 중 오래되고 낡은 것들은 분리배출을 한다. 하지만 쓸만하고 아까워서 수년째 끌어안고 있는 녀석들이 문제인데, 과감히 처분해야 한다. 중고물품 거래 앱이나 지역 맘 카페에 싼값에 내놓거나 무료 나눔을 하는 것이다. 번거롭고 신경 쓰이기는 하지만 버림받았던 물건들이 새로운 주인을 찾아 쓸모를 발견한다면 모두에게 이로운 일이니 감수하고 볼일이다.


나만 정리에 불붙은 건 아니었다. 코로나 19로 집콕하면서 집 정리를 하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이야기도 들었다. 이를 반영하듯 새롭게 등장한 프로그램들이 있다. 등장인물과 프로그램 구성의 차이는 있겠으나 기본 콘셉트는 하나다.

"비우기"

필요가 아닌 욕망의 결과물로 쌓인 물건부터 시작해 나에게 필요 없지만 남에게는 유용한 물건들을 골라내서 판매, 기부하는 형식이다. 버리면서 기부까지 하게 되니 의미도 있고 물건들로 복작대던 집안은 자연스레 깔끔해진다. 금세 새로운 물건들로 채워질지는 모르겠으나 잠시라도 비움의 미학을 느껴볼 수 있다.


무료 나눔과 관련해 지역 맘 카페에 성토의 글이 올라왔다. 자신이 무료나눔한 물건을 받은 사람이 다음날 중고거래 앱에서 바로 팔고 있더라는 이야기였다. 좋은 마음으로 '드림'했는데 어떻게 그걸 하루 만에 돈 받고 팔 수 있느냐는 것. 무수한 댓글이 달렸다. 그런 사람은 맘 카페에서 강퇴시켜야 한다, 중고거래 앱에 신고해서 거래를 하지 못하게 해야 한다 등등.


무료이다 보니 선착순으로 '드림'이 진행된다. 좋은 물건, 인기가 많은 물건이라면 '불발 시 꼭 연락 주세요'라는 댓글도 여럿 달린다. 선점하고 싶은 욕심에 "저 주세요!"라고 질러 놓고는 잠깐 고민하다가 "죄송해요~ 다른 분께 넘길게요~"라고 거절 의사를 밝히는 이들도 많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공짜 물건을 받아가며 연신 고맙다고 인사하고 '복 받으실 거예요~'라고 덕담을 해주거나 과자 한 봉지라도 들고 오기도 한다. 일면식도 없는 사이지만 최대한의 예의와 감사의 마음을 갖추는 것이다.

내 손때와 마음을 머금고 있던 물건이 타인에게 가는 일은 시원 섭섭한 일이다. 때문에 드림을 받으러 오는 이의 인상과 분위기를 살피게 된다. 우리 집에서는 천덕꾸러기였지만 누군가의 집에서는 대우받으며 행복하기를 염원하는 마음에서다. 무생물이지만 말이다. 따라서 그런 물건이 다음날 중고거래 앱에 올라와 있는 걸 보았다면 파양된 반려동물을 보는 심정일 수 있다. 이 집 저 집 어느 곳에서도 사랑받지 못하고 떠돌아다니는 처량한 몰골... 게다가 나는 무료로 나누었는데 상대는 돈을 받고 팔고 있다면 괘씸하고 황당하다. 그렇게까지 해서 얼마나 부자 되는지 보자 싶고 이럴 줄 알았다면 분리배출해버릴걸 그랬다고 후회한다. 상대도 무료 나눔을 했다면 성질이  좀 덜 났을 것이다.


도대체 왜 그랬을까?

가져온 물건의 쓸모를 찾지 못해 어쩔 줄 모르다가 중고거래 앱에 올렸을 수도 있다. 주인에게 다시 가져다주는 것도 예의가 아닌 듯싶었을 테고 무료로 나누자니 물건 상태가 제법 괜찮았겠지... 이미 내 손에 들어온 물건이니 이후의 처분도 내 몫이고 내 관할이라고 생각했을 것이다. 돈을 받고 팔든 무료로 주든 전 주인이 상관할 바가 아니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아니면 진짜 푼돈이나마 벌려고 그랬는지도 모른다. 공짜로 받아서 2,3천 원이라도 팔면 그게 어디인가? 그렇게 100개의 물건만 거래시켜도 아이 학원비 하나는 나올 판이다.

이미 내 손을 떠난 물건은 '내 물건'이 아니다. 법적인 소유권을 논하는 것이 아니다. 그 물건에 담긴 마음의 무게를 말하는 것이다. 쓸모를 찾지도, 사랑을 받지도 못해 버림받은 물건이다. 누군가의 집에서는 쓸모를 찾기 바랐지만 그러지 못했다고 가져간 이를 탓하는 것은 이기적 욕심일 수 있다.


그래서 오늘의 Topic은...

< 무료 나눔 받은 물건을 파는 행위는 정당하다. >


* 그나저나, 정말 열심히 사시는 분들이 아닐 수 없다.

물건의 사진을 찍어서 거래를 성사시키는 일련의 과정들이.... 참 고되다. 신경을 보통 많이 써야 하는 게 아니다. 그 업이라 삼으면 그런 생각이 안들 수도 있긴 할테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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